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지막 히어로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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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히어로

베르네임의 팬이 되다

책을 읽고 난 뒤 다양한 생각에 사로 잡혔다. 이렇게 소설을 쓸 수도 있구나. 내가 소설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 간결하지만 강력한 문체의 이 소설은 나의 혼을 쏙 빼놨다. 저자 '엠마뉘엘 베르네임'에 대해 궁금해지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다양한 수식어가 절로 떠오르는 그녀의 소설은 소설의 미니멀리즘이라 할까. 장황하고 복잡하지 않아 더 매력적인 소설. 나는 이미 베르네임의 팬이 되었다.

저자의 이력이 더욱 놀랍다. 일어학을 전공한 파리인, <영화 평론>지 사진자료실 책임자 4년, 시나리오 작가, 드라마 대본 심사위원, 메디치상 심사위원, 61세의 일기로 타계. 20년간 베르네임이 낸 소설은 단 5편. 모두 100쪽 남짓한 소설이다. 잭나이프(1985), 커플(1987), 그의 여자(1993), 금요일 저녁(1998), 나의 마지막 히어로(2002).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 읽을 수 있는 그녀의 책은 4권 밖에 남지 않았다.

록키 발모아처럼 일어날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스물다섯 살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였다. (p15)

베르네임의 자전적 소설인 나의 마지막 히어로는 주인공 리즈의 일대기가 담겨 있다. <록키3>를 관람한 이 후 그녀의 삶은 달라진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진정한 팬으로 탄생한 순간이랄까. 중도 포기했던 의사의 꿈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록키3>를 보고 고약한 감기로 앓아 누운 리즈는 깨어나는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남자친구 미쉘은 리즈의 선택을 비웃고 리즈는 그를 떠난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하여 의사가 되고 장을 만나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이제부터, 그녀는 버는 돈의 10퍼센트를 이 계좌에 입금할 것이다. 이 돈은 스탤론을 위한 것이다. 불행히도 스탤론이 가난에 쪼들리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p48)

실베스터 스탤론을 향한 리즈의 '덕질'의 모습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발판은 바로 <록키3>의 실베스터 스탤론이었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스탤론의 영화를 보러가는 그 시간은 리즈에게 힐링의 시간이다. 그저 영화표를 구매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듬직한 남편 장을 만나 안정적 삶을 꾸렸지만 스탤론을 향한 리즈의 마음은 여전했다. 이를 이해하는 남편 장의 모습에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내 아내가 우상을 위해 돈을 따로 마련하는 모습을 본다면 어떠한 마음이 들까. 장의 모습처럼 아내를 포근히 안아 줄 것 같다.

스탤론이 아니었더라면 리즈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스탤론은 그저 불씨에 불과했고 그녀의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라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무엇이든 불씨는 존재하지만 땔깜이 부족해 버티기 힘들 뿐이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건 사실 스탤론이라기 보다 그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사실 내용 자체에 반전이나 극적인 요소가 있지 않다. 이 내용을 장황한 장편 소설로 만났다면 아마 이런 찬사를 보내긴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결하고도 강렬한 그녀의 문체가 빛을 발한다. 이 소설은 이제껏 만나왔던 소설들과 그 느낌이 매우 달랐다. 간결함 속에 담겨진 그 뜻을 생각해보며 읽게 된다. 커다란 맥락을 제시하면서 다양한 작은 줄기의 맥락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여백의 미'라고나 할까. 빈틈없이 채워진 어지러운 그림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그림에 매료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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