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길, 실크로드 240일
콜린 더브런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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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노인들은 무정한 가장행렬을 바라보듯, 이 변모하는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낡은 마오쩌둥 모자에 헤어진 헝겊 슬리퍼를 신은 그들은 길모퉁이나 공원에 앉아서 몇 시간이고 변화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그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내전과 일본 침략 시대에 태어나서 대약진운동 시대의 기근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문화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용케 생명을 부지한 그들이 이제 필요 없는 존재들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어느덧 흰색으로 변한 머리를 인 그들의 얼굴은 역사로 인해서 주름살이 잡혔거나 텅 비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 가끔 그들의 표정이 평화로워지고, 심지어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무슨 행복한 기억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칠까 궁금했다. (25)

고고학자 오럴 스타인은 로프 사막의 전망대를 조사하다가 배달되지 않은 편지들을 발견했다. 소그드어로 쓰인 이 메시지들은 그 연대가 313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그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종이 위에 쓰인 최초의 편지들이다. 글씨는 먹으로 쓰여 있다. 한 편지는 오래 잊혀진 아내의 넋두리를 담고 있다("당신의 아내가 되느니 차라리 개의 아내 또는 돼지의 아내가 되는 것이 낫겠다!") (47)

"그분들은 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죠. 농부였으니까요. 그분들은 내가 들에서 일을 돕기를 바라셨지요." 그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쨌든 나는 갔지요. 하지만 열일곱 살 때 다시 떠나야 했습니다. 공산혁명이 일어났고, 승려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요. 처음에 나는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1964년에 정부가 내게 결혼하라고 지시했어요. 그들은 승려들이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기를 바랐지요." (83)

사실 만리장성은 진정한 방어요새로서는 의미가 없었다. 훈족, 몽골족, 만주족은 거의 마음대로 만리장성을 넘나들었다. 중국학자 오윈 레티모어는 만리장성이 건설된 것은 유목민들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인들을 그 안에 가두어놓기 위해서였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만리장성은 물리적인 방어능력보다는 엄청난 상징성에 의미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야만서오가 문명, 빛과 어둠을 갈라놓는 선이었다. 그것은 몸서리치는 부정의 행동이었다. ... 러시아인들이 죄지은 사람들을 시베리아로 내쳤듯이, 중국인들은 천자의 제국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를 만리장성 밖으로 내던졌다. 반대자, 죄인, 심지어는 어리석은 자들까지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정화했다. (118)

그러나 중국의 불교는 개방적이었다. 여기서 그 창시자의 완성을 향한 엄격한 여행은 신비의 구름 속으로 빠져들었고, 수많은 신들로 부서졌다. 불교는 민간신앙을 흡수하기도 했다. 몇몇 성소의 경우에는 천장에 힌두교의 신들과 연꽃이 가득 그려져 있었고, 심지어 머리가 아홉 개인 용과 도교의 온갖 신들--날개달린 유령과 말, 인간의 머리를 가진 새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신선--이 등장하기도 했다. 인간의 머리를 가진 새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신선--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왕모는 떨어지는 꽃보가 속으로 불사조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달렸다. 이처럼 이곳에서 꿈꾸는 저 세상은 안정된 것이 아니었다. 동물과 인간, 이승과 저승이 우주의 회오리바람 속에 뒤섞이고 신앙 간의 경계가 휩쓸려 사라지는 혼돈의 세계였다. (123)

하지만 여기서 나온 문헌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문화의 세계를 드러내 보여주었다. 경건한 불경 원고는 다른 용도로 쓰인 종이를 덧붙여 빳빳하게 했는데, 이 덧붙인 종이가 불경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전해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것들은 물목, 유언장, 법률 문서, 사적인 편지 등이었다. 중국의 가요와 시도 나왔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기록한 문서도 있었다. 월경통을 완화해달라는 기도와, 심지어 죽은 당나귀에 대한 제문도 있었다. 예법편람의 한 편지는 간밤에 술에 취해서 무례하게 행동한 것을 사과하는 손님의 편지였다. 한 여승이 검은 소를 물물교환으로 얻었는가 하면, 다른 여승은 노예를 유산으로 남겼다. 어떤 사람은 차와 술이 벌이는 논쟁을 글로 쓰기도 했다. 중국어로 된 엄청난 양의 기도문 옆에는 산스크리트, 티베트어, 위구르어, 소그드어, 허톈어, 투르크어로 된 문서들도 있었다. ... 그야말로 다양한 언어와 인종의 흔적이 나타나 있었다. (128)

