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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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다"

할아버지와 손녀 조라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가독성이 좋고 이해가 쉽다. 모든 사람들이 접하기 쉽도록 씌여졌으며 자본주의에 대해 알수 있도록 돕는다. 만약 어려운 용어들만 남발되고 딱딱한 경제용어들이 사용되었다면 읽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각종 이념들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겨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뜻깊은 것은 이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자본주의에 대해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민낯을 본 적이 없다. 보았더라도 모른채 지나쳤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자본주의에 대해 내가 정말 무지함을 알게 되었다.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그 자본주의의 실제 모습을 접하게 되었고 정말 자본주의가 사라져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고 세계의 가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겼건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 안에서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피해를 받기도 했다. 우리가 받은 피해는 사실상 혜택 받은 자들 사이에서의 피해일 뿐 심각한 정도는 아니다. 사실 엄청난 혜택 안의 외침에 불과하다.

계속 죽어나가고 있지. 한꺼번에 수만 명씩. 너나 이 할아버지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고 있다니까. 우리가 그 희생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출생의 우연이야. 요행히 살기 좋은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점뿐이지. (p119)

내가 아프리카의 한 지역에서 하루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로 태어났을 수도 있다. 동일 선상이 아닌 바닥에서의 시작이다. 그 동알 선상이라고 하는 것도 기준이 다르다. 헤어나올 수 없는 가난에서 아무리 발버둥 친다해도 흙모래 바닥의 먼지만 날 뿐이다. 저자는 동일 선상에서의 출발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논리도 잘못됨을 지적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체감하지 못했다. 이 수치를 보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전 세계 인류는 약 77억명이다. 이 중 가난한 35억명이 가진 것을 고작 85명이 그들만큼 부를 소유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빈부격차를 넘어 무와 유의 차이이며 절대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세계의 극명한 차이까지는 아닐지라도 우리도 이미 간접적으로 느낀다.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절대 극복할 수 없는 자본의 차이가 있지만, 사회는 우리가 마치 잘못해서 혹은 노력을 덜 해서라는 말로 덮고 가린다. 자본주의의 숙명이거늘 이 제도가 잘못되어 그런 것이거늘 착한 우리 서민들은 그저 열심히 살아간다.

2017년, 세계에서 가장 가진 것이 많은 85명의 억만장자들은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35억 명이 소유한 것을 모두 합친 것만큼의 부를 소유했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사무총장은 이처럼 기막힌 현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지. "버스 1대에만도 다 태울 수 있을 85명의 억만장자들이 인류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가진 것만큼의 부를 차지했다"고. (p108)

항상 의문이다. 문제라는 것은 알겠는데 어떻게 우리가 극복할 수 있느냐는 점이 남았다. 이미 벽을 쌓고 쌓아 성을 이룬 거대 자본과 권력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을까. 무너뜨린다고 그 자본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가의 의문도 존재한다. 새로운 이념과 사상이 요구된다. 저자도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어떤 미래가 펼쳐져야 하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역사가 그러하였고 무너져야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렵다. 굳건한 자본주의가 붕괴되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 강연이 끝날 때면 거의 항상 누군가가 강당 구석에서 손을 들고 질문하곤 했지. "당신이 하는 말은 분명 옳은 말입니다. 나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영양실조와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그저 소박한 1명의 시민에 불과한 내가, 엄청나게 돈이 많고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 거대 기업들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내가 속으로는 마치 '탈영병' 대하듯 바라보았던 그 사람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단다. 분명 조급함은 점점 더해졌을테지만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절대 무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가히 식인적이라고 할 만큼 야만스러운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행동할 수 있습니다." (p167)

이익이 우선인 자본주의의 고질적 문제는 결코 고쳐질 수 없다.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돈 이외의 다른 것들은 배제된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환경은 오염되어 가고 있으며 가난은 벗어날 수 없다. 저자 장 지글러는 자본주의는 무너져야 한다고 ,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고 누누히 말하고 있다.

일부 정부의 정책들을 손본다고 변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공산주의로 갈 수는 없다. 이미 실패한 사례가 많다. 그렇다.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며 그 정답이 무엇인지는 사실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이익이지. 그러니 모든 개인들과 민족들 사이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만 있을 뿐이야. 자본의 원리는 대결에, 전쟁에, 약자를 짓밟아버리는 데 있어. 때문에 자본주의는 전쟁으로부터 마르지 않는 이익을 퍼 올린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구나. 파괴하고, 재건하고, 무기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거지.

조라야, 다시 한 번 거듭 말하거니와 자본주의 체제는 서서히, 점진적으로, 평화로운 가운데 개혁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고. (p176)

정말 가능한 일일까?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리는 일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그 혁명의 시작은 어디부터 일까. 체 게바라는 현실주의자이면서 불가능한 꿈을 꾸는 돈키호테같은 혁명가로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가로 자본주의를 거부한 그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볼 수도 있겠다.

인간은 분명 발전된 방향으로 걸어왔단다. 노예 제도 폐지란 수세기 동안 순전히 유토피아에 불과했어. ...(중략)... 서구에서의 여성 해방은 또 어떤가 생각해보렴. 그 또한 수세기 동안 유토피아에 지나지 않았어....(중략)... 오늘날엔 유럽에서 제일가는 경제 대국 독일을 여성 수상이 통치하고 있잖니. 그것도 몇번씩 재선출되면서 말이다. (p171)

과거가 증명하고 있다. 그 당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던 제도들은 지금 완전히 사라졌고 또한 사라지고 있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나아가고 있다. 유토피아는 가질 수 없는 미래의 이상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쟁취할 수 있는 미래이며 현 체제가 붕괴되면서 변화해야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 변모한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 실제 우리 앞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 당장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많은 이들의 의식이 깨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인식이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자본주의의 민낯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그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편안하기에 외면해서는 안된다.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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