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163호 - 2014.봄
창작과비평 편집부 엮음 / 창비 / 2014년 2월
품절


... 한편의 시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은 모종의 판단정지 상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 앞에서 순연하게 몸이 젖어 지금 내리는 빗소리를 누군가의 피맷힌 울음으로 듣는 일. '신명'이란 흔한 쓰임새 그대로 어떤 즐거운 상태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내려놓고 뭔가에 무연하게 무너져내릴 줄 아는 힘도 분명 '신명'의 작용이다.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자가 어찌 웃음의 통렬한 해갈을 실감하겠는가. -291쪽

하지만 중요한 것은 95년 체제가 65년 체제의 보완물이지 대체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95년 체제는 국가의 책임배상을 부정하고 이를 '사과'라는 형태로 봉합함으로써 65년 체제가 지닌 모순을 체제 내로 흡수해 65년 체제를 연명시키려는 시도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후 식민지 지배 책임문제는 65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성격을 잃고 국가 책임자의 사과발언 여부나 그 수위를 둘러싼 쟁점으로 왜소화되어 표류하게 된다. -392쪽

한국근대문학 연구자로서 2000년대 이후의 연구경향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작가론의 쇠퇴와 전집의 부재 현상이다. 문화연구, 담론연구의 성행에 비례하여 개별 작가, 사상가가 세계를 향해 발신한 고유한 문제의식과 그 변모를 천착하는 연구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는 한국근대문학을 해석하는 참조점이 식민지 조선에서 동아시아로, 그리고 문학계에서 문화계 전체로 확대되었음을, 그를 통해 작품이나 사상이 좀더 입체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반면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윤리의 문제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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