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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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에미릴오 가다의 아티초크와도 같은 세계

칼비노에게 가다의 문학을 읽는 것은 아티초크를 벗기듯이 계속해서 새로운 차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가는 일이다. 가다의 <고뇌의 작품>은 극단적으로 주관적이어 보이지만 실은 객관적-보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엄마에 대한 주인공의 애증은 그의 조국에 대한 애증과 겹친다. 이 작품을 포함하여 가다의 주요 작품에서 모두 다뤄지는 애국주의는, 1차세계대전에 대하여 가다가 가졌던 사랑 그리고 공포와 연관된다. 실증적 과학주의의 옹호자로서 가다는 1차세계대전이 19세기의 합리주의와 진보가 정점에 이르러 소멸하고 불확실하고 복잡한 세계가 시작되는 시점이라고 보았다. 그의 작품은 공학도의 엄격한 합리주의부터 그로테스크한 심연으로서의 내면 사이에 있는 모든 단계들을 만화경처럼 불꽃처럼 펼쳐낸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고뇌의 인식>

 

Ø  국내에 번역된 카를로 가다의 작품

없는 듯못 찾겠음!

 

 

가다의 <메룰라나 가의 무서운 혼란>

탐정소설인 이 소설은, 세상의 모든 요소들이 각각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모든 체계는 또 다른 체계들과 연결되어 있어, 한 요소의 변화는 전체 체계들의 체계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가다머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 철학은 무엇보다 작품의 형식에서 체현된다. <메룰라나 가의 무서운 혼란>은 대중적 용어, 학문적 용어, 독백, 다양한 방언 등 온갖 종류의 말을 뒤섞이며, 하나의 세부에 대한 묘사가 전체 체계를 압도하는 효과를 낸다. 문학은 가다에게 세상이라는 실타레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가를 재현해내는 시험장이었다. 로마에서 일어난 두 건의 형사사건을 그려내는 이 소설은 로마에서 통용되는 모든 계급의 말과 그들 간 상호관계를 담으려 함으로써 결국 로마 자체를 주인공으로 등극시킨다. 로마는 곧 가마솥 같은 세계의 모델이 된다.

  가다의 문학은 이 합리적인 공학도가 억누르고 있는 비합리성(광기, 혐오, 공포)를 드러냈고 이에 사람들은 그를 제임스 조이스의 일가로 여겼으나, 사실 그가 지향했던 것은 발자크와 졸라의 고전주의 소설이었다. 그렇다면 이 클래식한 지향성과 그의 문학이 갖는 파격적인 형식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 것인가? 가다는 무자비한 야망이 일삼는 파괴와 희생(1차세계대전)에 분노하며 가치와 질서가 안정된 사회를 절망적으로 그리워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그의 문학이 탄생하는데, 이 소설 역시 단순히 파시즘에 대한 풍자가 아닌, 국가가 법으로부터 떨어져나올 때 일상의 삶은 어떻게 변하는가에 대한 엄중한 증언이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여성을 두려워하는 남자(바로 작가 자신)애국으로서의 출산이라는 파시즘의 선동 앞에서 갖게 되는 여성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보며, 작가가 동일시하는 인물(곧 실은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람이지만 법과 관습 앞에서는 움츠러들며 서투르게 숨으려 하는,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법과 관습의 의심과 처벌을 받게 되는 안젤로니)을 통해서도 그의 자화상을 엿본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다는 한 여성인물이 숨겨둔 보석으로 독자를 이끈 뒤, 이제는 인간 세계에 대한 묘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대가의 솜씨로 지하광물의 심원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건 그렇고 탐정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대체 살인자는 누구란 말인가? 소설의 초고를 보면 그 답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건 가다의 문학에선 중요하지 않다. 가다의 문학이 끈질기게 포착하려 한 것은 모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역학과 가능성들의 체계, 즉 보통 운명이라 불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메룰라나 가의 무서운 혼란>

 

Ø  참고할 작품

플로베르, <통상 관념 사전>, 책세상, 2003

 

 

콘래드와 선장

칼비노에 의하면 조셉 콘래드는 20년을 항해자로, 30년을 작가로 살아온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작품의 주류를 이루는 모험소설은 모험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고귀함과 독창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의 소설에는 항해에 필요한 상세한 기술과 감각, 그리고 항해 중에 마주치는 각각의 상황들에서 어떻게 자신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도덕적 문제들이 훌륭하게 다뤄진다. 폴란드 출신이었던 콘래드는 영국 해군에 들어가 그 계층의 정서와 정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삼았다. 동시에 그는 실패한 모험가로서 최하층민, 부랑자, 광인들과도 자신을 동일시하였다(고리키와 유사함). 이 두 공감의 축으로부터 영웅적이고 낭만적이며 매력과 결함이 동시에 충만한 비극적 주인공들이 탄생한다.

