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엘리트 제국의 몰락



신자유주의의 탈피




먼저 엘리트에 대한 정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엘리트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 이 정의를 직접적으로 보기보다 한 예시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 엘리트에는 몇 가지 조건이 존재한다. 바로 권력과 영향력, 자본력이라 할 수 있다. 영향력 있는 대규모 조직의 최상위자거나 엄청난 자본의 소유자가 엘리트층이다. 유명한 축구 선수 메시와 호날두는 최고의 명성과 부를 거머줬다. 그러나 이들에게 엘리트라는 단어에 부합한다 보기는 어렵다. 축구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임원들과 축구 클럽 구단주들이 바로 엘리트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자본의 개념이 중요하다. 복권 당첨자가 돈은 많지만 자본가는 아니다.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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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의 엘리트는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는가' 부분에 큰 공감이 되었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상위층은 점점 재산이 쌓여가지만 하위층의 재산은 점점 줄어든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왜 물처럼 자연스럽게 부가 재분배되지 않는 것일까. 낙수효과가라는 말처럼 물처럼 자연스럽게 부가 분배되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0.1%에 해당하는 최상위층의 수입은 총수입의 22%로, '고작' 7%에 지나지 않았던 1970년대 후반에 비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상위 1%가 차지하는 자산은 총자산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2%에 이른다. (p140)

최상위층의 수입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통계자료가 보여주고 있다. 상위 1%가 총자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 한다는 내용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이며 부의 양극화는 이미 심화되었다.



미국은 부유세 즉,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은 내도록 하는 방향이 2020년 대선의 핫 키워드다. 연소득 1000만 달러를 넘으면 70%까지 세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이건 너무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부의 양극화가 나날이 심화되는 현 시점에 이러한 정책이 맞는 방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하위 90%에 해당하는 인구의 경우 상황은 역전되었다. 오늘날 이들은 반세기 전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상위 40%에 속하는 계층의 세율은 1% 포인트 증가했는데, 나머지 하위 50%의 세율은 1962년의 19.2%에 비해 2010년 23.6%로 거의 4분의 1이 증가했다. 그리하여 세율은 거꾸로 된 방향으로, 다시 말해 아래에서 위로 거대한 재분배를 창출해냈다. (p147)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에 달려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통계가 보여주고 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이유는 소득의 하위 계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지만 상위층의 세금 부과율 변화는 미미한데 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내려간 것이라 볼 수 있다. 나날이 누적되어 온 그 작은 %의 변화는 하위층을 짓누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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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를 회피하는 경향 독일의 부유층과 부자들에게 국한되지 않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며 대개 자산이 많을수록 그런 경향도 커진다. (p222)

성실하게 세금을 납부해야 함은 당연한 것일까. 왜 소득이 많은 부자들은 납세를 회피하려 할까. 탈세는 위법이지만 걸리더라도 실수였다며 자기 연민의 모습을 보인다. 수입을 지키기 위한 인간의 기본 속성일지도 모르겠다. 하자만 소위 유리 지갑이라 하는 회사원들의 성실한 세금 납부를 생각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회사원들은 성실 세금 납부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도둑이라 분노하며 세금 납부를 회피하는 온갖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이러한 것이 유리한 세법을 찾는 합법적인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이게 정상적인 것일까.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특권적 환경에서 보낸 부르주아나 상류층 출신 엘리트들 중 대다수는 독일의 사회적 격차가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사회적 격차는 기본적으로 능력의 차이에서 시작된다고 여긴다. (p237)

어린 시절부터 점차적으로 형성된 엘리트들의 시각은 그들 스스로 잘못된 것이 없다고 한다. 부의 세습은 당연하며 고액의 연봉도 자신들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라 말한다. 스스로 고위층임을 알고 있고 아래 하위층은 동떨어진 세계로 생각하며 관심조차 없다. 하위층의 사람들의 연봉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로지 자신들에게 들어오는 돈에만 관심이 있는 듯 하다.



특히 장관급 정치인들의 가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엘리트들의 사고를 여실히 드러낸다. 본인이 이룩한 것들은 스스로의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며 가난한 자들은 노력하지 않고 정부의 도움만을 받아 살아가려는 게으름이라 치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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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독일 전역, 대도시뿐 아니라 시골 지역에서도 투표율은 소득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지난 몇 년간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980년 이후의 선거를 비교한 결과, 소득 하위 3분의 1과 상위 3분의 1의 투표율 격차가 2%에서 20%로 10배나 증가했다. 인구 집단의 양극화된 생활환경이 유권자의 투표율에 분명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p292)

투표가 가진 힘은 대단하다. 투표는 정치인을 바꾸고 정당을 바꾸고 사회를 바꾼다.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면 투표를 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투표를 멀리한다면 사회는 점점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 또한 정치와 투표에 관심이 부족했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투표 미참여로 이어졌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많은 이들이 정치에 대한 실망감으로 투표하지 않고 정치는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외면받는 이들은 더욱 외면받았다.




정치 엘리트가 뿌리부터 다시 태어나려면 스페인의 좌파 정당 포데모스처럼 사회운동의 산물로 새로운 정당이 창당되는 방법도 있지만, 영국 노동당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당원들을 통해 정당 내부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도 있다. (p312)

결국 신자유주의를 탈피해 새로운 그 무언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층민의 지지를 받는 굳건한 새로운 정당은 다른 어느 정당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는 사회인만큼 다수의 하층민이 집결하면 그 힘이 발휘될 수 있다. 글에서처럼 창당 혹은 기존 당의 재편이 답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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