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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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세계

죽음의 경계에서 나의 혼돈을 마주하다




저자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열네 살 암 선고를 받은 그는 10년간의 치료 끝에 한쪽 다리를 잃고 페와 간의 일부 또한 잃었다고 한다. 스물네 살부터 글을 쓰고 연극 대본을 집필하며 배우로 활동하고 감독활동도 했다. 젊은 시절의 병 투병이 긍정적으로 변모하여 환상적 작품들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의 작품이 궁금해 진다.



구절 하나하나가 어렵지는 않지만 쉽사리 넘어갈 수 없다. 표현들이 몽환적이고 사색적이며 함축적이다. 구절들마다 전하는 바가 매우 깊기에 깊은 사색이 필요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저자의 경험에서 탄생한 소설이 무언가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p24)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이 내 코 앞에 다가왔을때. 나는 어떠할까. 그 심오한 이야기가 푸른 빛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랜드 호텔로 떠난 열일곱살의 소년이 한 섬에서 열여덟을 맞이한다. 열여덟 살의 경계에서 한 기로에 선다. 그 곳에서 소년들, 소녀들... 그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나눈다. 그가 그 섬에서 깨우친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너는 두려워하는 게 지겹지도 않니?

네 행동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 말이야.

(p30)

항상 두려움이 앞선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내 행동에 대한 결과가 두렵기 때문이다. 내일 당장 죽는다면 이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오늘 죽을 거라면 결과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겠지. 그렇기에 두려움이 사라질텐데. 내일이 없을 것처럼 하루를 산다면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을텐데.

당신이 항상 하고 싶었고 이루고 싶었던 것을 찾아요.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이틀, 사흘 또는 나흘의 시간이 있어요.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리고 당신 삶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거예요.

(p85)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나 싶다. 시간이 충분하기에 하고싶은 일을 못하는 것일까. 시간이 부족하다면 오히려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데 왜 망설이는 것일까.

우리는 어리석은 일에 두뇌를 너무 많이 써서 결국 터무니없는 문제 해결에 매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때 당신의 본질과 진정한 당신이 등장한다.

(p94)

절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의 본질, 진정한 나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터무니없는 문제에 매달려 있는 것만 같다.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진정한 우리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난 항상 자식을 잃은 부모를 지칭하는 단어가 없다는 걸 증오했어요. 그 단어는 계속해서 '어머니'와 '아버지'예요. 그 지위는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p109)

생각해보니 그러하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우리는 어떻게 불러야 할까. 평생 어머니이며 아버지로 살아야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스페인도 그 단어가 없다. 말 그대로 상식적이지 않은 아픔이지 않을까.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아픔이지 않을까.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는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네가 그들이 바뀌길 원하는 것을 말해.

(p122)

혼돈의 의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지만 온전히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받아들이기 힘든 나의 모습이라는 말이 맞을까. 책의 부제로도 사용된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는 말을 기억해두고 싶다.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나의 혼돈을 사랑하는 일이다. 세상을 떠난 얀이 남긴 그 말로 인해 그녀는 혼돈 속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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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번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모두 온전히 이해했다 말하기 힘들었다. 심오하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작가가 말 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가 경험한 것들, 느꼈던 것들을 평범한 내가 모두 알기에는 나의 식견이 조금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단 한 번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알기는 힘들었으리라. 그렇기에 이 책이 더욱 특별해 보인다. 몇 번 더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중에 시간이 지난 후에 꼭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놀랍다. 열여섯, 고작 3프로의 생존 가능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그 주에 만났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그의 모습을 통해, 이 책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가를 생각한다. 어쩌면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이런 마음을 감출 수는 없다. 그저 감사하다. 혼란스럽고 혼돈스럽다. 그저 이러한 감정을 그대로 두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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