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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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소설의 맛을 느끼다

1995년 7월 발간된 <나의 아름다운 이웃>은 2019년 1월 개정판으로 재발간되었다. 책에는 1970년대 삶의 모습들과 재미난 이야기들이 48편의 짧은 소설과 함께 담겨있다. 나는 지금까지 박완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박완서 짧은 소설 48편을 담은 이 책 <나의 아름다운 이웃> 이 박완서와의 첫 만남인 것이다. 나름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나 박완서라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떨친 작가이기에 기대가 있음은 당연하지 않을까.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모든 것이 창조일 수는 없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 자신의 경험이 어느정도 소설 속에 묻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소설들을 하나씩 읽어볼 때 분명 다른 시각, 다른 사람의 입장이지만 본인이 실제 주인공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깊이 있고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이게 바로 박완서 작가가 가진 장점일까 싶었다.

또 다른 돋보디는 장점 하나는 위트가 아닐까 싶다. 피식하고 웃음짓게 만드는 글에 힘이 담겨 있다. 지나치듯 던지는 멘트 하나가 정곡을 찌르는 절묘함이 있다. 유쾌하고 상쾌하며 통쾌한 느낌이 가득 담긴 문체다. 이런 장점들이 함께 깃들어져 있으면서도 가독성을 놓치지 않았다. 아주 술술 읽힌다. 읽히지 않는 글을 아무런 소용이 없음은 명백하다.


마른 꽃잎의 추억 1~4

연작 시리즈 느낌의 이 4편은 참 흥미로웠다. 박완서 스타일을 확 느낀 작품으로 한 마디로 재미있다. 아이 둘에 남편을 둔 여인의 이야기로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한 미모 했던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도 미남이거나 돈이 많거나 하는 인물들이었다. 미술을 했던, 새끼 재벌이었던,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았던, 사랑해서 떠나버렸던 남자들을 재회하게 된다. 과거의 남자들을 만나게 됨은 우연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낭만'이 그리운 여인이라는 점이다. 그 시절의 그 낭만이 그리워 과거의 남자들을 만나지만 그 시절의 그 낭만은 이미 저 멀리에 있는 것으로 추억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이렇게 여자에 대해 남달리 평등한 생각을 가진 남편이 어째서 남자가 심심하면 바람날 가능성에 대해서만 알았지, 여자도 너무 심심하면 바람날 수도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려 들지 않는 걸까? 나는 문득 이상하게 생각한다. (p57)

완성된 그림, 아파트 부부

부동산, 아파트와 관련된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부동산은 핫한 주제다. 열심히 돈을 모아 땅을 사고자 아파트를 사고자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부동산과 완성된 그림의 비유는 참 묘하다. 미완성일 때는 갖기엔 뭔가 부족함에 완성되기를 기다리지만 완성되면 더 갖기 어려워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을. 완성이 되면 다시 미완성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아파트를 꿈꾸고 당첨되어 행복한 마음에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 명의가 무엇인지, 남자가 설 곳은 작아지는 아파트의 묘한 법칙은 시대를 막론하고 공중으로 터가 옮겨진 아파트의 힘이 깃들어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벽을 하나로 가까워졌지만 무언가 멀어진 사람들의 관계의 아파트는 새롭고도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문규는 그제서야 친구의 지난날의 그림의 미완성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그 참뜻을 알 것 같았다. 그는 지난날의 친구와, 지난날의 친구의 그림이 가슴이 저리도록 그리웠다. 그러나 미완성을 완성시킬 수 있어도 완성을 미완성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p139)

여자가 좋아

박완서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비판과 풍자를 잘 엿 볼수 있는 작품이다. 아들을 원하는 시대적 풍토가 글 속에 반영되어 있다. 여자로 태어나 남자 아이처럼 자란 여자 아이는 머슴애와 같은 모습이 풀풀 풍긴다. 대학 시절 '와장창 살롱'으로 헬렐레 돼 버리는 남학생들에 반감을 느껴 여학생들끼리 똘똘 뭉쳐 부정선거를 방지하고자 미팅 전법을 구사한다. 결국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려한 후보를 떨어지게 만들고 스스로 좀 더 여자다워진 모습을 발견한다. 시대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남아 선호 사상이 남아있는 듯 하다. 또한 아무렇지 않게 부정 선거를 일삼는 무리들도 여전한 듯 하다. 언제쯤 공명정대한 세상, 평등한 세상이 될지 모르겠으나 꿈꿔 보련다.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에 부정선거라는 게 있었을 때 막걸리에 한 표를 팔고 '니나노'를 부르며 비틀대던 시골 여편네들 꼬라서니도 설마 이보다 더 추했을까? (p198)

나의 아름다운 이웃

한옥에서 시집살이하며 불편함에 아파트를 꿈꾸던 여인. 그토록 꿈꾸던 아파트에 입성하지만 차가운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에 이내 곧 아쉬움을 느낀다. 그러다 바로 옆집에 이사온 이웃의 싹싹함에 마음이 녹는다. 그러다 옆집 여자가 위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쓰인다. 진심으로 그녀가 잘 이겨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 시절 사람들과 정이라는 소재의 이야기다. 많은 공감이 되고 지나면서 마주치는 이웃들고 데면데면한 현실을 되돌아 보게 된다. 내 이웃이 아름다운 이웃이었으면 하고 바라기 보다 내가 먼저 아름다운 이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괜시레 정이 그리워지는 작품이다.

그 여자는 알까? 내가 마음으로부터 그 여자의 건방을 빌면서 손자가 결혼하는 걸 볼 때까지 살고 싶은 내 과욕을 줄여서라도 그 여자의 목숨에 보태고 싶어 하는 마음을. (p390)


이 책을 읽는 이 시간은 나에게 아주 가치있는 시간이었다. 박완서의 작품을 만났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보고 싶다. 그녀의 작품을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글들이 매우 재치있다. 70년대 사회적 문제들을 비틀고 꼬집는 글 솜씨가 대단하다. 또한 그 시절의 문제들이 아직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 더욱 놀랍다. 지금 시대라고 해서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힘든 문제들이기에 그 통찰력에 감탄이 절로 난다.

부동산, 아파트, 부패, 부정선거, 남아선호사상 등 지금 시대에 어느 하나 해결된 것 없는 문제들이다. 그만큼 힘든 문제인가 보다. 사람 사는 모습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비슷비슷 하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다. 이 시절에 살고 있는 나 또한 아파트 안에 벽 사이로 이웃들과 함께 하며 살아간다. 이번 기회에 이웃들에게 정을 나누는 이웃이 되고 싶다. 정치적 이슈들은 언제나 핫하며, 투기와 투자의 모호한 경계 속에 힘 있는 자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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