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부로 양복점
가와세 나나오 지음, 이소담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이사부로 양복점

코르셋 혁명에 동참하라





유쾌하고 가독성 좋은 재미난 소설을 만났다. 이사부로 양복점에서 코르셋 혁명은 시작되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시대에 뒤떨어져 낡아 사라져가는 이사부로 양복점이 소설의 중심에 서 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살아 숨쉬는 이 소설은 자유분방하고 활기차다.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이사부로 양복점의 이사부로씨는 어느날 양복점에 어울리지 않는 코르셋을 전시한다. 노인네가 노망이 났다며 아이들 통학길에 코르셋이 웬말이냐며 각종 비난과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아름다운 코르셋의 진면모를 알아보는 이기 있었다. 바로 조용한 고등학생 아쿠아 마린이다.

나는 다시 침을 삼키고 쿵쾅쿵쾅 소란스러운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성용 속옷을 살펴보았다. 완벽하다. 디자인도 그렇고, 매끄러운 곡선도 그렇고, 꼼꼼한 재봉도 그렇고, 이렇게 수준 높은 것은 갈리에라 박물관 사진집에서만 봤다.

(p20)

아쿠아는 에로 만화가인 엄마를 도와 어시스턴트로 만화의 배경을 그리곤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코르셋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역사적 배경과 지식까지 이해했다. 그래서 이사부로 양복점의 코르셋을 보고 바로 진가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코르셋을 계기로 여든이 넘은 이사부로씨와 고등학생 아쿠아는 영혼의 단짝이 된다.

원래 무모한 짓은 젊은이가 아니라 늙은이가 하는 법이야. 나이를 먹을수록 멍청해지니까. 나는 꿈과 보람을 위해서라면 벌이 따위 없어도 행복하다느니 하는 말은 개나 줘버릴 헛소리라고 생각해. 그런 건 인정받지 못했을 때를 위한 예방책에 불과해. 상품에 맞는 대가를 얻어야 혁명이 비로소 성공하는 거니까.

(p142)

이사부로씨의 도전과 혁명을 함께 하면서 그를 응원하게 된다. 이사부로씨의 도전은 우리 사회에 대한 기존 세대의 처절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이 혁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이 혁명에 아쿠아가 동참 하면서 양복점 리뉴얼을 계획한다.

"네 제안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많지만, 그래도 믿고 맡기겠다는 거야. 코르 발레네에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네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이것 역시 잘못되지 않았겠지. (중략) 혁명을 일으키려는 순간에 새로운 감각을 부정하는 것도 이상해. 사람을 믿긴 어렵다만 신기하게도 너는 믿을 수 있구나."

(p284)

나라면 그저 고등학생인 아쿠아를 믿고 맡길 수 있었을까. 혁명을 한다는 것과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인다는 것은 서로 비슷한 맥락인데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혁명을 한다는 점은 맞지 않은 듯 하다. 우리가 이러한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말로는 혁명을 외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똘똘 뭉친 모순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에 마나베 여사가 한 짓은 권력을 이용한 억압이라고. 자기한테 굽히지 않는 인간을 힘으로 깔아뭉개려고 했잖아. 절대 용서 못해.

(중략)

그래도 시골 특유의 남존여비 사상을 없애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는 것만은 분명하대. 이혼하지 않으려는 농가에 가서 설득하고, 여자에게 불리한 노동조건을 바꾸기도 해서 그런 쪽으로는 의지할 만한 사람인가 봐. 하는 짓은 더럽고 악당 그 자체지만, 일정한 지지자가 있으니까 강하게 나오나 봐.

(p381)

이사부로씨와 아쿠아 이외에 다양한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다들 허를 찌르는 반전의 인물들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인줄로만 알았던 멀리하고 싶은 할멈이 자수의 귀재였다. 그저 사진관 할아버지로 생각했으나 젊은 사람도 어렵다는 컴퓨터로 사진 작업을 능숙하게 할 줄 알며 인터넷으로 해외직구까지 가능하다. 나이와 능력은 사실 별개의 문제다.



소설에 악역이 등장해줘야 제맛이다. 마나베 여사는 이사부로, 아쿠아, 아스카가 모두 못마땅하다. 이러한 악역의 활동은 소설을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악역의 모습은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 활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나베 여사도 혁명의 아이콘이라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코르셋은 보정용 여성 속옷이다. 또한 의료용 보조 수단으로 허리가 불편한 할머니들의 기립을 돕는다. 실제로 이사부로씨의 코르셋이 있으니 소설로 나오지 않았을까. 실제 그 코르셋을 보고 싶은 마음이다. 식견이 부족한 내가 봐도 감흥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사부로 양복점에 가장 처음 등장한 코르셋이 내 눈앞에서 만나면 참 재미있고 흥분될 것 같다. 여성용 속옷에 대한 흥분이 아니라 소설 속의 혁명의 상징물을 만난 흥분이니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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