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카이도 탐정단 7
사에나기 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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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일이 무척 싫었던 때가 있었어... '쿄우'가 나타난 것은 그때부터야.' '그 때 우리집을 방화했던 범인... 아직 잡지 못했어.'

아마 만화에서 탐정물을 즐겨보는 독자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순정추리만화'에는 살인이 나오지 않는다. '토우카이도 탐정단' 역시 마찬가지이다. 살인이 밥 먹듯이 자주 등장하는 정통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만족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밝은 빛으로 가득한 이 시리즈가 좋다. 그렇다고 정통추리물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인기모델인 카오리와, 인터넷 탐정단을 운영하고 있는 요시츠네가 콤비를 결성하면서 겪는 여러 가지 사건들. 둘 다 남자로 스루가 카오리는 16세, 시마 요시츠네는 18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카오리가 훨씬 키가 크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타입이며 요시츠네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같은 스타일이다. 둘 다 좋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시츠네가 더 마음에 든다. 탐정 일을 하는 만큼 운동도 잘 하고 언제나 든든한 정의감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사건이나 도와줄 필요성을 느낄 때에는 보수를 과감히 받지 않는 업무방식도 꽤 마음에 들고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 아. 지. 스. 타. 일ㅡ♡이지만 말이다.(필자는 광적일 정도로 강아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흥미로운 것은 둘 다 여장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밝고 평면적인 캐릭터인 것만은 아니다. 어렸을 때 겪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쿄우'라고 하는 또 다른 인격이 나타나게 된 카오리와, 방화범에 의해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게 된 요시. 그 둘이 소중한 우정을 새록새록 쌓아가며 상처를 이겨내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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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Classics in Love (푸른나무) 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영하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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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기에, 너무도 사랑했기에...! 베르테르의 죽음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향한 무서울 정도의 정열과 집착, 그리고 그로 인해 갈등하는 한 영혼! 로테를 잊기 위해 로테가 있던 마을에서 떠나지만 결국 베르테르는 사랑을 잊지 못하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미칠 듯한 사랑은 그에게 기쁨과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죽지 않고 다시 살아 있을 때의 절망감과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그도 로테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믿었든 믿지 않았든 간에 사랑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로테의 아름다움보다는 건강하고 맑은 천사같은 로테에게 더욱 끌리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훌륭한 인품을 가진 약혼자인 알베르트와 헤어질 수 없는 로테 또한 갈등한다. 서로 신뢰할 수 있고 안정적인 알베르트와의 관계와, 서로의 풍부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고 정신적으로 깊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상대인 베르테르. 알베르트에 대한 깊은 존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베르테르에게 끌려버린 로테. 그러나 결국 베르테르의 정열적인 사랑을 뿌리치고 만다.

처음부터 정열적이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고, 자연적인 인간이었던 베르테르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극단적으로 흘러간다. 급기야는 로테, 알베르트, 자신 중 하나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만 서로의 관계에 평안을 찾을 수가 있다고 믿게 된다. 그러나 그 둘을 죽일 수는 없는 베르테르는 자살을 택하게 된다. 베르테르의 자살은 로테에 대한 비극적인 사랑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충동, 그리고 로테에 대한 일종의 복수심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 연인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겠다는. 또한 그의 사랑이 아무 세속적인 조건 없이도 감정을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자연적인 것이기에.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옳은 행위였을까.

작품의 제목은 늙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인 것이다. 그가 젊었기에, 그렇게 격정적인 감정의 충동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곧 다른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택할 만큼 그 사람을 사랑했기에 자살했던 것이다. 그만큼 순수한 사랑일 수도 있다. 인스턴트식 사랑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괴적인 사랑일지도... 소설 속에서의 그의 그런 행동은 그 시대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자살이 유행하게 만든다. 자극적일 만큼 매력적인 소설, 괴테는 그런 작품을 쓰고 나서 행복했을지. 나라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체험소설로 작가 자신의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더욱 감정에 호소하는 작품. 나는 베르테르를 이해하지만 옳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말이 그렇게 되는 소설을 쓰고 싶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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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4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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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수록 성숙해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어쩌면 성숙할수록 아픔을 많이 겪었던 것이고 또 그것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게 된 상태가 성숙이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나오는 제제란 소년은 상당히 짓궃고 어린애 같은 상쾌한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때때로 상당히 어른스러운 사고방식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뽀르뚜가와 나이차를 뛰어넘은 우정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심한 장난 때문에 자주 매를 맞아야만 했던 제제의 성장에는 뽀르뚜가의 죽음이라는 아픔도 있었다. 청소년기 즈음에는 굉장히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상당히 큰 충격과 스트레스라고 들었다.

그러나 충격과 스트레스가 꼭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것일지라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긍정적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있다. 가슴 아픈 감정들은 때로 우리를 정신적으로 더 크게 성장하게 하기도 한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라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자신이 힘들고 괴로웠기에 타인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자신이 겪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속성의 것이라 해도.

