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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아사히 신문에서 연재된 읽을거리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연재가 종료된 후 떨어지는 완성도를 다시 붙잡기 위해 새로운 책으로 발간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약 8년 전의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무언가 신선하고 색다른 매력이 있다. 어느 시대의 책인지는 중요치 않은 듯 하다.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느냐가 관건이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뒤 흔드는지 그 매력을 찾아 보자.
일본의 일본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다. 익살스럽고도 재치있는 표현들이 일본의 맛이 살려있다. 엉뚱하면서도 설득력 있다는 말이 어울린다. 또한 소설은 교토의 실제 거리명을 사용해 사실감을 더했지만 그냥 더했을 뿐 허구의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올해 초에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 교토의 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아주 아주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
왜 제목에 게으름뱅이라는 단어를 넣었어야만 했는지는 주인공 고와다를 만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는 게으름뱅이다. 게을러지기로 결심한 매우 논리적인 게으름뱅이다. 그의 대사 하나 하나가 철학적이며 이상하리만큼 닮고 싶은 구석이 있다. 고와다는 스스로 게을러지기 위해 노력하며 최고의 휴가를 만끽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아무 것도 안하고 싶은 그 마음을 능가한다. 이를테면, 게으른 행동 중이라 매우 바쁘다고 한다.
"있잖아, '굴러가는 돌멩이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 알아?"
"압니다."
"다시 말해 부지런해지자는 거야. 알겠지?"
"... 좀 더 이끼가 끼어 부드러워지겠습니다." (p57)
단순히 넘어 갈 수 있을 법한 문장인데 참 재치있다. 말장난일지 모르겠으나 인생에서 사실 정답이 어디있겠는가. 게으른 삶이 잘 못된 것이라 누가 규정할 수 있겠는가. 참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매우 철학적이지 않은가.
소설의 줄거리는 고와다와 함께 폼포코 가면의 등장으로 진행된다. 폼포코 가면은 정의의 사도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자다. 사소한 도움에서부터 도움을 선사하고 다닌다. 그는 미래를 위해 2대 폼포코 가면을 찾는다. 그 대상으로 우리의 주인공 고와다가 선택되었다. 폼포코 가면은 우리 게으름뱅이 고와다를 어떻게 2대 폼포코 가면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네는 그저 막연히 움직이기를 그만두기만 하면 쉴 수 있다고 믿고 있지.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움직임을 멈추는 게 아니야. 올바른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지. 참치처럼 게속 헤엄치며 피로 너머로 돌파하는 것. 이것이 비결이다. 따라서 이 몸은 피로하지 않다. 익숙해지는 거야. 고와다 군. 그뿐이다. 적응하면 돼." (p146)
어디서 들어봄 직한 멘트인데 일단은 접어 두자. 이 멘트가 참 기억에 남는다. 고와다가 느낀 것처럼 낯설지 않은 멘트인데 이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었는데... 아무튼 고와다의 사상과는 전혀 다르다. 지속적인 움직임은 게으름뱅이 고와다와는 거리가 멀다. 폼포코 가면이 아무리 설득한다고 해도 그 의지는 굳건하다. 아, 매력적이다.
고와다는 과연 제 2대 폼포코 가면이 될 것인지.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안 된다면 폼포코 가면이 포기할 것인지. 관전 포인트가 되겠다.
이 소설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기에 좋다. 그렇다고 매우 가볍다 할 수도 없다. 멘트 하나하나 그냥 흘려 버릴 수 없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말들이 많기에 또한 매력적이다. 일본 문화가 아직은 나에게 익숙하지 않기에 낯선 부분들이 더러 있었다. 관심을 가지는 만큼 더 재미있을 수 있는 부분이기에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다른 이유를 막론하고 집에서 빈둥빈둥 게으름피우는 우리가 약간의 공감을 갖고 읽을만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마치 내가 여행을 하듯 이 책을 읽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