나는 머릿속에서 그의 이 말과 씨름을 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동포들은 중국인들이 냉담하고 억제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이 집을 짓는 것을 봐도 그걸 알 수 있어요. 직사각형 아니면 정사각형뿐이지요," 그는 두 손으로 입방체를 쌓아올리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우린 꽃처럼 집을 짓지요." 모스크의 꽃 같은 돔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인이고 음악가들이에요. 심정적으로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고요!" (146)

"당신은 베일을 쓰지 않죠?" 볓이 뜨거운 지금도 그녀는 맨머리였다.
"난 여전히 당원이에요. 내가 머리를 가린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거에요." 그녀의 분노가 되살아났다. "하지만 난 무엇보다도 엄마예요. 난 내 아이들을 신자로 키우고 싶어요. 신은 우리 동포들에게 아주 중요해요. 그들은 매우 가난하거든요. 우리가 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도시 사람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아나고 있고요. 우리 삶은 너무 힘들거든요. 그리고 당은 우리에게 뭐 하나 해주는 게 없고." (190)

그는 어릴 적부터 마나스에 대해서 배웠다. 구전되는 설화 속에서 신격화된 이 초인적인 창건자는 그의 민족에게 정체성을 주는 원천이었다. 그 외에 내세울 키르기스인이 있었겠는가? 제정 러시아는 그들을 가파르고 격리된 계곡들에 정착시키고, 여러 부족으로 나눔으로써 그들이 민족의 개념을 가지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내려온 그들의 족보를 외울 수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나라였다. ... 1924년 스탈린이 그들의 경계선을 정해주었다. 스탈린은 강압적으로 그들을 집단화했고, 그들의 언어를 적는 문자를 만들었으며, 그러는 과정에서 인근에 그들의 인척 카자흐인들과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서 많은 외래어를 차용해 사용하게끔 했다. 이제 소련의 비전은 사라졌고, 그들은 반신화적인 민족의 개념에 집착하고 있다. (207)

원래 마나스는 여러 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나라의 언어와 경계선을 정한 사람들이 러시아인들이었던 것처럼, 전해오던 이 전설을 음유시인들에게서 수집하고 그것을 수정해서 더욱 발전시킨 사람들 역시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키르기스인들을 터키계의 다른 이웃 민족들과 분열시키기 위해서였다. 키르기스 민족국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스탈린의 선물이었다.
...
전설은 어디에나 서릴 수 있다. 마나스도 황제와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 민족은 철학자 레닌이 말한 것처럼 진정한 과거가 아니라 그 민족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민족이 무엇을 기억하고 있고 무엇을 잊어버리느냐에 의해서 속박된다. (233)

늙은 여인들--어린 시절을 기근과 집단농장의 고난을 겪으며, 부모를 여의는 슬픔 속에서 보낸 희생자들--에게 용서받을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중 한 노파가 움켜쥐고 있던 지팡이를 내려놓으며 땅바닥에 엎드려 운다. 나는 그녀를 일으켜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이 슬픔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확산된, 거의 비개인적인 슬픔이다. 그것은 내가 동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고난은 보속...의 혹독한 시련이다. 그리스도의 상처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258)

사탄이 세상을 뒤집어엎고 인간을 쏟아버렸다는 얘기였다. 그 책임은 환영에게 돌려지고 있었다. 더 알 것도, 더 물을 것도 없었따. 수용소 군도를 운영하던 공산당 간부들은 이미 오래 전에 메달과 연금을 받고 은퇴했다. 그중 한 사람에게도 죄를 묻지 않았따. 러시아는 과거에 대해서 등을 돌려버렸던 것이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홀로코스트... 이후로 나의 세계는 기억을 의무로 삼았다. 그런데 러시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택했던 것이다. 망각을 택함으로써 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작가 샬라모프는 말했다. 국가가 진실 위에 건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59)

