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 마리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홍차와 장미의 나날
모리마리의 우아한 세계에 들어가다.
"모리 마리" 작가의 산문집. 작가가 살아온 인생을 먼저 알고 책을 접하면 좀 더 깊은 이해와 더불어 깊게 공감할 수 있다. 그녀의 삶은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하인을 거느리는 부유한 집에서 자란 마리는 마치 컨베어벨트 위의 상품처럼 애지중지 자랐다. 16세의 나이에도 아버지의 무릎에서 귀하게 자랐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 두 번의 이혼을 했고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우아한 세계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 그녀에 대해 궁금해진다.
"정신은 어린아이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된 사람"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듯, 철없는 그녀의 모습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그녀는 글쓰는 솜씨와 더불어 요리 실력도 상당하다. 까다로운 미식가이자 소설가인 그녀의 세상은 우리와 동시대이건만 무엇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와 다른 어떤 분야에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천재 혹은 괴짜로 부른다. 모리 마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사실 나는 어느 정도는 미치광이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반드시 내가 생각한 대로의 요리를 내가 생각한 대로 해서 먹지 않으면 아무래도 싫다는 것인데, 그 싫은 정도가 좀 병적일 정도로 심하다.
(p63)
그녀의 요리 레시피가 궁금하다
그녀가 소개하는 요리 및 간략한 조리 방법을 책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상세한 레시피가 없어 좀 아쉬웠다. 이 책은 요리책이 아닌 명백히 산문집이다. 그녀가 극찬하고 추천하는 음식들이 많지만 정작 그 음식들은 독자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철학 때문이다. 음식의 맛은 레시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는 되지만 무언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음식은 나눠야 맛이 아닌가?
자고로 요리의 맛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며, 큰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정해버리면 오히려 재미없다. 두세번 만들어보면 잘 되리라 생각한다. 요리의 맛은 봄이나 여름 등 계절의 변화, 그날그날의 날씨 상태, 선선하거나 덥거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또 먹는 사람의 기분에도 변화가 있으므로 숟가락으로 몇 숟가락, 몇 개, 몇 그램이라는 식으로 융통성 없이 만들 수 없는 법이다. (p69)
그럼에도 몇몇 시도해보고 싶은 요리들이 있다. 요리라고 하기엔 거청하지만 흰죽에 매실짱아찌는 속이 안 좋을 때 좋다고 한다. 라임에 진을 섞어 마셔보고도 싶다. 프랑스식, 일본식의 음식들이기에 우리 한국의 맛과는 다르겠지만 우리의 입맛에도 맛을 것 같다.
그녀가 만든 우아한 세계
코카콜라를 좋아하지만 홍차는 포기할 수 없다. 홍차를 자주 마시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일주일 두 잔 포기할 수 없는 홍차와의 시간. 어지러진 방이지만 찻잔과 음식에는 우아함과 기품을 잃지 않는 그녀의 모습이 그녀를 대변한다. 스스로 만든 세계에서 여유로움과 행복을 만끽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만의 방식의 삶이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식도락가라 불리며 잘난 체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건강한 위를 지니고 있으면서 좋아하는 음식이 많고, 먹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워할 줄 아는 사람의 삶이 훨씬 행복하다. 일하는 틈틈이 직접 뭔가를 만들어 먹거나 혼자서 혹은 친한 친구들을 불러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서는 확자지껄 떠들며 먹고, 또 먹으면서 떠드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성 식도락가라 불러야 마땅하다.(p187)
소확행의 선두 주자
즐거운 일 행복한 일은 우리 주변에 있다.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이라는 '소확행'이 대세인 요즘, 모리 마리의 삶이 주목을 받는다. 자신이 만든 음식에서 행복을 느끼고 진성으로 즐기는 그녀의 모습이 진정한 식도락가라 스스로 칭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지만 음식을 먹는 시간이 행복하다면 매일매일 최소 세 번은 행복할 것이다. 그녀처럼 행복한 음식의 세계에 한 번 빠져볼까.
차를 마시는 내 눈에 침대 헤드보드 위 빈 베르무트병에 꽂아둔 빨간 장미, 파르스름한 코카콜라병, 짙은 파랑색 병에 꽂아둔 진홍색 장미와 하얀 꽃, 연홍색 꽃 등이 비쳐서 차를 마시는 즐거움을 배로 늘려준다. 영화 제목을 빌리면, <술과 장미의 나날> 이 아니라 '홍차와 장미의 나날'인 셈이다.(p.26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