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심리학
데이브 그로스먼 지음, 이동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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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과 전쟁을 철저히 알기 전까지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고, 전쟁을 알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 킨제이...나 매스터스...와 존슨...이 했던 것처럼 부지런해야 한다. 모든 사회에는 시야에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사각 지대가 있다. 오늘날의 사각 지대는 살해다. 한 세기 전에는 성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18)

이러한 데이터를 제시하면, 어떤 이들은 그것은 "한 형제가 싸움을 벌이는" 내전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제롬 프랑크... 박사는 자신의 책 ...에서 이러한 견해에 분명하게 답변한다. 이 책에서 그는 통상적으로 내전은 다른 유형의 전쟁들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하고, 더 오래 지속되며, 훨씬 더 무질서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피터 왓슨...은 <전쟁을 생각한다...>에서 "같은 집단에 속한 구성원들의 일탈 행위가 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 타인들의 일탈행위보다 훨씬 더 충격적으로 느껴지고 더 강력한 보복 행위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과거 유럽과 오늘날 아일랜드, 레바논, 보스니아 등에서 서로 다른 기독교 분파들에서 볼 수 있는 강한 공격성, 레닌주의자,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 사이의 갈등, 르완다와 기타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부족 간 전쟁이 낳은 참상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67)

그 참전 용사는 자신과 같이 베트남에 있었던 해병대원들 가운데 몇몇이 전투 후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인 베트남 젊은이들이 개인적 실존이라는 더 큰 전쟁의 동료임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비인간적인 `그들`에 맞서기 위해 전 생애에 걸쳐 연대하는 젊은이로서 말이다." ... "북베트남 병사들을 죽이면서 미군 병사들은 그들 자신의 일부를 죽였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진실을 회피하는 이유일 것이다. 살해에 대한 거부감의 규모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면, 이는 곧 인간을 향한 인간의 비인간성을 이해하는 길이 될 것이다. ...... 동료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 안에 있으며, ... 이러한 거부감은 강력한 힘을 지닌 채로 존재하며, 그 존재는 그래도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믿을 만한 여지를 남겨 준다. (86)

이스라엘의 군 심리학자인 벤 셜리트는 전투를 막 치른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무엇이 제일 두려웠느냐고 물었다. 그는 "목숨을 잃는 것" 혹은 "전장에서 다치거나 버려지는 것"이라는 대답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셜리트의 기대와 달리 죽거나 다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많이 표현했다. ...... 실제로 셜리트는 사회와 문화가 죽음과 부상에 대한 이기적인 두려움이 군인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라고 말할 때조차, 전투가 요구하는 끔찍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전투원들의 마음을 가장 심하게 짓누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101)

타인에 대한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 인간들에 대한 추잡한 기록은 전투에서 적군을 살해하기를 꺼리는 마음의 이면이다. 평범한 군인의 영혼은 살인 행위와 살인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증오하며 죽일 만큼 자신의 인간성을 부정한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서도 똑같이 공포를 느낀다. (137)

람보, 인디애나 존스, 루크 스카이워커, 제임스 본드 등을 길러 낸 문화는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전투와 살해를 벌일 수 있으며, 누군가를 적이라고 선포하면 대의와 조국을 위해서 군인들이 후회 없이 그들을 말끔하게 지구상에서 없애 버릴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여러 면에서, 머나먼 나라에 있는 다른 젊은이들을 죽이라고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을 보낼 때, 사회가 그러한 행위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다룬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떠올리기가 너무 고통스러우면, 우리는 그것을 그저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리려 한다. (159)

서로 이렇게 가까이 다가선 상태에서 병사들이 상대방의 인간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의 눈과 두려움을 보고 있노라면 부인은 소멸된다. 이 거리에서는 살해의 인간 상호적 본질이 변하게 된다. 이제 살해자는 제복을 향해 쏘거나 규정된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해 총을 쏴야 하고 특정 개인을 죽여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없거나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194)

첫번째 요인은 추격 본능이다. 평생 동안 개를 훈련시키고 군견과 더불어 일하면서, 나는 동물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길들이지 못한 개는 한 마리도 없었고, 내게 달려드는 개를 발로 걷어차서 꼼짝 못하게 한 적도 많지만, 내가 등을 돌려 달아나면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본능과 이성을 통해 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추격 본능이 있어서 훈련을 잘 받은 온순한 개들조차 본능적으로 달아나는 상대를 쫓아가 덮쳐 버린다. 등을 보이고 있다면, 당신은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추적 본능이 있어서 도망치는 적군을 죽이는 데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205)