그는 혁명을 강박적으로 두려워하는 과격한 보수주의자였지만 작가로서는 영국이라는 맥락에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직관적으로 묘파해 내는 탁월함을 발휘하였다. 항해 시대에서 증기선의 시대로의 이행(移行)은 용기의 의무를 좇는 영혼에서 합리주의적 자본가의 비열함과 탐욕으로의 변질을 의미하였다. 이제 지난 시대의 도덕을 지키려는 사람은 돈키호테 같이 광인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콘래드는 합리주의 시대에 내포된 태풍 같은 혼란과 죄악은 물론 그 뒤를 이을 비합리주의의 절망과 암흑마저도 예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의 도덕적 용기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는데, 이 점을 이해하는 독자들이라면 콘래드의 문학을 각별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바다의 거울>, <태풍>, <로드 짐>

 

Ø  국내에 번역된 콘래드의 작품

다수 있음  

 

 

에우제니오 몬탈레의 시 <어느 날 아침>

칼비노는 35년 전 학창시절에 익힌 뒤로 기억 속에 (변형된 채) 간직해 온 몬탈레의 시 <어느 날 아침>을 다시 읽는다. 이 시는 몬탈레가 지속적으로 다루었던 주제 기적과 연관이 있다. 그의 시에서 경험세계는 일상의 환영이며 이 견고한 환영 너머에 진리가 있고 이 진리를 감지하는 일이 바로 기적에 해당한다. 시에 등장하는 거대한 군중은 돌아보지 않고 의심 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반면 시적 화자는 등 뒤를 보고 싶어하는 자이다. 그는 등 뒤를 돌아보고 공허를 발견하며, 다시 앞을 보고 일상이 환영인 것을 눈치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기 등 뒤를 볼 수는 없다.

자동차의 백미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가? 아니다. 전방의 시각을 통해 뇌라는 스크린에 생겨나는 환영이 이제 후방을 향해서도 생겨난 것뿐이다. 이 시에서 스크린이라는 단어는 이미지가 투사되는 표면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이는 1920년대가 영화의 시대인 것과 유관하다. 당시 세계는 한 편의 영화에 비유되었다. 영화에서는, 아니 영사막 위에서는, 온갖 이미지들이 소용돌이치며 보는 이를 덮쳐온다. 영화의 속도(즉 세계의 속도)와 진정한 앎의 속도(뒤를 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돌아보기) 사이에서 존재의 비밀에 순간적으로 붙들리는 시적화자의 명상이 제 삼의 리듬으로 틈입한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어느 날 아침>

 

Ø  국내에 번역된 몬탈레의 작품

<오징어뼈>, 민음사, 2003

 

Ø  참고할 작품

<환상동물학사전>, 보르헤스

 

 

몬탈레의 절벽

칼비노는 몬탈레의 장례식을 계기로 몬탈레 시()의 본질을 논한다. -사 영역을 막론하고 언어의 과잉과 남용이 전염병처럼 만연했던 시절에 몬탈레는 정확한 순간에 유일한 표현을 바로 쓰기를 고집했다. 이처럼 단단한 언어를 통하여 그는 개인이 도덕성을 유지할 만한 단 한 뼘의 단단한 땅도 남기지 않는 소용돌이의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세계를 그려냈다. 몬탈레의 시는 묵시록적 재앙 아래 어떠한 위안이나 용기도 제시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은 상호 의존적으로 그려지지만, 도움은 누구에게서도 구할 수 없는 것으로 나온다. 즉 그의 시에는 합리적인 해결책도 영웅도 없다. 인간이 매달릴 수 있는 절벽은 점점 사라진다. 이와 함께 점점 분명해지는 시의 주제는 개개인의 유일무이함,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하는 풍경이다.