살아가면서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인생의 본질은 과연 기쁨일까 슬픔일까 하는 것 말이다. 적어도 내가 본 책속의 인물이나 사람 중에서는 인생의 본질이 기쁨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본질이 고통이라고 얘기한 사람의 기억이 더 많을뿐. 과연 삶의 본질은 고통인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끝부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제제가 하늘로 간 뽀르뚜가에게 '인생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아니고 마치 낙엽처럼 조촐한 것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인생의 본질이란 것은 모든 삶에 걸쳐서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이 각각 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노인을 찾아가 '인생의 본질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노인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한 사람은 비극적인 예를 들어 말했고, 다른 한 사람은 행복한 예를 들어 말했다. 중요한 것은, 그 노인이 두 사람에게 한 대답이 같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입니다'라고.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숙해야만 하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인간의 운명. 그 과정에서는 수많은 아픔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 수많은 고통이 있는 이유는 인생이 고통 그 자체라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빛을 찾고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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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학사상 세계문학 12
J.D.샐린저 지음, 윤용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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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의 삶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력하다. 학업이라든가 하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으르게 보냈으며, 친구들의 문제점을 마음 속으로 까다롭게 따지고 불평하는 녀석이었다. 결국 그 녀석은 겨우 열여섯 살에 네 번째로 들어간 학교에서마저 퇴학당하고 만다. 낙오자,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그는 결코 내가 닮고 싶은 인물의 유형이 아니었다.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고서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그저 대충 써 낸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확실하게 정립해두지 않았던 자아의 오류. 그래서 언제나 강박관념을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즉, 확실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 내가 정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조금씩 정리하려고 했을 때... 홀든이나 다른 소설 주인공들에 대한 갈등 또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깊숙히 이해하려 한다.

내가 닮고 싶은 인간상은, 언제나 성실하고 따뜻하며 빛을 향한 갈망, 그리고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간상은 때론 각각의 소설 속에 조금씩 녹아 있고, 때론 역사에도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인간상을 결코 갖지 못했다. 저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려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태만했다. 어쩌면 나야말로 성적만 더 좋을 뿐, 조금씩 홀든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 홀든은 내 시각으로 보기에 상당한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에 대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일까. 그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따뜻함'을 결코 간과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는 병으로 떠나버린 동생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신경하고 평화로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차고에 있는 차의 유리창을 전부 깨버리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사이 무너지고 있는 영혼들을 잡아 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를 아무런 거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오류를 범한 것인지도...... 모든 가설에 예외가 있듯이, 모든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분류하려 하는 어떠한 기준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벗어나버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사람들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어떤 삶을 택하는 것은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이며 자유다.

문학은 인간의 유형을 이것저것 고르게 하고 스스로의 이상을 만들어 선택한 것 외에는 배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형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차피 아직 그 사람이 되지도 않았고 될 리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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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Jekyll and Mr Hyde (Paperback) - Oxford Bookworms Library 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 Oxford(옥스포드)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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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이라는 저명한 박사가 약을 먹고 나서 하이드라는 또 다른 인격체로 변한다, 생각하보면 참 황당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다소 환상적인 줄거리가 오히려 인간의 여러 면들을 다소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표현하면 인간의 이중성은 정말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인간은 단원적 존재가 아니라 이원적 존재라는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말이 100%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이원적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원적 존재라고 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말일 것이다. 한 명이라는 '단위'로 나뉘어져 있는 각각의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실은 한 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면이란 크게 나눠서 선과 악, 이 두 가지이다. 그러나 복잡한 현대에 와서는 같은 선과 악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각도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런 여러 가지 면들이 하나의 존재에 녹아들어서 마치 여러 가지가 섞인 하나의 복합체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합체가 화합물이 아닌 혼합물일 경우에는 어떨까. 인격이 서로 섞이게 되지만 인격끼리 결코 서로 타협하지 않고 나침반의 N극과 S극처럼 항상 가까이 붙어 있지만 영원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결코 만날 수 없이 되어버린다면, 두 존재 사이를 왕복하게 되는 '자아'는 어떠한 갈등을 겪게 되는 걸까.

그 의문에 조금은 답해 주는 것이 바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이다. 마지막 부분에 나와 있는 지킬 박사의 수기에서는 박사 자신의 경험으로 인한 갈등이 생생히 표현되어 있다. 주변의 인식에 의해, 필요에 의해 처음엔 드러나지 않았던 지킬의 욕망. 그리고 선한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던 원래의 지킬. 그러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순간부터 지킬의 본성은 하이드로 향한다ㅡ 이것을 보면 어쩌면 인격이란 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방임해두고 멋대로 악한 면을 드러내는 것을 습관화시켰을 때 더욱 망가지는 것 같다. 빛을 가지고 있기에 어둠도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지만, 어둠을 누르고 더욱더 빛을 향해 가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스스로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중인격'이란 것이 있다. 대부분 치명적인 심리적 타격에 의해 생긴 것으로서 신기하게도 한 육체 속에 녹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인격으로 변했을 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전혀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다. 어딘지 무섭고 섬뜩하기도 하고, 신비하기도 하다. 아마 좋지 않은 기억을 수용하기 위한 스스로의 반응으로 추측된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지킬이 커져가는 욕망을 수용하기 위해 택한 것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인격의 변화가 아니었을까. 만약 지킬 그대로의 인격이었다면 자신의 타락한 모습을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테니.

사람의 가치는 외모 자체보다는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 외모가 아무리 멋져도 인격이 추하다면 그 사람의 아름다운 외모는 매력적이면서도 어딘지 빈 껍데기 같은 허무함을 지닐 수밖에 없다. 반면 외모는 볼품 없더라도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빛을 향한 갈망을 가진 사람은 똑같은 외모를 지녔을 때도 왜 그렇게 달라 보이던지.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루는 요소 중에서 더욱 복잡하고도 중요한 것은 바로 인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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