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인자에게
아스트리드 홀레이더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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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인자에게



현재 진행중인 홀레이더르 가족의 비극





1983년 유럽 지역에서 떠들썩했던 '하이네켄 사건'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네델란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유럽 지역에서는 엄청나게 이슈된 사건이다. 주동자들은 알프레드 하이네켄을 납치하고 600억의 몸값을 요구했고 붙잡혀 10년을 복역하고 나와 갱단을 만들었다. 이 사건은 영화화 되기까지 했고 많이 알려졌지만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는 모두 드러나지 않았다. 허나 이 하이네켄 사건과 그 이후의 수많은 살인사건의 내막을 알리고자 아스트리드가 세상에 자신의 친오빠 빔의 행태를 고발한다.



이 소설같은 이야기가 모두 실화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슬프고도 가슴 아프다. 전문 작가가 아닌 변호사 출신 아스트리드 글은 매우 사실적이며 박진감 넘친다. 사건의 중심에서 모든 내용을 알고 있고 이를 폭로하기로 마음 먹은 아스(혹은 아시)의 결심은 쉽지 않았다. 가족 빌럼(빔)에 대한 폭로가 스스로 배신자 유다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죄책감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고발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흔들렸다. 자신의 고발을 빔이 알아채는 순간 자신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특히 그 상황 및 내적 심리 표현이 매우 뛰어났다. 직접적인 경험을 한 자신만이 그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6년 부터 2011년까지 우리는 법무부가 코르의 죽음과 다른 살인들에 대해 빔을 기소할 만큼 많은 증거를 찾을 수 있기만을 필사적으로 바랐다. 이 무렵 청부업자 몇 명이 기소되었지만, 빔은 아니었다. 아무도 오빠를 상대로 증언할 용기가 없었다. (P185)

가족을 배신할 수 없는 가족들을 이용한 빔의 모습이 냉혈인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천재적인 악마,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안이다. 자신의 안위와 돈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언제든 처참하게 짓눌러버린다. 돈을 갈취하고 살인을 교사하지만 정작 자신은 유유히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되는 교묘함과 치밀함을 지녔다. 빔은 납치 사건을 통해 범죄의 지능이 한 단계 상승했다. 사람들에게 고의적으로 접근해 불란을 조장하고 자신은 조력자인척 돈을 갈취한다. 이러한 행태는 뛰어난 연기력과 사교력이 바탕이 되어 사람들을 홀린다.


예전에는 달랐다. 오빠를 위해서 내 목숨을 던질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하이네켄 납치 사건 이후 우리 모두가 따돌림을 당하던 때, 나는 오빠가 우리에게 가르친 '우리 대 나머지 세상'이라는 가족의 충성심에 대한 신화를 믿었다. 하지만 오빠가 자신의 가족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깨달았다. 우리의 적은 바깥세상이아니었다. 오빠가 우리의 적이었다. (P199)



빔 오빠는 우리가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를 두지 않아요. 그 반대로 가족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기대하죠. 하지만 우리의 소위 충성심이라는 건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게 아니에요. 순수한 두려움에서 억지로 나오는 거죠. 이런 충성심은 항상 오빠를 향하는 거지, 그 반대는 절대로 없어요. 오빠는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를 배신하죠. (P216)

어린시절은 빔과 소냐, 헤라르트, 아스트리드의 아빠는 폭군이었다.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다. 하루하루가 고난이었다. 그러한 가정 폭력 안에서 빔은 아빠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가정 안에서 아스트리드를 살뜰하게 챙긴 사람이 빔이었다. 아빠에게 걸린다면 큰 난리가 날 수도 있는데도 빔은 아스트리드를 챙기고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아스트리드에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빔이다. 이제 빔은 가족을 위협하는 폭군이 되어 있었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올바른 행동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어. 지금 당장은 우리 모두 살아 있잖아. 대단한 삶은 아니지만 최소한 살아는 있다고 우리가 증언을 하면 아예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어. 그게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한 일일까? 우리 없이 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남겠어? 누가 오빠로부터 지켜주겠어? 그게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거야. (p265)

어떻게 이 악마를 정의의 심판을 받고록 할 수 있을 것인가. 빔에 대한 증언은 아스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빔에 대한 증언을 하고 살인을 당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빔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고 처벌받지 않았다. 법무부에 협조한다는 자체가 빔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아스는 법무부에 협조하기로 마음먹는다. 녹음기를 몸에 숨겨 빔과의 대화를 녹음하고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 진술서를 작성하기 위해 이틀의 시간이 필요했으나 이 또한 모험이었다. 빔은 아스와 소냐를 항상 자신의 통제 안에 두어야 했기 때문에 진술서 작성을 위한 모험아닌 모험을 해야했던 것이다.

"오빠가 코르를 살해했어요. 자기 매제를요."

내가 말했다. 드디어 말했다. 10년 동안의 침묵 끝에 드디어 소리내서 말했다! (p273)

쉰셋의 나이 아스트리드는 평생을 오빠의 그늘에서 살았다. 차라리 이 책이 소설이었으면 할 정도로 가족의 삶은 참담하다. 폭력의 되물림의 중심에 빔이 있었고 그 중심으로 가족은 평생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가족에 의해 자유가 없는 삶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친오빠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살아간다는 게 정말 어떠한 느낌일까. 가장 가깝고도 믿음을 주는 가족을 믿을 수가 없다. 어느 곳에도 구원 요청을 할 수 없다. 구원 요청을 하면 자신이 죽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평생을 봐온 빔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빔을 죽이고 교도소에 가는 것이 빔과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아스는 생각한다. 그만큼 빔과 함께 살아가는 현실이 지옥같다. 이런 비극을 끝내고자 용기를 낸 아스는 결국 빔을 교도소에 가둔다. 하지만 그 불안의 비극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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