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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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잔잔하고 우아한 책. `소박한 vs 성찰하는`의 이분법을 소박한 듯 하면서도 세련되게 변주하면서 소설을 쓸 때와 읽을 때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고든다. 그림과 소설의 같고 다름, 박물관과 소설의 같고 다름, 그리고 움직이는 심연인 중심부라는 개념(the center), 모두 흥미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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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소설가 -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 강연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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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 때로는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그러니까 중심부에, 삶의 본질에, 톨스토이가 `삶의 의미`라고 했던 것에..., 다다르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낙관하는 그곳에 대한 지식, 직관, 실마리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본질과 관련된 가장 심오하고 가장 귀중한 지식에, 철학의 난해함이나 종교의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도,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등하며 가장 민주적인 희망입니다. -33쪽

우리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어떻게 소설이라는 장르가 부상하고 허구라는 아이디어가 정착되었는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서구 세계 작가들이 소설 예술을 수입하여 자국 독자들에게 호소하면서 발견하고 찾아낸 해결책들에 대해서는 별로 알지 못합니다. 특히 서구의 `허구`라는 개념을 어떻게 자신의 주변에 적용했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 그들이 내놓은 새로운 목소리와 형태의 핵심은 서구의 `허구`라는 개념을 현지 문화에 유용하도록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입니다. -43쪽

소설 예술은 우리 자신에 대해 다른 사람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 우리 자신처럼 말할 수 있는 기량입니다. ...... 내게 소설 창작이란 중요한 것에 대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는 예술입니다. -72쪽. 163쪽

시는 그림과도 같다. 어떤 것은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어떤 것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영향을 끼친다. 어떤 그림은 어두운 구석을 좋아한다. 어떤 그림은 비평가의 날카로운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꽤 밝은 곳에서 감상해야 한다. 어떤 그림은 한 번에 마음에 들어오고, 어떤 그림은 열 번 정도 보았을 때 사람에게 즐거움을 안겨 준다. -95쪽

하지만 내가 이제 자세히 설명할 박물관 같은 특성이 있는 소설들은 생각을 일깨우기보다는 간직하고 보존하며 잊히는 것에 저항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 이는 역사가 공허하고 무의미하지만은 않으며, 우리 삶에서 무엇인가는 간직될 거라는 느낌과 자긍심입니다. ... 소설 독자들이 느끼는 희열은 박물관 관람객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다릅니다. 소설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과 우리의 지각이 만나는 순간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130쪽

하지만 우리는 이 지식을 여유로운 생각이나 난해한 개념을 통해서가 아니라, 소설을 읽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위대한 순문학 소설을 읽는 것은 세상의 깊고 심오한 의미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세상도 그리고 우리 머릿속도 중심부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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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 과학자의 눈으로 본 인간, 역사, 우주 그리고 신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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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인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감각과 우리 인류가 서로 형제라는 감각이다. 인류라는 종의 독특함과, 사람들은 모두 형제라는 생각은 건전한 정신에 꼭 필요한 두 뿌리이다.-240쪽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10년 동안 고생한 끝에, 국회 위원회가 테일러에게 증언을 해 달라고 초청했고, 외국 정부에서도 자문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모든 곳에서 정책 당국자들은 안전 장치를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위해 테일러를 찾았다. (232) ... 윌리치와 테일러는 핵 안전 장치의 정치적 논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핵을 지지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윌리치와 테일러의 주요 결론에는 이의가 없었다. 그들이 쓴 책이 있었기 때문에, 핵 안전 장치에 대한 논의에서 양측은 합리적인 담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양측 모두 얼마간 사실에 대해 동의했고, 합리적으로 개선 방법을 논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핵 논쟁의 다른 두 영역인 원자로 사고와 핵폐기물 처리 분야에서는 이 정도로 훌륭하고 객관적인 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 분야에서는 논쟁적인 선언만 널리 퍼져 있고 합리적인 논의는 찾기 어렵다. (233)-233쪽

터치먼이 과거를 탐구했듯이 나는 미래를 탐구할 것이다. 미래는 나의 먼 거울이다. ... 또한 나는 그녀처럼, 초서와 위컴이 남겨준 유산에 우리가 고마워하듯이 수백 년 뒤에 우리가 염려해 준 것을 고마워할 사람들을 개인으로서 살펴볼 것이다. ...... 아인슈타인의 전망은 터치먼의 먼 거울과 나 자신의 먼 거울에서 배운 교훈을 더 강하게 만든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에게 멀리 있지 않다. 600년 전의 사람과 600년 후의 사람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우주에서 우리의 이웃이다. 기술은 삶과 생각의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가져올 것이며, 이웃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우리를 모두 하나로 묶고 있는 친밀함이다. -274쪽

미래에 대한 강박이 나에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내가 윈체스터의 중세 건물들 사이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것이다. ... 아이의 성급함으로, 나는 이 모든 것에 강하게 반발했다. 왜 사람들은 과거에 그렇게 매달리는가? 나는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60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기 싫었다. 차라리 나는 600년 후의 미래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이 유식하게 초서와 위컴의 윌리엄을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우주선과 외계 문명을 꿈꾸었다. 윈체스터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600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600년 뒤의 미래로 가면 오래된 교회보다 훨씬 더 재미난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미래는 영국과 미국 다음으로 나의 세 번째 고향이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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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의 유언
데이비드 케일리.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서범석 옮김, 박홍규 감수 / 이파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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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덕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던 사람, 그래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제2의 천성이 된 사람은 죽음에 대한 지식을 자신의 행동에 통합하여 살아간다.-268쪽

