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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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故 박완서 선생(1931~2011) 8주기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며

하나 된 마음으로 바칩니다.

2019년 1월 30일, 故 박완서 선생 8주기로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스물아홉명의 작가들의 글이 모여 <멜랑콜리 해피앤딩>이 탄생했다.

대한민국에 참 많은 작가들이 있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저명한 작가는 몇이나 될까? 저명한 작가들 중에서 '박완서' 작가의 이름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매우 저명한 작가이나 부끄럽게도 아직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다. 책장을 뒤져보니 박완서 작가의 책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 권이 있다. 나는 몰랐지만 내 주위에 박완서 작가의 책은 있었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아직 박완서 작가는 미지의 세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여성문학의 대표 작가로 주목 받았다는 그녀에 대해 궁금해진다. 바로 이 책이 이런 목적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 작가를 기린다는 의미는 그녀의 이름을 다시 회자하며 그녀의 작품을 찾아 보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물 아홉명의 작가, 스물 아홉편의 단편 작품들이 담겨 있다. 작품 하나하나 귀중하고 재미있다. 재미있는 작품, 독특한 작품, 아리송한 작품,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품, 숙연한 기분에 멍해지는 작품 등 짧지만 임팩트 있는 작품들이다. 그 중 기억하고 싶은 몇 작품을 아래에 간략히 적어본다.

강화길 <꿈엔들 잊힐리야>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한참을 멍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아등바등 살아온 그녀. 그녀와는 달리 그녀의 남편은 사업 실패 후 4년 뒤 교통사고로 떠난다. 부부싸움을 할 때는 아이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일본어로 싸운다. 할머니가 된 그녀는 과거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한다. 네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일본어로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던 첫만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연이란 그런걸까.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은 운명처럼 아무도 모르게 다가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네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 놀랐다. 어쩌면 그렇게 몰랐을까. 그리고 기억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고 말했다. (중략) "계속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었더라고."(p25)

백민석 <냉장고 멜랑콜리>

이 작품은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키175에 100킬로의 양철 드럼통 몸매의 소유자 민수씨에 대한 이야기다. 냉장고의 냉동실에 냉동식품을 저장하고자 하는데 자리가 부족해 냉장고를 주문한다. 민수씨의 눈에 눈물이 난다. 냉동실 비율이 큰 냉장고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받은 냉장고가 소음이 심해 바로 반품한다. 반품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한달여만에 새 냉장고를 받는다. 이제는 망가진 헬스용 실내 자전거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 이게 뭘까. 이상하게도 계속 민수씨가 떠오르고 생각난다. 양철 드럼통 몸매의 민수씨가 훌쩍 훌쩍 우는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은 역시 탄수화물이었던 것이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혁명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그의 눈물은 아무 때고 넘쳐흘러 그를 창피하게 만들 수 있었다. (p108)

조경란 <수부 이모>

먹먹해지는 글이다. 수부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은 글이다. 한 평생 열심히 일하고 살면서 가족들 뒷바라지에 정작 자신은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수부 이모다. 생전 처음 간 여행길에 이태리 골목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트랜치 코트를 조카에게 건낸다. 45세 독신으로 살았고 유방암이 재발한 수부 이모. 생존 수영법을 배워 누워뜨기 잣로 물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이모의 모습은 마치 한 송이의 꽃과 같다. 먹먹하다.

수부 이모는 말했다. 파도에 휩쓸려도 수영을 못해도 물에 빠졌을 때 당황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다 (p260)

조해진 <환멸하지 않기 위하여>

가독성이 상당히 좋아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정혜와 윤석은 D대학에서 재회한다. 과거 윤석은 조건 좋은 민희에게 갔다. 우월한 조건의 민희에 윤석은 정혜를 떠났다. 윤석은 아내가 위암 3기로 힘든 시기를 보낸다고 한다. 정혜는 동아시아연구소 계약직 연구 교수 면접의 면접관이다. 최상위권 점수를 받았지만 윤석은 합격 전화를 받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한 연인에게 가슴 저리는 그리움이나 애틋함 가은 아름다운 감정을 차용증서처럼 품기도 하겠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다고. 블라인드를 다 올리기 전까지, 그러나 정혜는 오래전 연인에게 아낌없이 바쳤던 마음이 고작 환멸로 변성되어 남겨졌다는 걸 깨닫지 못할 터였다. 환멸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p281)


스물 아홉 명의 작가 이름을 적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아래에 적어 봤다. 나의 독서 인생이 짧기에 내가 잘 모르는 것 일뿐 각종 상을 수상하고 많은 책들을 펴낸 작가들이다. 이 책을 통해 한국 작가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읽으면서 가독성이 좋으며 재미나고 참신한 내용의 단편들은 작가를 기억해 두고 그 작가의 작품들을 찾아봐야 겠다.

강화길, 권지예, 김사과, 김성중, 김숨,

김종광, 박민정, 백가흠, 백민석, 백수린,

손보미, 오한기, 윤고은, 윤이형, 이기호,

이장욱, 임현, 전성태, 정세랑, 정용준,

정지돈, 조경란, 조남주, 조해진, 천운영,

최수철, 한유주, 한창훈, 함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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