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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
황선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평점 :
엑시트
가슴 먹먹한 현실을 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무심결에 얼굴에 힘이 들어가 얕은 인상을 쓰게 되었다. 무의식적인 안타까움이었나. 출구없는 꽉 막힌 곳에서 함께 허우적대는 느낌이랄까. 너무 감정이입해서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마지막까지 쉽사리 이 책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책이 던지는 메세지가 가슴 먹먹하다. 미혼모, 가출 청소년, 입양, 최저시급, 반지하... 어느 하나 밝은 단어가 없는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메세지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죄책감에서 오는 책임감일까, 모성애와 닮은 그 무언가인가, 미련 혹은 어리석음일까. 장미가 처한 상황에서 생각해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장미에게는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넌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거야." (p.232)
노장미, 예쁜 이름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사진관에서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하고 일할 수 밖에 없는 알바. 일이 끝나면 어두운 반지하에서 울어대는 하티를 보살펴야 하는 처지. 어둡다 못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이 막막한 현실이 바로 장미의 뼛 속 깊숙하게 침범해 있다. 비틀비틀거리며 삐끗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현실이 마치 줄타는 곡예사같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두툼하게 잡히는 자존심이었다. (p.15)
입양이라는 주제는 이 책의 큰 맥락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갖게된 하티.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지만 현실은 장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진주의 도움으로 반지하 이지만 방에서 생활하고 있고 낮에는 진주가 하티를 봐주고 있다. 입양을 보내야 할까? 장미는 고민의 기로에 서있다. 하티를 위해 그렇게 해야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지만 장미는 하티를 놓을 수 없다.
어둡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장미에게 삶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폭우로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장미에게 하티의 생부 J가 나타나 비아냥 거리고, 부랴부랴 도착한 반지하 집은 물에 잠겨 하티의 생사조차 알길이 없다. 진주는 하티를 데리고 사라졌으며 장미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며칠 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연속으로 겪었다. 고모 집을 나왔을 때부터. 아니 사는 동안 내내. (p. 158)
어려운 순간이 닥칠 때마다 청소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장미의 딱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소부는 장미를 못본채 하지 못한다. 장미는 그러한 청소부의 시선이 그저 불편하고 낯설다. 장미는 사건이 벌어지고 벼랑의 기로에 서있을 때 유일하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청소부라는 스스로의 처지가 한심했다. 그렇지만 그 손길을 청소부는 잡아 주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노장미한테는 내가 필요한 것 같은데. 몇 개월 아니라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안그러냐?"(p.266)
책을 모두 읽고 나서 하나씩 퍼즐이 맞춰졌다. 툭툭 내던지는 말들에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었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읽고 나니 중요한 말들이었다. 아직 퍼즐의 조각을 모두 찾지는 못하였다. 아쉬운 마음이 들게 하려는 황선미 작가의 의도였으리라 믿는다. 그렇지만 결말은 확실했다. 책을 읽는 내내 얕은 인상을 쓰던 내 얼굴이 묘한 웃음이 번졌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