 

 

헤밍웨이와 우리 세대

칼비노 세대에게 헤밍웨이는 한 때 신이었고, 그런 뒤에는 의심과 염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십여 년이 지나 칼비노는 담담하게 헤밍웨이의 영향과 유산을 헤아려본다.

헤밍웨이의 문학은 1차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파시즘에 기반한다. 이 반파시즘은 지적이기보다는 몸으로 터득하는 기술을, 그러니까 개념이 아니라 사물을 지향한다. 그는 파시즘의 학살에 반대했지만, 동시에 그것을 현대 세계(자연 포함)의 자연스러운 전개로 인정하고, 이 야만성과 그로 인한 공허를 견디어 내는 인간을 그려냈다. 작품에서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연예와 낚시, 사냥, 다리 폭파, 투우와 같은 운동의 규칙이다. 이 규칙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익혀서 자신의 일과 자신을 일치시키고 자기 행동 속에서 자신이 되는 주인공들. 그 운동의 영역 밖에는 야만과 공허뿐이다.

  짧거나 생략되거나 텅 빈 대화는 헤밍웨이와 체호프가 공유하는 특징이지만, 1차세계대전 이전의 체호프에게는 헤밍웨이와 같은 공허에 대한 감각이 없다. 순전한 몸기술을 통하여 세계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원시성은 헤밍웨이와 D.H.로렌스에게 공통된다. 스탕달이 18세기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 서 있었듯, 헤밍웨이는 부르주아적 사고와 노동자 계급의 사고가 충돌하는 시점에 구 계몽주의의 끝물인 미국철학과 낭만주의의 마지막 열매인 실존주의적 허무주의 사이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다.

  십대 후반의 나이에 이탈리아 전선에 참여하면서 헤밍웨이는 이미 제국주의시대 부르주아적 현실을 나타내는 가장 뛰어난 이미지가 다름아닌 전쟁임을 파악하였고, 경제 논리를 따라 세계를 배회하며 타국의 전쟁에 관여하는 미국인의 시선을 선취하였다. 이 시선은 무너져 내리는 세상 속에서도 어떠한 환상도 불안도 없이 홀로 자신의 행위 속에서 세상과 조화를 이루려 하는 한 사내(남성인물)로부터 나온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두 마음을 지닌 큰 강>, <불이 밝은 깨끗한 카페에서> 등 다수

 

Ø  국내에 번역된 헤밍웨이의 작품

생략

 

Ø  참고할 작품

<세바스토폴 이야기>, 톨스토이, 인디북, 2004

 

 

프랑시스 퐁주

이 시인은 가장 흔하고 소박한 사물을 그 자체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뻔한 반복으로부터 구제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고 칼비노는 적고 있다. 이 글은 퐁주의 출세작 <사물의 편>이 이탈리아에서 출간됨에 따라 이탈리아의 잠재 독자들에게 이 산문시만 쓰는 프랑스 시인을 소개하고자 쓰여진 글이다.

퐁주는 스스로 사물과 일체가 되기 위하여 언어와 결투를 벌이며, 무한에 가까운 존재일지라도 경계를 지닌 실체로서 이해하고(구체의 지향), 익히 알려진 사물로부터는 그 결정적인 측면(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을 포착해 낸다. 이 결정적인 측면은 자주 사물(객체)와 주체(시인)을 연결시켜 주는 불가결한 매개체로서 언어와 연관된다. 즉 시인의 사물은 자주 언어의 은유가 되며, 거꾸로 이 은유를 통해 사물은 그 새로운 일면을 세상에 드러낸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사물의 편>, <텍스트의 허리>, <풀밭의 제작> (모두 시집)

 

Ø  국내에 번역된 퐁주의 작품

<테이블>, 책세상, 2004

<표현의 광란>, 솔출판사, 2000

<일요일 또는 예술가>, 솔출판사, 199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칼비노는 이 장에서 1) 자신이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느낀 친밀감과 2) 보르헤스 문학과 이탈리아 문학의 친연성을 함께 다룬다. 칼비노는 20세기 문학이 크게 두 경향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주류적 경향은 무의식과 무질서를 그 자체로 탐구하는 것이고, 보다 소수에 속하는 다른 경향은 그 무질서한 세계에 성공적으로 맞서는 정신적 질서 짓기이다(이는 <레몽 크노의 철학>에서도 반복되는 칼비노의 생각임). 전자보다 후자를 어려운 과제라 본 칼비노는 보르헤스에게서 이 과제가 온전하게 실현되는 것을 보게 발견한다. 여기서 오는 친밀감.

