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 지음, 김윤수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미스터리 작가 '구라치 준'의 발견





미스터리 단편 5편이 실린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을 통해 작가 '구라치 준'을 발견했다. 각 단편들은 단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다. 대부분의 단편은 읽다가 중도에 멈춘듯한 느낌이 들어 꺼려지게 된다. 그러나 이 단편들은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각자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시켜도 될만큼 각각의 맛이 담겨 있다.



'구라치 준'의 소설이 몇 개 없다. 과작(작품을 적게 냄)이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으며 단 두 권만이 한글 번역 되었다. 그 중 소설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이 궁금하다.

동생의 죽음을 무차별 연쇄살인으로 묻는 것. 이게 바로 내가 노리는 바다. 나와는 관계없는 연쇄 묻지마살인으로 보이면 된다. 연쇄 묻지마살인처럼 남동생을 죽이고 나는 잡히지 않는다. 이게 내 계획이다.

ABC살인 (p20)

첫번째 단편 소설 『ABC 살인』 부터 흡인력이 상당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라고 되뇌이는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주인공은 살인 타깃으로 친동생을 선정한다. 자신은 도박으로 돈을 날리고 동생에게 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동생을 죽이려한다. 이 때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A지역의 A씨, B지역의 B씨가 살해당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C지역의 C 아무개를 살해하고 난 뒤 D지역에 사는 동생 단다(D)를 죽이는 완전 범죄를 계획한다.



첫 소설을 숨죽이고 단숨에 읽었다. 강렬한 흡인력에 압도당했다. 독특한 설정과 실재 존재할 것만 같은 등장인물들의 절묘한 조화가 인상깊었고 마지막 강렬한 마무리까지 미스터리의 재미와 스토리라인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이었다.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쓰레기라 말하면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살인자의 잘못된 시각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러고 보면 미코는 이 집에 온 나를 마중 나와주었고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중략) 미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내 무릎 위에서 두 앞발을 앞으로 늘어뜨리고 정신없이 자고 있을 뿐이었다.

밤을 보는 고양이 (p152)

『밤을 보는 고양이』는 할머니댁을 찾은 '유리에'와 고양이 '미코'에 대한 이야기다. 밤이 되면 허공을 보는 고양이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추리 끝에 놀라운 발견을 해낸 유리에의 이야기다. 오컬트 분위기를 살짝 풍기면서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는 고양이 미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실제 경험한 일인 것만 같은 사실적인 심리 서술이 일품이었다.



소설들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하나의 비슷한 시각을 발견했다. 사회 문제들을 슬며시 소설 안에 끼워 넣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과 문제시 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풀어가고 있다. 묻지마 살인, 인공 지능에 대한 경고부터 연금 수령때문에 시체를 유기하는 사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미스터리 장르에 매우 어울리는 재료들이다. 간혹 뉴스에서 듣기도 하고 우리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회 문제들이기에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쓰러진 시체와 그 주변에 흩어진 두부. 게다가 시체의 후두부에는 사각 물체의 모서리로 구타한 상처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것으로 보인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p157)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은 이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만큼 기대가 컸다. 태평양 전쟁 배경의 이즈카 가쓰오 육군 이등병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도통 알 수 없는 실험을 진행 중인 비밀 연구소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야 한다. 후두부에 사각 물체로 타격당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밀실에서 발생한 사건은 두부 파편 이외에 흉기가 될만한 것을 찾을 수 없다.



이 황당한 사건에 나는 얼린 두부를 의심했다. 허나 두부는 쉽게 얼지 않는다고 한다. 영하 40도는 되어야 꽁꽁 어는데 밖은 영하 5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사건의 전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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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색을 담은 5편의 단편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작가는 참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다. 독특한 설정부터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들까지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담겨 있다. 단편을 만나면 더욱 작가들의 창착 능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5편의 다른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장르의 '구라치 준'을 안 것은 큰 소득이다. 그의 소설은 다른 미스터리 소설과는 살짝 결이 다른 '구라치 준'만의 매력이 있다. 순식간에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에 감탄했다.



장편 소설들이 주류이긴 하지만 유독 단편 소설집이 꾸준히 출간되는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짧은 단편의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단편의 세계는 바쁜 현대인들이 부담없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지하철을 타는 짧은 20분 한 편의 단편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잠시 다녀오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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