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술연구소 - 생활인을 위한 자유의 기술
제현주.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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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어요.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값으로 환산해서 당당하게 요구하느냐입니다. (32)

미국의 어린이 경제교육 교재를 보면, 아이가 관리할 수 있는 용돈이 얼마인지 정해준 다음에 그 돈을 어떻게 쓰건 간섭하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무얼 사는지 하나하나 용돈 기입장에 쓰라고 하고 그걸 관리하죠. 이렇게 되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어요. 소비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프라이버시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소비 내용을 다 공개해야 한다면 누구나 분식회계를 하게 됩니다. 제가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분식회계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거예요. (42)

자기 한도를 확인한 다음에서야 중도가 어디이고 적정선이 어디쯤이라는 게 나와요. 근데 보통 사전 차단을 많이 당하죠. 인간은 어차피 자기가 하고 싶은 건 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그 정도 사고를 친 건, 그만큼 충족이 안 됐고 사전에 차단을 많이 당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속담 있잖아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 처음부터 내 욕망을 발견하고 해소해주었더라면 일이 그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텐데, 그걸 모르고 지나쳤던 거죠. (45)

보통 사람은 그렇잖아요. 난 이렇게 대작을 그리니까 여기에만 몰두해야지. 근데 내가 3년을 버티려면 그 사이에 소소한 아웃풋을 내는 즐거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건데요. 어떻게 보면 진짜 자신의 상태, 나한테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78)

정리의 목표는 무엇보다 검색 가능성, 다시 말해 원하는 물건이나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때 검색하는 행위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좋은 분류의 기준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보기 좋은, 객관적으로 합당한 정리의 구조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에게 맞는 ‘주관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속 가능한 정리의 핵심 기술이다. 그러려먼 자신의 선호와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209)

저는 돈 얘기를 안 하는 사람하고는 일한 적이 거의 없어요. 원고 청탁을 받을 때도 다행히 "언제까지 얼마 분량으로 써주세요. 페이는 얼마입니다."라고 알려주는 분들하고 일을 했어요. 지금 전화로 일을 맡는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늘 이메일을 통해서 서면으로 먼저 받았거든요. 서면으로 받으면 아무래도 중요한 조건들을 말하게 되는 것 같아요. (284-5)

뭔가 합이 맞아서 일할 때 더 신이 나는 면도 있지만, 일상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혼자 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서 같이 하는 거겠죠. 그러다 보니까 같이 있어도 덜 괴로운 사람, 혹은 괴로움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316)

각자가 자기 나름의 안목을 가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끼리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삶의 태도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야 모임이 오래 가거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임이 반드시 오래 가야 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해요. 당장 내일이라도 깨질 수 있다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요. 무책임하게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집착을 가지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이럴 때 모임의 목적을 실현하는 게 오히려 쉬워지는 것 같아요.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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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 당시唐詩에서 건져낸 고대 중국의 풍속과 물정
마오샤오원 지음, 김준연.하주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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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당나라 관원들의 출근 제도가 너그럽고 활달했던 당나라의 시대정신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인간적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백거이...는 <한유의 ‘궂은 비‘ 시에 화답하여>에서 이렇게 썼다. "게다가 조회를 쉰다는 소식이 밤에 들려와 잘못 거리로 나섰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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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좋아하는 친구가 종이 전시 보러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길. 

모처럼 평일에 쉬게 되니 마음이 들떠서 천리마 끌고 나왔는데,

종로1가부터 대림까지 가는데 30분 넘게 걸리고...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하기란 그저 가다서다의 반복.

드라이브의 재미란 전혀 없고 그저 몸만 뻣뻣해짐.

 

전시는... 일종의 기획 전시 같은 것인데

대림미술관 전시가 거의 그렇듯이 코스가 너무 짧고 작품이 몇 안 되어서

종이의 물성을 충분히 실험해 보았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히 빛과 종이 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들이 아래와 같이 존재하였음.