등을 보인 병사를 별다른 주저 없이 살인하게 되는 두 번째 요인은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면 물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거리라 하더라도 이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간단히 말해, 물리적 거리의 본질은 살인자가 희생자의 얼굴을 얼마나 자세히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등 뒤에서 총을 쏘거나 등 뒤에서 비수를 꽂는 행위를 비겁한 짓으로 여기는 우리의 문화적 태도는 이러한 과정에 대한 본능적 이해에 바탕을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군인들 또한 등을 보일 때 적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6)

우리 안에 자리한 어둠과 파괴의 힘은 동료 인간을 향한 빛과 사랑의 힘으로 균형 잡혀 있다. 이 힘들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투쟁하며 서로 겨루고 있다. 한쪽을 무시하는 것은 곧 다른 쪽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어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빛을 알 수 없다.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을 알 수 없다. 섹스와 전쟁 사이의 연결고리와 양편 모두에서 발생하는 부인의 과정은 "전쟁의 신 아레스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의 신화적 결혼 속에서 하르모니아가 태어났다"는 리처드 헤클러의 관찰에 잘 표현되어 있다. (218)

집단은 책임감을 형성할 뿐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익명성을 발달시켜 줌으로써 살해를 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 폭력에 기여하도록 한다. 몇몇 상황들에서, 이러한 집단 익명성의 과정은 동물의 왕국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시적인 유형의 살해 미스테리를 촉발시키는 것 같다. ... 셜리트는 "동물 세계의 이러한 무분별한 폭력은 인간 세계의 폭력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개체보다는 집단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한다.
콘라트 로렌츠는 "살해자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라고 말한다. (235)

심리학자들은 군중이 유발하는 익명성에 의해 책임이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구경꾼들이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상황에 개입할 가능성이 적다고 밝힌 연구는 문자 그대로 수십 개에 달한다. 따라서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서 끔직한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은 많지 않지만, 만약 일어나더라도 구경꾼이 개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구경꾼이 책임을 희석시킬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경우, 그가 상황에 개입할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집단은 이 같은 방식으로 무리 안의 개인과 군 부대 안의 군인이 개인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행위, 이를테면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살해하거나 다른 나라 군복을 입은 사람에게 총을 쏘는 행위를 감행할 수 있도록 책임을 희석시켜 버린다. (236)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한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어느 미군 중령과 같다. "나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사람들을 해치고자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에 깨달았다. 나는 이들과 맞설 준비를 하는 데 내 일생을 바쳐 왔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기민하다. 그들은 목양견이 자기 앙떼를 배반하지 않듯이 자기 공격성을 오용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쓰지 않지만, 가슴속으로는 정당한 전투를 갈망하며 적법하고 합당한 곳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늑대들이기도 하다. (276)

이들은 본능적으로 시험받지 못해 애태우며, 능력의 한계를 넘는 도전을 간절히 요구한다. 우리 안의 전사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게,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구원할 혹독한 전장으로 이끌어 달라고 간청한다. 우리는 골리앗을 대면하여 우리 안에 전사 다윗이 살아 있다는 것을 상기하려 한다. 우리는 전쟁의 신들이 우리를 예리코의 벽으로 인도하여 강인한 집합 나팔 소리에 응하게 해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의 힘보다 훨씬 더 위대한 힘에 의해 전장에서 패배하기를, 그 패배를 통해 처음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하기를 열망한다. 우리를 궁극적으로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 전투를 갈망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갈망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사랑스럽고 끔찍하고 아름답고 비극적이다. (277)

‘고결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우는 적군의 존재는 살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고결하고 영광스러운 목적이 있다고 믿도록 살해를 정당화하고 지지한다.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영국군 장교는 홈스에게, 죽을 때까지 자신이 맡은 임무에 충실했던 독일군 기관총 사수들을 찬미하는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고였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싸웠고, 우리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293)

