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 글로벌 거지 부부 X 대만 도보 여행기
박건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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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글로벌 거지 부부의 대만 도보 여행기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달동네에 살고 있는 부부. 9살 연상 연하 커플이자 아내는 일본인 미키, 남편은 한국인 박건우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서울에서의 생활을 보내는 이 부부는 세계를 두 다리만 믿고 도보 여행을 한다. 텐트로 야영을 하고 카우치서핑(사이트 가입자끼리 숙박을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숙박을 해결하고 하루 1만원으로 음식을 해결한다. 현지인들에게 구호물품을 받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고 위험한 길은 히치하이킹으로 지나가기도 한다.

정릉 달동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도시가스 비공급 지역이다. (중략) 그래서 결심했다. 올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한 대만에 가서 지내기로. 근사한 계획이나 넉넉한 경비 따윈 없다. 그저 생명이 끊기지 않기 위해 버티던 겨울을 사람답게 지낼 수만 있으면 된다.

'서울' 중에서 (p10)

아무리 백수라고 하지만 정말 일을 안하고 여행만 하며 사는 것일까? 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그러한 듯하다. 그런데 왜 나는 이 부부의 삶이 부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던데. 그들은 고생을 자처한다. 쉽게 히치하이킹으로 다닐 수 있지만 굳이 도보 여행을 한다. 딱 필요한 만큼만 가방에 넣고 간다. 너무 많으면 힘들기 때문이다.



이 부부의 여행기는 참 신기할 정도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인심이 좋은 것인지, 배낭 여행자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호의적인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는 의문 투성이었다. 도시에 살아가는 내 입장에서 대만 사람들의 인정이 매우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가까이에 이웃이 생긴 것은 반가웠으나, 가스 배출이 자유롭지 못했다. 혹여 이웃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서였다. 반면, 이웃집에서는 뭐가 자꾸 새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역시 대륙에서 와서 그런지 규모가 보기 드문 누출이었다.

'핑둥' 중에서 (p207)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도보 여행 중인 이 부부를 사람들은 응원하고 간식을 나눠주고 잠자리를 제공한다. 아무 대가없이 그저 나누어 준다. 우리 나라의 시골 인심과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 나라 시골도 과연 이들처럼 이방인에게 베풀까 싶다.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하나는 저자의 글솜씨다. 유쾌하고 장난기어린 글이 참 매력있다. 일본인처럼 생긴 한국인 박건우 저자의 숫기없다는 모습이 어떨지도 궁금해진다. 또한 아내 40의 나이에도 강한 미키의 해맑은 미소가 눈이 선하다.


대만에 온 지 3주가 지나자 이제는 경찰서를 편안하게 들락거릴 수 있었다. (중략) 서장님은 전화를 끊자마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나갔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있었다. 일부러 옆 마을까지 가서 우리에게 먹일 음식을 사 온 것이다. 게다가 씻을 수 있도록 샤워실을 개방해주고, 지도상 가야 할 길까지 예습시켜주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까지 친절한 이들의 호의는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하다.

'화롄' 중에서 (p129)

우리 나라의 경찰서도 과연 이럴까. 커피를 내어주고 국수도 사주고 샤워실도 내어주고 텐트 칠 수 있는 자리도 내어주는 아낌없이 주는 경찰서다. 도대체 왜 그들은 이렇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일까. 대만이라는 나라이기에? 도보 여행자라는 이유 하나로? 이 책을 통해 대만의 정을 느끼고 사람의 정을 느낀다.

도착일까지 며칠 남지 않으면 관광객 기분을 느낄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와서도 그게 되질 않았다. 잘 곳 미해결, 부피 큰 짐들, 한정된 예산 등의 문제가 있으면 도무지 관광할 기분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 미키가 이런 면에서는 나보다 긍정적이라서 관광지의 겉이라도 훑지, 나 혼자였으면 고개만 돌리고 지나쳤을 것이다.

'신주' 중에서 (p324)

관광으로 방문하는 대만과 도보 여행으로 만나는 대만의 모습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책을 통해 도보 여행을 간접 경험한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괜시레 내 마음이 설렌다. 기존에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도 사라졌다. 내 인생에서 이들처럼 도보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도 하기 힘든 도보 여행을 나중에 나이가 더 먹어서 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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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일간의 대장정은 참 숨가쁘면서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강풍의 위력에 몸이 휘청거리는 듯한 체험을 했고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듯한 따스함도 느꼈다. 그들 스스로 글로벌 거지 부부라 말하는 모습이 그저 당당하고 멋있게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이다. 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은 대만의 길 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1000km가 넘는 거리를 걸으며 대만에서 쌓은 추억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 부부는 다른 책 <글로벌 거지 부부>에서는 인도, 라오스, 태국을 무일푼으로 여행한 내용도 담았다고 한다. 또한 대만에 가기 7주 전에는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들고 이들처럼 실천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려 한다. 도보 여행을 못하는 내 처지가 참 아쉽다. 짧게 나마 여행을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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