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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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레시피북을 신랄하게 까보자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연애의 기억>을 이미 구비해 놓았으나 이런 저런 이유로 책 읽기를 미루다 아직도 책장에 방치되어 있다. 그러다 그의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소설가라는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줄리언 반스가 레시피와 관련된 내용을 책으로 냈다는 점에 의문이 들지만 책을 읽고 나니 요리책 및 레시피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해학적 비판이 이해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풍자와 비판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웠다. 수 많은 요리 책에 대한 불평 불만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수 있구나. 고급스럽게 레시피를 까는 통쾌함에 웃음이 절로 난다. 그저 나 혼자 속으로 가졌던 레시피에 대한 불만을 이 책에서는 당당하게 까고 있다.



나는 내가 상당 부분 의존하는 요리책들에 분노하는 일 또한 잦다. (중략)

그런데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

'늦깍이 요리사' 중에서 (p24)

정밀한 레시피북이 절실하다. 좋은 레시피북이란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정보가 세심하게 들어간 레시피북이 아닐까. 레시피북을 본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레시피북의 예쁜 결과물을 기대하고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그 결과는 누구나 예상하듯 처참하다. 사진 작가와 데코를 곁들인 공을 들여 찍은 사진과 나의 요리 솜씨는 절대 같을 수 없다.



이 레시피는 설명이 애매한데, 그러면 적절한 해석의 자유가 있다는 건가? 아니면 저자가 더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어서 그런 건가? 간단한 단어부터 문제다. 한 '덩어리(lump)'는 얼마만큼이지? 한 '모금(slug)' 또는 한 '덩이(gout)'는 얼마만큼이지? 언제를 이슬비라고 하고 또 언제를 그냥 비라고 하는 문제와 다를 게 없다.

'중간 크기의 양파 두 개' 중에서 (p38)

이공계 출신의 나에게 요리 레시피는 항상 어렵다. 그저 내가 이공계 출신이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했으나 무려 맨부커상을 수상한 저명한 작가 줄리언 반스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점에 놀라울 따름이다. 레시피를 참조해 요리를 하면서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표현들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중간 크기의 양파 두 개, 다진 마늘 한 큰 술 등 이런 표현들이 좀처럼 어렵다. 중간불, 소금 약간은 도대체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200g이라는 표현을 쓰면 저울 없이는 요리가 불가하다는 의미가 되니 숟가락에 의존하는 계량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선한' 생 파스타가 공장에서 생산돈 건조 파스타보다 더 좋다는 의견이 요즘 유행인데, 이 의견을 뒷받침해주는 타당한 증거는 없다. 앞엣것이 뒤엣것보다 더 좋은 건 아니고 그저 서로 다를 뿐이다.... 그 둘은 호환될 수 없지만 순전히 품질만 놓고 보면 전적으로 동등하다."

'찌르퉁한 서비스' 중에서 (p117)

어느 날 아버지는 수타짜장면 집을 가자고 하셨다. 큰 기대와 함께 한 입 먹은 수타짜장면은 면발이 고르지도 않고 어느 부분은 제대로 익지도 않았으며 짜장 소스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다. 그런 수타짜장이 더 값진 것으로 생각하시고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직접 면발을 만들어내는 수타 기술의 짜장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감성적인 맛과 추억의 맛이 있었겠으나 추억도 없고 감성적이지 않은 나에게는 더 저렴한 공장식 짜장이 더 맛난 음식이었다.



줄리언 반스도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직접 파스타를 제조했으나 마르첼라 하잔의 요리책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생 파스타와 건조 파스타는 품질이 동등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서 요긴하게 사용했던 파스타 기계는 구석에 처박혔다. 수타짜장면과 생 파스타의 감성은 비슷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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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에 대한 소설가의 공감 에세이 장르다. 그냥 음식 에세이라고 하기엔 소설가의 해학과 스토리텔링이 근사하다. 레시피북에 대해 심도있는 비판과 더불어 공감할 수 있다.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옮긴이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하니 우리의 간지러운 부분을 슥슥 긁어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영국 작가이기에 영국식 유머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우리 정서와 딱 맞지 않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읽다보니 적응이 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되었다. 또한 나름 영국에서 유명한 요리사들의 레시피북을 설명하는데 미안하게도 고든 램지 밖에 모르는 나에게는 잘 모르는 요리사들이었다. 공감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백종원이나 이혜정 요리연구가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이 나왔으면 더 재미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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