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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ㅣ 문학사상 세계문학 12
J.D.샐린저 지음, 윤용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3년 7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이 책의 주인공인 홀든 콜필드의 삶에 완전히 동조하지는 않는다. 그는 무력하다. 학업이라든가 하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게으르게 보냈으며, 친구들의 문제점을 마음 속으로 까다롭게 따지고 불평하는 녀석이었다. 결국 그 녀석은 겨우 열여섯 살에 네 번째로 들어간 학교에서마저 퇴학당하고 만다. 낙오자,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그는 결코 내가 닮고 싶은 인물의 유형이 아니었다.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않고서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그저 대충 써 낸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확실하게 정립해두지 않았던 자아의 오류. 그래서 언제나 강박관념을 가져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즉, 확실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가끔씩 내가 정말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을 조금씩 정리하려고 했을 때... 홀든이나 다른 소설 주인공들에 대한 갈등 또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더 깊숙히 이해하려 한다.
내가 닮고 싶은 인간상은, 언제나 성실하고 따뜻하며 빛을 향한 갈망, 그리고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인간상은 때론 각각의 소설 속에 조금씩 녹아 있고, 때론 역사에도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인간상을 결코 갖지 못했다. 저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려 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태만했다. 어쩌면 나야말로 성적만 더 좋을 뿐, 조금씩 홀든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 홀든은 내 시각으로 보기에 상당한 부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에 대해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전부일까. 그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따뜻함'을 결코 간과해버려서는 안 된다. 그는 병으로 떠나버린 동생에 대해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무신경하고 평화로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차고에 있는 차의 유리창을 전부 깨버리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는 사이 무너지고 있는 영혼들을 잡아 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세상이 정해놓은 가치를 아무런 거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 오류를 범한 것인지도...... 모든 가설에 예외가 있듯이, 모든 사람들을 획일적으로 분류하려 하는 어떠한 기준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벗어나버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전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 보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사람들은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어떤 삶을 택하는 것은 잘못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의지이며 자유다.
문학은 인간의 유형을 이것저것 고르게 하고 스스로의 이상을 만들어 선택한 것 외에는 배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형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차피 아직 그 사람이 되지도 않았고 될 리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