지난 몇 년 동안 나와 함께 연회를 같이 한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우리 모임 식탁에는 항상 초가 놓여 있다. …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친구들의 대화는 문을 두드릴 다른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점을 전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촛불은 바로 그 문을 두드릴 누군가를 위해 놓아둔 것이다. 촛불은 그 공동체가 결코 닫혀 있지 않다는 점을 계속 상기하게 만들어주는 도구인 셈이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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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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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친구가 오스트리아에 다녀오면서 사다 준 기념품에는 모차르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이 나란히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두 사람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인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 그림을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이 음악가는 신이 주신 재능에는 뼈를 깎는공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했지만, 이 왕비는 신이 주신 지위에는 고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결코 몰랐던 사람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모차르트와 마리를 한 자리에 놓고 추억하는 일도 그리잘못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늦던 빠르던 결국 모두 역사가 자신에게 맡긴(두 사람 모두 이러한 재능과 이러한 지위를 욕망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들은 이들이 태어났을 때 이미 주어져 있었습니다.) 막중한 역할을 이해하였고 영웅적인 노력으로 훌륭하게 감당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은 늘 조금씩 변화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순하며 호불호가 분명했고, 마음이 여리고 악의 없는 장난을 좋아하고 쾌활했으며, 본능적인 이해와 판단에 입각하여 빨리 결정하고 행동했습니다. 평생 읽은 책이라곤 조금씩 들춰본 소설책이 전부이고, 승마 오페라 연극 가면무도회 춤 도박을 마음껏 즐겼으며,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계산 없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싫은 사람에게는 그가 아무리 애원한다 해도, 심지어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일이어도, 결단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꾸밈 없는 친절과 애정, 그리고 어이가 없을 정도의 비타협성은 이렇게 서로 통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람에게 왕비라는 직업이 어울렸을까요? , 그녀가 35세가 될 때까지 그녀는 왕비답지 못한 왕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잠재되어 있던 왕비의 기질이 불꽃처럼 분출하면서 그녀의 생명은 단축되었고 그녀의 이름은 불멸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 기질이란 선천적으로 비굴함과 가식을 증오하고 최악의 코너에 몰렸을 때라도 당당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저 내적 위엄을 말하죠. 폭력과 살인을 통하여 새 시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은 성난 민중들과 그들을 뒤에서 조정하며 난장판 세상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돈과 지위를 움켜쥐려 한 귀족들 모두(이 책의 탁월함의 하나는 사람 홀리기 딱 좋은 혁명이라는 말이 실제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마리의 정직한눈에는 믿을 수 없는 협잡꾼과 건달들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 혁명의 숭고한 대의가 조각난 형태로라도 반짝였다면, 그래서 루이와 마리를 감금하고 심판하는 과정에서 이성과 절차적 정당성이 좀더 발휘되었더라면, 마리는 좀더 적극적이고 유순한 태도로 혁명파들과 프랑스의 미래를 논의했을 것이고, 단두대는 그녀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혁명은 원래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잖아요. 혁명은 가장 고귀한 이름 아래 가장 잔인하고 모순적인 행동들이 이루어지는 한 바탕 피의 축제입니다. 이 축제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초심을 잃었고, 제 죽음이 두려워 친구를 무고하여 기요틴으로 몰아넣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가장 불리한 피고의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생명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시종일관 위엄 있는 모습으로 끝까지 수행했습니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것은 혁명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 할 수 있지만(하지만 루이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원 판사들까지도 이 선량하고 둔한 인간을 반드시 처형할 필요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리를 처형한 것은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그녀가 자기 아들을 범하였다는 말도 안 되는 죄로 감옥으로 호송되었을 때 혁명은 이미 구시대(왕정)의 오욕이 아니라 그 자신의 부패로 질식해 가고 있었습니다. 즉 마리의 처형은 혁명이 제 정신으로 한 일이 아니라, 자기 몸에서 나오는 독기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저지른 불필요한 희생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프랑스혁명은문란하고 사치스러운 빈 출신 요부때문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역사가 수 세기 동안 뱃속에 품어온 (단명할 운명의) 아기혁명가 태어날 때가 되어 태어났는데, 그 때 아기를 눕혀야 할 자리에 루이가 있었고, 굴종이 몸에 벤 이 루이(참으로 왕 같지 않은 왕이라 죽여도 죽이는 사람이 오히려 미안해지는...) 옆에는 하필이면 아름답고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외국인 여자, 마리가 앉아 있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리고 어쩌면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마리 자신이 이 점을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독서로 다져진 지성은 없었지만 정치와 역사에 대한 타고난 직관만은 탁월했습니다. 베르사유에서 기요틴에 이르는 삼 년 동안 드물게 찾아왔던 탈출의 기회에 그녀가 내린 판단을 루이가 따랐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루이는 언제나처럼 결정을 미루었고 결국 사람들이 그의 생명에 대한 결정을 대신 내려주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하늘을 우러러 통곡할 일이지만 마리는 울부짖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왜 남편이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도 그 뒤를 따라야 하는지를 이미 스스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 운명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아이들의 미래와 가까운 사람들의 안전, 그리고 멀리 있는 단 하나의 그리운 친구(가 누구인지는 책으로 보시길...)의 여생을 배려하면서 담담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무덤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퀴즈: 마리가 처형당할 때까지 그녀의 친정, 즉 빈에 있는 황제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친지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답은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입니다. 마리를 구하기 위한 친구들의 노력을 오스트리아 왕가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이제 와서 마리를 오스트리아의 대표적 기념인물로 내세우는 건 아마도, 자신이 팽개친 희생자를 죽음 뒤에 성스러운 자로 등극시키며 죄책감 어린 기억을 멋진 스토리로 재창조하려는 지라르적 심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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