홀로코스트는 유대인과 무고한 사람들을 무분별하게 살해한 것으로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살해는 무의미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악한 짓이긴 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벌인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살인에는 아주 강력한 그들만의 비뚤어진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잔학 행위에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논리다.
잔학 행위의 어두운 힘을 건드리는 자들이 거둘 수 있는 이득은 많다. … 그 이득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분명 실질적이고 강력하다. 잔학 행위의 마력을 이해하려면 개인과 집단, 국가가 잔학 행위에 눈길을 돌리게 만드는 이러한 이득의 정체를 이해하고, 나아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308)

잔학 행위가 일으키는 지독한 공포감은 여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할 뿐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태를 관망하는 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불신하게 만든다. … 충격의 강도가 셀수록, 믿고 싶지 않다는 반응은 더 커진다. (316)
......
그러나 우리는 부인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주의 깊게 찬찬히 살펴보면,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대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어디에선가 잔학행위의 어두운 힘을 휘두르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동일시하는 누군가가 같은 인간에게 이러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고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경향일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잔학 행위의 존재를 불신하거나 외면하려는 이 단순하고 순진한 경향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세계에 잔학 행위와 공포가 지속되는 데 따른 그 어떤 요인들보다 더 큰 책임이 있을 것이다. (318)

인간 개개인의 생명과 존엄을 소중히 여기는 자들은 자신들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들은 인간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무고한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만큼 전쟁에도 충실히 임해야 한다. 이들을 부추겨 기만적이고 역효과만 낳을 뿐인 잔학 행위의 길로 들어서게 해서도 안 되고, 이들을 적대시해서도 안 된다. … 어떤 집단이 잔학 행위의 왜곡된 논리에 완전히 가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빼지도 않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다면, 그 집단은 왜곡된 논리의 근시안적인 이득조차 얻지 못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위선적인 태도로 인해 힘의 약화와 혼란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절대 영혼을 반만 팔 수는 없다. (336)

내 손에 멱살을 잡힌 아이의 공포를 보자 나는 니체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증오하고 두려워하느니 차라리 사멸하라. 스스로를 증오하게 하고 두려워하게 하느니 차라리 그 배로 사멸하라." (356)

적군은 자신과 다르고, 가족이 없으며, 인간도 아니라고 굳게 믿도록 하기 위한 여러 기제들이 늘 활용되어 왔다. 많은 원시 부족들은 자기 부족에는 결국 `사람`이나 `인간` 정도로 번역되는 여러 이름들을 붙이고, 다른 부족들은 그저 사냥하거나 죽일 수 있는 다른 동물의 종으로 정의했다. 우리도 적을 잽(일본인), 크라우트(독일인), 구크(동남아시아인), 슬롭(아시아인), 딩크(북베트남인), 코뮈(공산주의자)라고 부르면서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 (368)

대부분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직접 살해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훈련을 받으며 적을 비인간화하는 데 가담했고,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실제로 총을 쏘았거나 마음속으로 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들이 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쏠 수도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정신적으로 나는 이미 그를 죽인 상태였다")로 인해 그들은 전장에서 가지고 돌아온 책임의 짐을 벗어던질 수 있는 중요한 수단 하나를 잃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고, 따라서 보통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오직 살인자들만이 아는 자기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소개받기에 이르렀다. 요점은, 이러한 둔감화와 조건 형성, 부인 방어 기제 등의 프로그램이 이후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결합하게 되면 살해를 하지 않았더라도 살해를 했다는 자책감을 공유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80)

모든 전쟁의 전투원들은 아주 어리지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국 전투원들은 미국 역사의 그 어떤 전쟁에서보다 눈에 띄게 어렸다. 전투원 대부분이 열여덟 살에 징집되어 인생에서 가장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시기에 전투를 경험했다. 이 전쟁은 미국이 처음으로 벌인 "십대 전쟁"이었다. 평균적으로 전투원들은 아직 스무 번째 생일도 맞이하지 않은 상태였고, 과거의 전쟁에는 늘 있어왔던 원숙한 고참병들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 그들은 십대를 이끄는 십대였다. (386)

베트남 전쟁은 대부분 비정규군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미군은 자기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민간인 복장을 한 남자, 여자, 아이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전통적인 관례의 실종, 민간인 사상자와 잔학 행위의 급증, 그리고 전쟁 트라우마를 초래했다. 전쟁을 치러야 할 이데올로기적 이유도, 맞서야 할 상대도 과거의 전쟁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388)