 

중국쪽 작가는 없었던 것 같은데, 피잉씨나 추앙화를 잘 살리면 좋지 않을까? 헌 것 속에 새 것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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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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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말 없이 죄 없이 살아간 한 남자의 삶이 겨울산처럼 처연하고 초연하다. 그와 함께, 그가 평생 느끼고 경험한, 상전벽해 되어도 변함이란 없는 산이 공동 주연을 맡는다. 에거가 죽음에 근접하는 부분부터는 각별히 훌륭함. 소설의 분량과 성취도는 비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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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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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등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 에거는 이렇게 말하고 어깨에 맨 가죽끈을 고쳐매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잠시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고요함은 완벽했다. 익히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그의 심장을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산의 침묵이었다. (7)

"한 남자에게서 그 사람이 가진 몇 시간을 사들일 수 있고, 그 남자의 며칠을 훔치거나 심지어 인생 전체를 빼앗아갈 수도 있지.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한 남자에게서 단 하나뿐인 순간만큼은 가져가버릴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그러니 이제 날 좀 내버려두게!" (50)

애거는 잠시 동안 그대로 서 있었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철천지원수가 자기와 마주 보고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러시아 병사가 사라진 뒤 고독은 이전보다도 훨씬 깊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88)

몇 주가 지난 뒤 에거는 수용소 야영지 뒤편 자작나무 숲에 묻힌 사망자 수를 세는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죽음은 빵에 곰팡이가 피듯, 삶에 자연스럽게 속해 있었다. 죽음은 열이었다. 죽음은 굶주림이었다. 죽음은 막사 벽에 생긴 틈이었다. 겨울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틈. (92)

어린 시절 에거는 그 시절이 자신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 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시간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과거는 여기저기에서 구부러져 있는 것 같았고, 모든 사건의 경과는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 되거나, 아니면 독특한 방식으로 거듭 새로운 형태를 이루고 다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에거가 러시아에 머물렀던 시간은 마리와 함께 지낸 시간보다 훨씬 길었지만, 코카서스와 보로실로브그라드에서 보낸 세월은 그녀와의 마지막 날보다는 그리 길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98)

확실히 사람들은 산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했다.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고 믿는 무언가를. 에거는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지 발견해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관광객들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따라온다기보다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어떤 알 수 없는 갈망을 좇아 비틀거리며 산을 오른다고 점차 확신하게 됐다. (179)

에거는 새로 마련한 집에서 아늑한 기분을 느꼈다. 때로는 이곳 고지대에서 사는 것이 외롭다고 여겨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고독이 결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자신이 필요한 것은 모두 가졌고, 이것으로 충분했다. 창문 밖으로 드넓은 풍경을 볼 수 있었고, 난로는 따뜻했다. 난방을 한 상태에서 처음 보낸 겨울이 지나자 코를 찌르는 듯했던 염소와 가축 냄새도 말끔히 사라졌다. 에거는 무엇보다 고요함을 마음껏 누렸다. 그동안 골짜기 전체를 가득 채웠고 주말만 되면 산비탈에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던 소음은, 이제는 어렴풋한 예감으로 그에게 스치듯 다가올 뿐이었다. (140)

"너무 오랫동안 못 봤어.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그 이야기를 안 믿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리! 인생 전체를, 참 오래도 산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게!" 에거는 소리쳤다. 그녀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대꾸도 없었다. 오직 바람 소리만 들렸다. 바람이 땅바닥을 스치자 올해 마지막까지 남은 눈을 흩날리며 울부짖는 소리, 탄식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145)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군." 에거는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자기가 말한 몇 마디 단어가 눈앞에 둥실둥실 떠 있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조그마한 달빛을 받으며 터져버리는 광경을 보았다. 에거는 심장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자신의 상반신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 뺨이 탁자 표면에 닿았다. 에거는 그런 자세로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참을성 있게 심장이 다시 뛰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자,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죽었다.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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