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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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꽃

책이 뿜어내는 독에 중독되다




'독'이라는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데 매우 놀랐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독'으로 보인다. 독과 악 그리고 어둠과 병. 이 비밀스러운 소재들이 서로 엉켜 어지러운 매력을 과시한다. '독'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나였으나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은 독의 꽃이라는 말이 나를 이끌었다.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은 조몽구를 중심으로 지나간다. 아버지 영로와 삼촌 수호와 같이 마치 몸에 독을 지닌채 태어나 두통을 달고 사는 전갈자리 몽구의 삶은 확실히 남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는 독에 다가갈 수 밖에 없는 신의 계시인가 독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독의 일종인가.

"몽구스? 정말 멋진 별명이구나. 나는 '아홉 가지 꿈'일는 뜻으로 지은 건데, 몽구스라. 몽구보다 더 낫구먼. 누가 그 별명을 지었는지 그 녀석이 나보다 한 수 위구나."

(p93)

창가 병원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는 비정상적인 남성이 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조몽구'. 몽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독에 이끌리듯 홀리듯 이 책을 읽어 나간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미로를 지나는 느낌이랄까. 이 소설의 느낌은 그러했다. 몽구와 함께 꿈인 듯 현실인 듯 독에 취한 듯 나는 책장을 넘기고 있다.

독은 위험하지만 무척 흥미롭거든. 사람들이 독을 가지고 온갖 일을 벌이는 것도 그래서지. 독에는 운명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말이야.

(p97)

그저 무서운 존재라고만 생각했던 독의 다양한 면을 생각하게 한다. 각종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뿜어낸다. 화려한 독버섯은 그저 자연에서는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강한 독을 가지고 있다. 벌이 가진 침에 의해 아낙플라시스 쇼크도 독에 의한 몸의 방어가 과민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10년에 노력이 담긴 책이라 할만큼 정말 다양한 독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한 번쯤 들어봤을 독에 대한 이야기부터 처음 들어보는 독에 대한 역사와 진실들에 대해서는 경이롭게 느껴졌다. 독은 적당하면 약이되며 과하면 독이 된다. 적당함의 미학은 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강한 독소가 심장에 영향을 미칠 때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팔다리가 얼얼하고 눈동자가 팽창하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그는 난생처음으로 사랑에 빠졌음을 알았다. 또한 그는 누군가와 막 헤어진 후에 생각나는 감정의 강도가 바로 사랑의 척도임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p383)

사랑도 몸의 호르몬이 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몽구가 사랑을 느끼는 이 순간은 경이롭고 행복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부분이었다. 이 사랑이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분명 독도 해독시키는 사랑의 힘일터인데. 어찌 이렇게까지 가슴아픈 사랑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소설이 끝나는 시점까지 몽구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친다.

대체 독이 뭐야? 그 물질이 무엇이든 간에, 몸 안에 들어와 생체의 리듬과 균형을 무너뜨리면 그게 독이야. 몸에 꼭 필요한 호르몬, 비타민, 히스타민, 세로토닌 같은 생물활성물질도 내부에서 과도하게 분비되거나 외부에서 대량으로 투여되면 독이 된다는 걸 너도 모르지 않잖아.

(p467)

후반부에 드러나는 등장인물들의 연결고리가 매우 흥미로웠다. 소화와 수호 그리고 도부영, 영로와 한종원, 어머니 운선, 광수, 윤정우와 자경... 인물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가 어지럽지만 하나의 굵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독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이어진 그들의 관계는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듯 스르륵 그려진다.



미지의 세계 독의 꽃에 홀린 이 시간은 정말 짧게 느껴졌다. 참 오랜만에 지하철로 출근하는 20분이 단축되는 경험을 하게 한 소설이다. 오롯이 집중해 술술 책을 읽어 나가는 나를 홀리는 최수철 작가의 소설이 각종 문학상을 받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야.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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