군인들에게 이러한 의례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정서적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그들은 죄책감을 제거하거나 그들이 행한 일이 옳았다는 확신을 받지 못한 채 감정을 안으로 삭이게 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이러한 방임의 피해자들이었다. 동료들과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긴 수송선 여행도 그들에게는 없었다. 대신, 파견 근무를 마친 군인들은 적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른 지 며칠 만에, 때로는 몇 시간 내에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록 집으로 보내졌다. 그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을 들어 줄 동료 군인들도 없었다. 그들 자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켜 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397)

우리 사회의 경향 속에서 미국의 아이들이 새로운 유형의 폭력적인 역할 모델에 더 노출되기 쉬워졌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다. 전통적인 핵가족에는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어 왔던 안정적인 아버지가 있었다. 하지만 안정적인 남성상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온 남자아이들은 절박하게 역할 모델을 찾는다. 그래서 영화나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힘세고, 강하고, 지위가 높은 역할 모델이 이들 삶의 빈 공간을 채운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아버지를 빼앗고 모든 상황에서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로 대체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 아이들은 왜 이토록 폭력적이 되었는지 의아해하는 것이다. (463)

남성 권력, 남성 지배, 남성성, 남성 섹슈얼리티, 남성의 공격성은 전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 형성되어 있다. …… 조건 형성된 것은 탈조건 형성될 수 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467)

예전에 우리는 왜 인간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지, 그리고 왜 앞으로도 계속 그러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해야 한다. 오직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우리는 변화를 꿈꿀 수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자기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조차 살해를 거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
우리는 타나토스를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배웠다. 무기의 스위치를 ‘안전’에서 ‘발사’로 전환하는 일처럼, 우리는 아주 손쉽게 인간의 심리적 안전장치를 밀어젖히는 법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심리적 안전장치가 어디에 있고,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살해학의 목적이고, 이 책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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乡土中國(經典珍藏版) (精裝, 第1版)
上海人民出版社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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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본질] 熟悉是从时间里、多方面、经常的接触中所发生的亲密的感觉。这感觉是无数次的小摩擦里陶炼出来的结果。这过程是《论语》第一句里的"习"字。。。。 在一个熟悉的社会中,我们会得到从心所欲而不逾规矩的自由。这和法律所保障的自由不同。规矩不是法律,规矩是"习"出来的礼俗。从俗即是从心。换一句话说,社会和个人在这里通了家。(8)

从熟悉里得来的认识是个别的,并不是抽象的普遍原则。在熟悉的环境里生长的人,不需要这种原则,他只要在接触所及的范围之中知道从手段到目间的个别关联。在乡土社会中生长的人似乎不太追求这笼罩万里的真理。(9)

于是在熟人中我们话也少了,我们"眉目传情",我们"指石相证",我们抛开了比较简洁的象征原料。而求更直接的会意了。所以在乡土社会中,不但文字是多余的,连语言都并不是传达轻易的唯一象征体系。
[문자가 시골로 내려간다면] 。。。, 在现代化的过程中,我们已开始抛离乡土社会,文字是现代化的工具。我要辨明的是乡土社会中的文盲,并非出于乡下人的"愚",而是由于乡土社会的本质。。。。 所以提倡文字下乡的人,必须考虑到文字和语言的基础,否则开几个乡村学校和使乡下人多识几个字,也许并不能使吸纳怪吓人"聪明"起来。(14)

[`문자가 시골로 내려간다면` 재론] 同一戏台上演着同一的戏,这个班子里演员所需要记得的,也只有一套戏文。他们个别的经验,就等于世代的经验。经验无需不断累积,只需老是保存。(17)

在定型生活中长大的有着深入生理基础的习惯帮着我们"日出而起,日入而息"的工作节奏。记忆都是多余的。"不知老之将至"就是描写"忘时"的生活。秦亡汉兴,没有关系。乡土社会不怕忘,而且忘得舒服。只有在轶出于生活常轨的事,当我怕忘记时,方在指头上打一个结。(18)