다음, 보르헤스의 작품이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그 간결한 기술 때문이다. 이 간결성을 무기로 보르헤스는 마흔에 가까워서야 소설을 창작하게 된다. 이 간결성은 상상의 책을 요약한다는 특별한 구상으로부터 획득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르헤스의 <픽션들>은 가상의 인물이 쓴 가상의 책에 대한 비평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이 형식을 통하여 문학의 세계와 경험의 세계는 상호 순환하고 삼투하는 관계에 놓이며 이로부터 윤리의 문제가 제기된다. 보르헤스에게서 경험은 기록되었을 때에만 존재론적 현실성을 띄며, 글은 경험의 시원이자 종결로서 반복적으로 기억되면서 상징적-신화적 존재로 화한다. 예를 들어 보르헤스는 이탈리아(서양)의 위대한 환상문학 <광란의 오를란도>와 아랍(동양)의 전설적인 환상문학 <아라비안 나이트> 간 대결을 샤를마뉴와 사라센 간의 실제 전쟁과 섞어 직조하여 <아리오스토와 아랍인>을 쓴다.

보르헤스 문학에서 신화적 모티프로서 가장 중요하고 또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시간 개념이다. 보르헤스는 영원(주관적이고 절대적인 현재)과 의지적 시간(하나의 행위에 의해 과거의 미래가 갈라지며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구분하며, 이 두 시간이 분기하는 시간을 문학의 시간으로, 아니 문학 그 자체로 보았다. 보르헤스는 <신곡>의 우골리노 백작 이야기를 들어 문학은 동요하는 불확실함과 불확정성의 기호임을 역설한다. 단테에 대한 깊은 연구를 포함, 이탈리아 문학에 대한 애정 어린 독해를 통하여 풍성한 문학 유산을 남겨준 보르헤스에게 칼비노는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단편집 <픽션들>

단편집 <알렙>

<아리오스토와 아랍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Ø  국내에 번역된 보르헤스의 작품들

민음사에서 1990년대 중반에 보르헤스 전집 총 5권을 출판하였음  

 

Ø  참고할 작품

<광란의 오를란도> 5, 아카넷, 2015

 

 

레몽 크노의 철학

수학, 문학(문체 개혁 포함), 과학, 철학(그는 코제브의 헤겔 강의를 수년 간 청강하고 이를 정리-출간하였다.)을 종횡무진하며 그 넓이의 광대함을 짐작하기도 힘든 작품세계를 남긴 현대의 대가 레몽 크노를 이해하고 싶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칼비노가 짚어내는 크노 세계의 핵심은 자유로서의 구조를 창안하려 한 것이다. 크노는 문학과 비문학의 드넓은 공간에서 뛰놀며 광대와도 같은 익살과 재주넘기의 향연을 즐기면서도 우연과 무의식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초현실주의가 아니라 엄격한 고전주의를 지향하였으며, 유머의 환원적이며 방어적 성격에 반대하고, 시와 수학이 무한한 유희적 결합체계로서 상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민중어에 가까운 프랑스어 문어체를 제창하고, 어떠한 양식적 분류도 거부한 채 독창적인 세계의 모델을 발명한 문학의 이단아들에 관심을 기울인 것, “현대인에게 쏟아지는 끝없는 대량의 지식에 휩쓸린 거짓 지식에 반대하고 영감에 기초한 시작(詩作)을 높이 산 것(그는 오랫동안 백과사전 편찬자로서 살았다) 역시 같은 맥락이다. 20세기 전반의 거대한 혼란으로서의 현실에 열려 있으면서도 합리적이고 확실한 질서, 즉 수학적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가능성의 모든 가능한 조합을 적극적으로 탐구해내는 힘을 그는 문학에서 갈구하였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레몽 크노의 많은 작품들

