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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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가 그린 딩씨 마을의 비극




중국에서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는 옌롄커의 소설 <딩씨 마을의 꿈>이다. 이 책은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존재조차 몰랐을 소설의 내용에 궁금증이 생긴다. 중국에서 금지된 소설이라니 그 실체가 정말 궁금했다. 또한 작가 스스로 자신의 소설 중에서 최고라 말하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가히 압도적이다.

딩씨 마을은 피를 팔면서 점차 피에 미쳐갔다. 평원에서 피를 팔면서 피에 미쳐갔다. 십 년 후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는 궂은비처럼 열병이 쏟아져 내렸고, 피를 팔았던 사람들은 모두 열병에 걸렸다.

(p79)

에이즈라 불리는 열병이 퍼진 딩씨 마을. 사람들이 피를 팔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를 팔면서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열병에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런 딩씨 마을을 한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 아이는 독이든 토마토를 먹고 죽었다. 죽은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딩씨 마을의 모습은 가관이다. 죽음을 앞에 둔 딩씨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환자들은 매달 정해진 표준량에 따라 식량을 납부한다. 부족한 양을 납부하거나 양을 속이는 자가 있으면 그 쳐 죽일 놈의 가족을 전부 열병에 걸려 죽게 만든다.

(p282)

쟈껀주와 딩유에진이 딩씨 마을을 관리하기 위해 정한 여러 조항의 규정 중에서 첫 번째 조항이다. 속이는 자체가 잘못된 것임이 맞고 지켜져야 하지만 가족을 모두 열병에 죽게 한다는 매우 가혹한 조항에 사람들이 동의한다. 어차피 죽을 것이니 별 상관 없다는 것일까. 잘 납득되지 않는다. 딩씨 마을을 이러한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고전 소설 '동물 농장'에서 규율들을 정하는 내용이 생각났다. 스스로 법을 만들고 이를 지키지 않을시 가혹한 벌을 내린다는 무시무시한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렇게 싼값에 관을 구입하게 된 사람들은 정부가 관을 지원해줬다는 생각에 자신이 열병에 걸린 것도 잊고, 집 안에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누워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미소를 띤 얼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가볍고 즐거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얼굴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p329)

이 대목은 할아버지의 꿈 내용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꿈은 꿈인 동시에 곧 현실이다. 현실과 꿈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다. 사람들은 싼값이 관을 구입해 기뻐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어 그런 것일까. 모든 것을 달관해서 그런걸까. 저렴하게 관을 구매해서 기뻐하는 모습에 이상한 것은 정녕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 실은 아버지만 저를 죽이려고 하지 않으면 이 평원에 있는 여러 마을 중 그 누구도 저 딩후이를 어떻게 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p602)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사죄를 요구한다.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라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느냐며 역정을 낸다. 할아버지는 딩씨 마을을 돌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립이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 딩씨 마을의 역병을 가져온 장본인과 이를 수습하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정상과 비정상이 혼재된 이 세상과 다를바가 없다. 그나마 정상적인 사람인 할아버지도 이 마을에서 정상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옌롄커의 소설에서 현실과 허구, 상상과 진실, 합리성과 부조리성, 과정과 변형의 경계를 동시에 탐험할 수 있는 것이다.

(p627)

옌롄커의 소설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 조차도 물질적 욕망에 무릎을 꿇는다. 당장 죽는 판에 관이 금인지 은인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당장 죽어가는 판에 자신의 품삯을 제대로 받지 못함에 화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가.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오늘 내일을 사는 이 특별한 상황에서 물질적 욕망이 정말 부질없는 것일까.



수많은 의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부조리하면서도 합리적이며, 허구이나 현실과 같은, 상상 속의 이야기지만 진실과도 같은 이 오묘한 조합을 소설은 우리 앞에 이끌어 낸다. 홀리듯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딩씨 마을의 할아버지의 마지막 외침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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