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실험 - 문명이 붕괴된 이후의 세상을 실험한 어느 괴짜 과학자의 이야기
딜런 에번스 지음, 나현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유토피아 실험

어디에도 없는 장소 '유토피아'






에너지의 고갈로 세상이 종말할지 모른다는 학자들의 주장을 종종 듣는다. 자칫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저자 딜런 에번스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유토피아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허무맹랑하고 뭔가 비이성적 행동처럼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그의 생각은 묘한 끌림과 설득력이 있다. 유토피아 실험이 실패로 끝남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이 궁금해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실험을 하나 시작할거야."

"그래그래, 무슨 실험인데?"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을 실험하는 거야."

수화기 반대편에서 침묵이 흘렀다.

'애덤' 중에서 (p85)

내 주변 사람이 지구 종말 이후의 삶을 실험한다고 하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 저자 '딜런 애번스'의 동생처럼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다 아무 말도 못할 것 같다. 허무맹랑해 보이고 왜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앞설 것 같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이런 말을 듣는다면 평생 그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현대 첨단 기술 사회에서 무작위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전기도, 석유도, 정부도 없는 세상에 대처해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애덤' 중에서 (p86)

유토피아 실험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다양했다. 위대한 영의 가르침이 우선인 '애덤', 노아의 방주 증후군으로 세상의 종말이 우선인 '에그릭', 근처 오두막으로 이사온 여자친구 '보'를 포기할 수 없는 이 책의 저자 '딜런 에번스' 등 누가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구분이 모호해지는 그들은 함께 유토피아 실험 안에 있다. 그들은 유르트(게르)를 짓고 생존을 위한 구상을 한다.



모든 공동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듯 하다. 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의견이 존재하고, 각자의 의견만을 주장한다면 하나로 통합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유토피아 실험을 위해 모인 사람들 역시 다른 생각들로 인해 서로 대립하게 되고 하나로 뭉쳐지기는 쉽지 않았다. 종교에 대해 지내는 방식에 대해 등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했다.



유토피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닉이 장작을 패다가 도끼로 손가락을 찍는 사고가 일어났다. (중략) 대개 당연하게 여기는 소독약과 기타 몇 가지 단순한 현대 의약품이 없으면 경미한 상처도 치명적일 수 있다. 작은 상처라도 감염되면 패혈증으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봄' 중에서 (p184)

유토피아 실험에서 이러한 사고는 이 실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현대의 병원과 의약품없는 태초의 삶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문명이 붕괴된 세상에 대한 실험이지만 문명의 도움이 없이는 죽을지도 모르는 유토피아 실험의 현실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정도까지 규칙과 규율을 정해야 하는 것일까란 의문이 든다. 물론 누구나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존재하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자유, 자율이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애초부터 과학 기술의 혜택을 경험해본 적 없이 사는 것과 이미 누려본 과학 기술의 혜택 없이 사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수렵 채집 시대의 조상들은 이이팟을 그리워하지 않았지만 유토피아에서의 나는 분명 아이팟이 그리웠다.

'봄' 중에서 (p197)

이 대목에서 유토피아 실험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문명이 붕괴했다고 한들 집 짓는 기술이 후퇴할 것도 아니거니와 누리고 살던 모든 것들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사용하고 싶은 아이팟을 포기하면서 지내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유토피아 실험을 원시주의와 동일시 하는 설정부터 이미 어긋난 것이 아닐까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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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도 언급했지만 문명의 붕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인적 기질이 비관주의적 성향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성향들의 모임은 공동체가 나누는 대화, 토론, 결정 등에 영향을 미친다. 이 작은 공동체도 사람 간의 견해 차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가족 안에서도 그러한데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자급자족하는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직접 체험하기 힘든 유토피아 실험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성공의 사례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간접적 실패 사례도 큰 도움이 된다. 유토피아 실험은 그 단어가 이미 포함하는 뜻인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점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유토피아 실험에도 결국 문명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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