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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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우주인이 되고 싶은 샐러리맨의 생존기

소설을 읽을 때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소설이 그랬다. 주인공과 한 몸이 되어 우주를 꿈꾸는 샐러리맨이 되었다. 주인공 이진우처럼 불안에 떨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며 우주에 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철저하게 픽션이지만 사실적이라 놀라웠고 또한 서정적이며 감성적 표현들의 섬세함이 담겨있다. 이진우를 중심으로 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적 교차가 이 시대의 우리와 다름 없었으며 처절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그의 마음에 동질감을 느낀다.

이 소설은 구상과 취재 시작부터 13년동안 씌여졌으며 집필 사년간 서른다섯 번 개고했을 정도로 많은 정성이 담겨 있다.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는 이 소설이 가진 강점이라 생각한다. 우주인이 되겠다는 집념하나로 나아가는 이진우의 모습이 저자 권기태의 집념과도 일맥상통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끈질긴 노력 끝에 나온 소설인만큼 저자의 깊은 애정이 담긴 소설일 것이다.

주인공 이진우는 생물학 연구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딸 둘을 키우는 평범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하다. 좋은 연구 결과를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살아가면서 가슴 안에 우주인의 꿈을 꾸고 있다. 그토록 열심히 노력했건만 굴러들어온 경력직 직원이 자신을 앞질러 팀장이 된다. 하물며 팀장은 자신을 짓누른다. 그가 지원한 우주인 선발 떄문인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는 팀장때문인지 이진우는 올해 좋지 않은 평가가 내려진다. 부당한 처우라며 팀장에게 말하지만 녹록치 않다.

서른다섯, 청춘은 떠났지만 연륜은 도착하지 않았다. 며칠 후면 서른여섯이다. 나는 이제 좀 유별난 해프닝을 한번 겪고서, 떠나보내는 건가? 허물을 한 꺼풀 벗고서 감기 기운만 남은 채로... (p104)

서른 다섯 이진우의 모습은 이직을 준비하는 회사원들의 모습과 닮았다. 우주인 선발 과정에 지원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그의 모습이 영락없는 이직 결과를 기다리는 샐러리맨의 모습이며 흔한 우리 가장의 모습이다. 마치 나와 닮은 이진우의 모습에서 애정이 생기며 그를 응원하게 된다. 나도 딸을 가진 집안의 가장이며 공교롭게도 나이가 서른 다섯이다. 그리고 가슴에 꿈을 품은 평범한 샐리리맨이다. 2001년 개봉한 봄날은 간다를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최신작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약 15년 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훌륭한 지원자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우주인이 되는 무한 경쟁에서 최초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 세상은 최초만을 기억한다. 첫 한국 우주인 이소연은 후손 대대로 기억되는 이름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은 이소연의 고증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중력을 탓하며 쓰러지지만 중력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으리라. 하지만 지금 중력은 누구에게나 힘을 미친다. 누구나 똑같이 바닥에 닿게 하고, 서든 눕든 제 무게를 되살려준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고, 태양도 지녔지만 티끌도 가졌다. 그래서 중력은 모든 것이 제가끔 움직이고 저마다 살아가는 힘이고 조건이고 운명이다. (p152)

중력이라는 단어는 힘을 지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항상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는 그 중력은 참 신비한 존재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우리에게 작용하는 힘이 중력이듯 우리는 그 힘을 피할 수 없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 힘의 존재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힘이라는 전지전능한 존재로까지 느껴진다. 회사에 속박될 수 밖에 없는 샐러리맨의 처지를 중력이라는 힘에 비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이 바닥도 아주 잔인한 곳이야. 내 말은 여기도 요직과 말직, 출세와 좌천이 있다는 거야." 사샤가 손마디를 뚝뚝 꺾으면서 말했다. 나는 허탈한 느낌이 들어서 그개를 저었다. "회전문으로 나갔다가 도로 들어온 거 같아. 여기도 이렇다니까." (p204)

우주인이 되더라도 사실 다른 조직으로의 이동이다. 큰 변화가 있을 것이며 꿈이라고는 하지만 그 조직이나 이 조직이나 거기서 거기다. 회전문에 비유한 표현이 매우 와닿는다. 요직과 말직, 출세와 좌천은 어디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고 세상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숙명과도 같다.

"이것은 재난을 가정한 훈련이 아니야. 훈련 그대로가 재난이야." (p272)

훈련 과정에서 이진우는 이해할 수 없는 훈련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왜 이 훈련이 필요한지 납득할 수 없다. 재난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모두가 죽었을 것이기에 이 상황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훈련은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도 종종 만난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상황들 중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납기일,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 불가능한 아웃풋 요구 등 훈련 그대로가 재난이라는 말이 딱 들어 맞는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은 무거운 물체의 주변 공간은 중력 때문에 휘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의 근처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의 마음은 실내에 쳐진 그물 위에 선 것처럼 그가 움직이는 곳으로 기우뚱하게 쏠리곤 했다. (p301)

참 재미난 표현이다. 무거운 물체가 중력을 가진다는 의미다. 우리는 누군가의 중력에 의해 그 쪽으로 기우둥하게 쏠린다. 사회 생활에서 어느 조직이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은 구성이 되며 돌아간다. 나 또한 누군가의 중심 쪽으로 영향을 받으며 쏠려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중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나의 생에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여기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 아니, 내가 모험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만 있었더라면... 나는 아직 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바쁘기만 한 바보로 살았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채로 쳇바퀴를 돌면서 가끔 푸념하고 화를 내기만 하는 채로. (p408)

이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다. 우리는 모험을 두려워한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 수 있다. 새로운 세상에 꼭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나도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모험이 두렵긴 모두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곳에 머무를 수 없다. 그저 바쁘기만 한 바보인지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용기있는 사람인지는 이미 나에게 주어진 선택이다.


우주인이 되기 까지의 그 과정이 험난하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동료들과의 우애가 인상 깊었다. 우주인이라는 같은 뜻으로 모인 사람들끼리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미묘한 감정 싸움이 안타깝기도 했다. 누군가는 올라가야하며 누군가는 내려와야 하는 이 경쟁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윤리위원회의 에피소드는 참 애석해다. 이 상황이 그저 훈련의 한 과정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대외비 관리의 허술함에 대해 따지는 게 아닌 그 문서를 가진 사람을 벌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기 싸움인가 싶기도 했다. 아리송한 부분이다.

긴 호흡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숨막히는 우주인 선발 과정을 함께 했다. 함께 긴장하고 함께 선발 과정에 참여한 느낌이다. 우주인 선발 과정이라는 단면을 이 책에서는 그리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 줄기로 나아가는 이야기지만 수반되는 생각은 여러 줄기로 뻗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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