100만 명이 죽고, 인구의 절반이 집을 잃었으며, 성소의 문에는 거지들이 줄을 서 있지만--지뢰에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의족을 앞에 늘어놓았다--이 사람들에게는 침해되지 않은 유산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동정을 거부하는 정신이었다. 그들은 북쪽의 친척들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이 사람들은 더 명랑하고 더욱 화난, 더 정중하고 더욱 엄격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281)

그들은 하소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를 내고 있었다. 그들이 제외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을 따로 격리된 저열한 사람들로 낙인찍었던 탈레반의 행태가, 사태가 안정된 지금에도 다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우리들에 대해서 써주세요." 그들이 말했다. (286)

마지막으로 나는 마을로 들어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았다. 7년의 가뭄으로 들판과 작물, 그리고 그들의 삶마저 말라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의 평균 수명은 마흔세 살이라고 한다. 이런 살벌하고 각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이 아직 동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신비스러웠다. 낯선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 원수의 아들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322)

나는 조심조심 군중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를 향한 얼굴들도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나의 존재를 알아차렸다가 다시 잊어버린 듯 온화하고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내 주위의 인종적 다양함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발밑의 포석은 회색과 핑크색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된 나 자신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내 얼굴은 몇 달 동안 바람과 햇볕에 그을려 검게 변해 있었다. (331)

하지만 알리라는 그 친구는 지나치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약간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는 정부 소속의 통계 전문가라는데,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걸음걸이가 단정치 못했고, 목을 길게 뽑은 탓에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 듯 보였다. 알리는 무척 말이 빨랐다. 그는 자신의 어휘를 연습했고("유토피아"와 "가설"이 그가 애용하는 단어였다), 그의 어휘에는 고색창연한 단어와 현대의 단어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342)

"단언하건대, 우리 국민의 90퍼센트는 이 율법학자들을 미워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물러가기를 바라지요. 그들은 우리에게 울라고만 가르칩니다. 이 나라는 순교자들의 나라이지요. 도시마다 후세인의 친척이 되는 사람의 묘가 있어요. 나도 시아파 신자이지만 내 생각에는 수니파가 더 좋아요. 그들은 이렇게 질질 울지는 않거든요. 우리에게는 노래나 춤이 없어요. 슬픔만이 있지요."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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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 정신의학자이자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는 스웨덴 육아의 진실
다비드 에버하르드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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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은 명확: 아이를 약자 피해자로 간주 말고 가정의 왕으로도 대접 말라. 부모가 결정하며 키워라. 배경도 명확: 70년대 이래 평등이라는 구호와 물샐 틈 없는 복지, 육아 산업의 발전에 부모의 권한과 권력을 놓아버린 스웨덴 중산층. 장황한 논지 전개와 뜬금 없는 유머로 고통 주니 별은 두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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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1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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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산업 기층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밀착 묘사라는 점에서 귀하다. 특히 여성들의 삶을 핍진하게 드러내는 것과 삶의 조건에 따라 조성된 성도덕/문화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 이 와중에 안타까운 연애사까지. 2권에서는 에티엔이 꼭 무슨 일을 낼 터인데 부디 전멸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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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 정신의학자이자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말하는 스웨덴 육아의 진실
다비드 에버하르드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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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부모가 우유부단해지는 요인은 문화 자체에서 찾을 수 있다. 어떤 권리든 중시하며, 의무는 조직적으로 회피하려는 문화에서는 아이를 기르기가 아주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기 쉽다. 서양에서는 극도의 어린이 중심적인 문화가 생겨났는데, 앵글로색슨 스칸디나비아 북유럽 나라가 주로 그렇다. 그 배경에는 아이에게 물질적으로 아쉬운 게 없도록 해 주는 사람이 가장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보다 더 흔한 것은 아이에게 언성을 높이는 일 없이, 아이의 말에 반박하지 않으며 아이를 언제나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부모라는 관점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것은 아이같은 어른을 길러 내는 문화다. (17)