 

Ø  국내에 번역된 크노의 작품

<지하철 소녀 쟈지>, 도마뱀출판사, 2008

 

Ø  참고할 개념

구성적 계기”(konstitutives Moment, constitutive moment)

브리콜라주”(Bricolage) à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파베세와 인간 희생 제의

불에 타 죽는 인간 희생은 칼비노가 파베세의 작품에서 감지하는, 결코 말해지지 않는 주제이다. 이 주제를 향해 서서히 그러나 낭비 없이 구축되어 간 그의 문학세계에서 그의 민족학/민속학적 관심과 신화학적 관심,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는 하나가 된다.

그는 끔찍한 생활 조건으로 악명을 떨쳤던 농업지역, 이탈리아 북부의 피에몬테 지방 출신이었다. 그의 작품 <달과 불>의 주인공은 바로 이 지역에서 미국으로 보내 진 고아 소년이다. 소년은 사업에 성공한 뒤 가난 때문에 자신을 버린 고향에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다. 아니, 소년이 돌아온 진짜 이유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고향은 어떠한지, 자신과 그 곳은 어떠한 관계 속에 있는 것인지를. 그는 예전의 그곳이 어떻게 오늘의 이곳이 되었는지를 알고 싶다. 어릴 적 신발이 없어 가보지 못했던 마을 축제에 이제는 주인집 딸을 차로 데려다 줄만큼 어제와 오늘은 달라졌다. 그러나 소년이 구하는 은 한 무뚝뚝한 공산주의자의 입을 통하여 아주 조금씩만 제공된다(말해지지 않는 주제). 이 공산주의자는 역사와 반역사를 동시에 체현하는 핵심인물로서 그가 제공하는 지식 역시 역사와 신화의 경계 위에 있다. 그리하여 돌아온 소년(과 독자)은 정체성과 동일성의 기억이란 희미한 연기 같음을 깨달을 뿐이다. 축제에 바래다 준 발랄했던 주인집 딸은 파시스트 첩자로 몰려 파르티잔들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녀는 정말 첩자였을까? 남은 것은 그녀를 태웠던 불에 그을린 자리뿐이다.

 

Ø  이 장에서 다루어지는 작품

<달과 불> (<레이호우와의 대화> <달과 불>에 선행하며 그를 예비하는 작품으로 언급됨)

 

Ø  국내에 번역된 파베세의 작품들

<레이코우와의 대화>, 열린책들 (세계문학153), 2010

<아름다운 여름> 상하 2, 청미래, 2007

<당신의 고향>, 청미래, 2007

 

Ø  참고할 작품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2, 헤르만 브로흐, 시공사, 2012

<신곡>,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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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 개정판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 / 경당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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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은 명사여야 하는가? 어째서 가장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동사가 아니란 말인가? (24)

왜 우리는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가? 창조력만큼 사람들을 관대하고 즐겁고 활기차고 대담하고 훈훈하게 만들어 재물이나 다툼에 무관심하게 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8)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모른 채 살아가는 아티스트, 그림자 아티스트는 드러나는 재능을 감춘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그토록 경외하는 창조성을 자신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남몰래 갈망해왔던 아티스트의 길을 열정적으로 걷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 아티스트는 다른 아티스트를 사랑한다. 그림자 아티스트는 같은 동족인 아티스트에게 끌리지만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이 진정한 아티스트가 되느냐 혹은 그늘에 숨어 꿈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그림자 아티스트가 되느냐는, 재능이 아니라 용기에 달려 있다. (73)

창조성이 막힌 친구들은 당신의 회복을 두려워한다. 당신이 창조성을 회복할수록 그들도 창조성을 회복하고 안이한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는 위험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 창조성이 막혀 있는 사람들은 죄책감에 의해 쉽게 흔들린다. ... 우리는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싶으면서도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창조성이 막힌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에 관심을 쏟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행동은 자신을 좌절시킬 뿐이다. (98)

기도에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겁나는 일이다. 내가 바란 것을 얻었으니 이젠 어떻게 할 것이냐는 식으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무엇에 대해 기도하는지 항상 조심하라. 자칫 그 기도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라는 경고문이 왜 있겠는가? 기도에 응답을 받으면 책임은 이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124)