말하자면 오늘날은 절대적인 위험의 정도가 덜하지만 상대적으로는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모두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는 복지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을 아무 잘못도 없이 공평하게 대우 받지 못하는 피해자로 보고 있다. 사실 서양 세계에서는 오늘날의 문명국가와 비슷한 선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가 이제까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점점 더 사소한 것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 (49)

어떤 경우든 아이들은 유난히 연약한 인간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듣게 되는 갖가지 주장과는 달리 거의 무엇이든 감당할 능력이 있다. 호된 꾸지람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고, 질책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으며, 사회에 적응하여 그 일원이 될 능력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른의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지든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도와야 한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인 동시에 기대하는 것을 언제나 손에 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간 말이다.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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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중국 가난한 중국인 - 중국인의 삶은 왜 여전히 고달픈가
랑셴핑 지음, 이지은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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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제조업체는 앞으로는 승냥이, 뒤로는 호랑이를 두고 있는 셈이다. 금융자본이 승냥이라면 산업자본은 살기등등한 호랑이다. 다시 말해 원자재를 구입할 때는 금융자본이 가격을 결정하고, 제품을 판매할 때는 산업자본이 가격을 지배한다. 이렇듯 중간에 낀 중국을 승냥이와 호랑이가 깨끗하게 먹어 치운다. (33)

미국 제약업체의 엄청난 자금력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약품 실험에도 걸핏하면 수억 달러를 선뜻 쏟아 붓는 제약업체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FDA는 어떻게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는 모든 FDA 보고서의 작성자에게 `이해 상충...`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작성자가 특정 이익과 관련이 있다면, 예를 들어 관련 업체로부터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거나 여행 경비나 보너스 등을 받았다면 독립성을 잃었다고 간주하여 그 의견을 참고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FDA는 독립성을 확보한 의견만을 `전문적인 의견`이라고 간주한다. 만일 해당 전문가가 이해 상충을 숨겼다면 명예를 잃는 것은 물론 학계에서 발붙일 곳을 잃게 된다. 게다가 일단 조사에 걸리면 제약업체가 제 아무리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던진다 해도 엄중한 처벌을 피할 수 없다. (85)

이와는 또 다른 현상이 있는데, 바로 가난을 비웃는 세태다. 사전 녹화 방식으로 제작되는 <진심이 아니면 다가서지 마세요>에 출연한 한 남성은 자신을 재력가라고 소개했다. 월 소득을 묻는 MC의 질문에 그 남성이 3,500위안...을 번다고 답하자 스튜디오는 금세 웃음바다로 변했다. 이 짧은 장면은 실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일반 중국 서민이면 감히 하지 못할 말을 과감하게 꺼낸 남성 게스트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 월 3,500위안의 소득으로는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남성은 자신의 힘으로 3,500위안을 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돈을 많이 벌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그만한 용기가 있는가? 중국 사회는 그의 용기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저 비웃기만 했다. (100)

이 새로운 `산업망 통합` 정책과 반독점법을 연계시키면 농민은 더 많은 소득을 얻게 되고 소비자 역시 더 저렴한 가격으로 양질의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시도를 별 볼일 없다고 무시해버려선 안 된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앞서 여러 번 강조한 중국인을 부유하게 만드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과거 10위안을 주고 사야 했던 채소를 5위안이면 살 수 있다. 소비자는 5위안을 아끼는 셈이다. 게다가 과거엔 1위안을 벌었던 농민도 3위안을 벌게 되니 형편이 좀 더 나아질 것이다. (121)

애플의 요구를 들어주려면 결국 반군대식 경영 시스템 외에 별다른 해결책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애플은 미국인의 위선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꽃 같은 중국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든 원흉이라고 하라 수 있다. 팍스콘은 그저 그들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팍스콘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팍스콘은 고객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주문을 받을 수 없다는 수동적인 처지에 놓여 있었음을 확인시킨 것이다. (133)

중국 언론들은 `오늘` 팍스콘을 욕하지만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업체를 욕하지 않을까? 뭐라고 욕하든 아무런 소용도 없다. 설마하니 중국의 OEM업체가 모두 팍스콘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은 절대 다수의 업체가 팍스콘보다 훨씬 못한 수준이다. 중국의 모든 OEM업체는 거의 대부분 애플과 같은 거대 기업에 기대어 간신히 살아가고 있다.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은 무엇일까? 문제를 일으킨 업체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진짜 범인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140)