질투란 그런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두려워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버젓이 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다. 질투심의 뿌리는 편협한 감정이다. 질투는 풍성함과 다양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질투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자리밖에 없다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의 시인, 단 한 사람의 화가..... 당신이 무엇이 되기를 꿈꾸든 그 일에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자리밖에 없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행동하는 순간, 비로소 거기에는 단 한 자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219)

"생각해 봐. 중요한 출장을 막 떠날 참인데, 네 남편이 갑자기 네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야.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야. 또 이런 경우도 있지. 직장이 너무 형편없어서 때려치우려고 하니까, 못돼먹은 사장이 별안간 5년 만에 처음으로 월급을 올려주는 거지. 그럴 때 속지 말라고. 정말 속으면 안 돼." (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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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 163호 - 201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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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은 모종의 판단정지 상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 앞에서 순연하게 몸이 젖어 지금 내리는 빗소리를 누군가의 피맷힌 울음으로 듣는 일. '신명'이란 흔한 쓰임새 그대로 어떤 즐거운 상태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내려놓고 뭔가에 무연하게 무너져내릴 줄 아는 힘도 분명 '신명'의 작용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자가 어찌 웃음의 통렬한 해갈을 실감하겠는가. -291쪽

하지만 중요한 것은 95년 체제가 65년 체제의 보완물이지 대체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95년 체제는 국가의 책임배상을 부정하고 이를 '사과'라는 형태로 봉합함으로써 65년 체제가 지닌 모순을 체제 내로 흡수해 65년 체제를 연명시키려는 시도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 식민지 지배 책임문제는 65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성격을 잃고 국가 책임자의 사과발언 여부나 그 수위를 둘러싼 쟁점으로 왜소화되어 표류하게 된다. -392쪽

한국근대문학 연구자로서 2000년대 이후의 연구경향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작가론의 쇠퇴와 전집의 부재 현상이다. 문화연구, 담론연구의 성행에 비례하여 개별 작가, 사상가가 세계를 향해 발신한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 변모를 천착하는 연구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근대문학을 해석하는 참조점이 식민지 조선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문학계에서 문화계 전체로 확대되었음을, 그를 통해 작품이나 사상이 좀더 입체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반면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의 문제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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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7 (양장) -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시리즈 7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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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네를 놀래주는 내 능력이 아주 사라졌는지 보기로 할까?"
......
"어떤가?"
"맙소사!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군."
나는 소리쳤다.
"나의 샘솟는 아이디어는 세월에 녹스는 법도, 관습에 젖어 진부해지는 법도 없다네"
홈즈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작품을 앞에 둔 예술가의 기쁨과 긍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24쪽

그는 어느 선까지는 엇나가지 않고 잘했지. 무쇠 같은 신경을 타고났는데, 인도에서는 아직도 대령이 부상당한 식인 호랑이를 쫓아서 배수로를 기어간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네. 여보게, 그런데 세상에는 일정한 높이까지는 잘 자라다가 그 다음부터 갑자기 이상하게 흉측한 모양으로 변하는 나무들이 있거든.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심심찮게 있지. 내가 보기에 개인은 윗세대의 모든 특징을 자신의 발달 과정에서 드러내게 되는 것 같아. 과거에 가계로 침투해 들어온 어떤 강한 영향력이 선이나 악에 대한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나타나는 거지. 그래서 한 개인은 자신의 가족사의 축도가 되는 것일세. -39쪽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것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처럼 보였지요. 하지만 그자는 예술가의 천품이 없었던 까닭에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올더커는 더 이상 손볼 데가 없을 만큼 완벽한 작품을 더 멋지게 다듬으려고 했지요. 불운한 희생자의 목에 걸려 있는 밧줄을 더 바짝 죄려고 했던 겁니다. 그러다 신세를 완전히 망쳤지요. -81쪽