이러한 제재의 법적 근거가 버로 중국이 시장경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중국의 시장경제 지위를 미국이 인정한다면 중국 제품을 제재할 법적 근거는 사라지는 세밍다. 2006-2009년 동안 대주국 반덤핑 제재로 미국이 거두어 들인 수익은 60억 달러가 넘는다. ... 그런데도 미국은 왜 거액을 벌어들이는 무기를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물론 미국은 이를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중국에 시장 경제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고만 얘기했을 뿐이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 20년동안 생각만 할 수도 있다. ... 미국은 그저 중국에게 좀 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뭘 더 노력하라는 것인가? 바로 자신들의 요구가 만족될 때까지 중국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217)

최근 중국 션전대학교는 인사제도 혁신을 통해 다시 한 번 개혁이 도전했다. 2010년 9월부터 교수의 `간부직 신분`을 해지하고 직원제와 초빙제를 실시한 것이다. 재계약에 실패했거나 초빙되지 못한 교수의 철밥통을 과감히 빼앗자 더 이상 고개를 뻣뻣이 세운 간부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션젼대학교의 대담한 조치를 두고 사회 각계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77)

전반적으로 홍콩의 교육개혁은 민주주의를 강조하기보다는, 교수가 책임감을 느끼고 수업의 질을 높일 수밖에 없는 제도와 기강 도입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만의 교육개혁은 왜 좌초한 것일까? 대만이 1인 1표제라는 민주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수준 이하인 교수들이 과반수를 넘게 차지하고 있는 대학의 경우, 1인 1표제는 학교를 장악한 무능한 교수들이 무능하지만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손쉽게 캠퍼스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할 소지가 높다. 이렇게 되면 무능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을 뽑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284)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2004년 국유기업 개혁에 관환 대대적인 토론이 벌어지던 당시, 나는 그린쿨 창업주인 구추이쥔으로부터 고소를 당해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당시 대륙의 많은 경제학자와 각종 이익단체 대변인들은 나를 깍아내리기에 바빴지만 홍콩 중운대학교[왜 이 책은 중문대학을 계속 중운이라 하는지? 아니면 중원이라고 하든지]에서는 이 일에 대해 내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학교가 내게 보여준 절대적인 존중과 학문적 자유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학자의 존엄성과 학문적 자유를 존중하는 정신을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285)

이들은 권력집단과 부잣집에서 기르는 개에 다름없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려고 할 때마다 이들은 서민의 입장이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보려 하지 않고 오로지 아부를 떨거나 정부 정책을 칭찬하기에 급급하다. ... 나는 부동산세의 본질이 무엇인이 이들 학자에게 묻고 싶다. ... 토지 사유제를 유지하는 미국에서 토지 소유자가 부동산세를 납부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 하지만 중국의 경우엔 토지가 정부 소유이기 때문에 부동산세를 납부해야 할 기반이 전혀 없다. 부동산 개발자는 임대료와 비슷한 개념인 양도금을 납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서민들은 이미 임대료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임대료를 내고도 토지를 소유한 정부를 위해 부동산세를 또 내야 한다는 주장이 가당키나 한가? (313)

저소득계층이 아닌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이 임대주택을 차지하는 바람에 중국 전역에서 민원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충칭 시가 내놓은 비장의 대책은 바로 `관대한 진입-엄격한 진출`이라는 조치이다.
...... 하지만 공공 임대주택에서 나갈 때는 반드시 엄격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공공 임대주택은 저가의 임대주택으로, 5년 이상 거주하면 구입이 가능해 서민용 주택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공공 임대주택 저가 임대주택 서민용 주택이 한데 섞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집을 되팔 경우, 구입 당시의 가격으로만 정부에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집 매매로 이익을 추구하지 못한다. 이처럼 출구를 엄격하게 관리하면 소위 빽 있고 돈 있는 사람도 별 이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투기 목적으로 공공임대주택에 손을 대려는 생각을 애당초 할 수 없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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