베이커가의 작은 무대에는 극적인 등장과 퇴장이 드물지 않지만, 소니크로프트 헉스터블 박사보다 더 갑작스럽고 놀라운 방식으로 출현한 사람은 없었다. 문학 석사, 철학 박사 등, 그의 학문적 성취를 다 담기에는 너무 작아 보이는 명함이 전해진 지 겨우 몇 초 만에 당사자가 방 안에 들어섰다. 박사는 당당한 풍채에 점잖고 위엄에 넘쳤는데 한마디로 침착함과 중후함의 화신이었다. 하지만 방문을 닫은 다음 그가 맨 먼저 한 행동은 비틀거리며 탁자에 몸을 기댔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다. 위엄에 넘치는 인물은 인사불성이 되어 우리집 곰가죽 깔개 위에 엎어졌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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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6 (양장) - 셜록 홈즈의 회상록 셜록 홈즈 시리즈 6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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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홈즈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그의 설명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명쾌했다. 그가 말한 것은 대부분 아는 얘기였지만, 솔직히 나는 개개 사실의 비중이나 여러 사실 간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20쪽

어느 이른 봄날, 홈즈는 전에 없이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원에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느릅나무 가지에는 초록빛 새순이 움트고 있었고, 밤나무의 끈적끈적한 겨울눈이 막 다섯 장의 잎사귀를 펼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들답게 두 시간 동안 말없이 공원을 거닐었다. 베이커가로 돌아온 것은 저녁 다섯시가 다 돼서였다. -52쪽

수사 기술에서 최고로 중요한 것은, 많은 사실 중에서 어느 것이 부차적인 것이고 어느 것이 핵심적인 것인지 가려낼 줄 아는 능력입니다. 이게 되지 않는다면 수사관의 주의력과 에너지는 분산되고 말 겁니다. 이 사건에서 나는 처음부터 죽은 자의 손에서 발견된 편지 조각이 사건 해결의 열솨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195쪽

사람들이 빠져나간 도시는 텅 비었고, 나는 뉴포리스트의 숲 속 빈터나 사우스시의 자갈 해안이 그리웠다. 하지만 난 은행 잔고가 바닥나 휴가를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내 친구는 전원이든 바다든 아예 추호도 미련이 없었다. 그는 5백만의 인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앉아서 사람들 가운데 촉수를 뻗어놓고 온갖 뜬소문과 범죄 의혹을 탐지해 내는 일을 사랑했다. 그에게는 하고많은 재주가 있었지만 자연을 감상하는 재주는 없었고, 기분 전환이 되는 일이라곤 단 하나, 도시의 악당에게서 관심을 돌려 시골 악당을 추적하는 일이었다. -234쪽

그런 클럽[디오게네스 클럽을 말함]은 처음 들어보는군.
그럴걸세. 런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는 수줍음 때문에, 또는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에 타인과 교제하는 걸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방금 나온 신문이나 잡지를 들추는 것까지 싫어하는 사람은 없거든. 디오게네스 클럽은 원래 그럼 사람들을 위해 발족된 모임이지. 그래서 지금 거기엔 사교성 없기로는 런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 다 모여 있네. 그곳 회원들은 서로에게 절대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네. 거기에선 내빈실만 빼고 일체의 대화가 금지되어 있지. 이 규정을 세 번 이상 어기면 제명될 수도 있어. 우리 형[마이크로프트를 말함]은 그 클럽의 발기인 중 하나인데 사실 나도 거기 가면 아주 마음이 편해진다네.-268쪽

원래 나는 <해군 조약문> 사건의 기록을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구멍을 낸 그 사건에 대해서는 일체 침묵하려고 했다. 그 일이 있고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내 삶의 공허는 메워지지 않았다. ...... 시신을 건져내려는 시도는 무망한 것이었다.. 물이 소용돌이치고 거품이 끓어오르는 끔찍한 가마솥 맨 밑바닥에는, 가장 위험한 범죄자[모리어티를 말함]와 당대 최고의 법의 수호자가 언제까지나 나워 있을 것이다. ... 내가 지금 그의 정체를 밝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순전히 홈즈를 공격함으로써 모리어티의 행적을 미화하고자 하는 몇몇 지각 없는 사람들 때문이다. 홈즈는 내게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381쪽

나는 영국을 떠나기 전에 재산을 전부 정리한 다음 마이크로프트 형에게 넘겨주고 왔네. 부인에게 인사 전해 주게. 그리고 이 사람아, 잊지 말게. 나는 자네의 진정한 벗이라는 것을. - 셜록 홈즈 -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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