在一个每代的生活等于开映同一影片的社会中,历史也是多余的,有的只是"传奇"。 一说到来历就是从"开天辟地"说起;不丛这开始,下文不是只有‘寻常"的当前了么?都市社会里有新闻;在乡土社会,"新闻"是稀奇古怪、荒诞不经的意思。在都市社会里有名人,乡土社会里是"人怕出名猪怕壮"。不为人先,不为人后,做人就得循规蹈矩。这种社会用不上常态曲线,而是一个模子里印出来的一套。(18)
这种乡土社会,在面对面的亲密接触中,在反复地在同一生活定型中生活的人们,并不是愚到字都不认得,而是没有用字来帮助他们在社会中生活的需要。我同事也等于说,如果中国社会乡土想的基层发生了变化,也只有在发生了变化之后,文字才能下乡。(19)

[차등 있는 질서] 为自己可以牺牲家,为家可以牺牲族。。。。。。这是一个事实上的公式。在这种公式里,你如果说他私么?他们不能承认的,因为当他牺牲族时,他可以为了家,家在他看来是公的。当他牺牲国家为他小团体谋利益时,争权利时,他也是为公, 为了小团体的公。在差序格局里,公和私是相对而言的,站在任何一圈里,向内看也可以说是公的。。。。所不同的,他们把国家看成了一个超过一切小组织的团体,为这个团体,上下双方都可以牺牲,但不能牺牲它来成全别种团体。这是现代国家观念,乡土社会中是没有的。(25)

[사인에게 작용하는 도덕은] 这个忠字虽则近于"忠于职务"的忠字,但是并不包含对于团体的"失忠"。其实,在《论语》中。忠字甚至并不是君臣关系间的道德要素。君臣之间以"义"相结合。"君子之仕,行其义也。"所以"忠臣"的观念可以说是后起的,而忠君并不是个人与团体的道德要素,而依旧是对君私之间的关系。(29)
。。。。。。
因为在这种社会中,一切普遍的标准并不发生作用,一定要问清了,对象是谁,和自己是什么关系之后,才能决定拿出什么标准来。(30)

[가족이란] 在我们的乡土社会中,家的性质在这方面有着显著的差别。我们的家庭既是个绵续性的事业社群,它的主轴是在父子之间,在婆媳之间,是纵的,不是横的。夫妇成了配轴。配轴虽则和主轴一样并不是临时性的,但是这两轴却都被事业的需要而排斥了普通的感情。我所谓普通的感情是和纪律相对照的。一切事业都不能脱离效率的考虑。求效率就得讲纪律;纪律排斥私情的宽容。在中国的家庭里有家法,在夫妇间得相敬,女子有着三从四德的标准,亲子间讲究负责和服从。这些都是事业社群里的特色。(34)
。。。。。。 乡下,有说有笑,有情有意的是在同性和同年龄的集团中,男的和男的在一起,女的和女的在一起,孩子们又在一起,除了工作和生育事务上,性别和年龄组间保持着很大的距离。这决不是偶然的,在我看来,这是把生育之外的许多功能拉入了这社群中去之后引起的结果。(35)

[예로써 다스려지는 사회] 这显然是和法律不同了,甚至不同于普通所谓道德。法律是从外限制人的,不守法所得到的罚是由特定的权力所加之个人的。人可以逃避法网,逃得脱还可以自己骄傲、得意。道德是社会舆论所维持的,做了不道德的事,见不得人,那是不好;受人吐弃,是耻。礼则有甚于道德:如果失礼,不但不好,而且不对、不合、不成。这是个人习惯所维持的。十目所视,十手所指的,即使在没有人的地方也会不能自己。曾子易簧是一个很好的例子。礼是合式的路子,是经教化过程而成为主动性的服膺于传统的习惯。(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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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망명 -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안드레 블첵.로시 인디라 지음, 여운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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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르노(+인니공산당과 민족 연합들, 중국계 포함)에서 수하르토(+군부)로의 비극적 단절이 이제 정리가 된다. 본인이 자바 출신이라 이 정도의 자바주의 비판이 가능하고 힘 갖는다. 현대사 반성 없는 민족주의는 허위와 폭력의 용광로, 죄악의 온상이라는 진리. 부루 4부작, 누가 어서 번역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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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망명 - 인도네시아의 대문호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와의 대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안드레 블첵.로시 인디라 지음, 여운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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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수카르노는 서로 다른 정치사상 조류들 사이에서 능숙하게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는 지도자의 스타일과 수사를 발전시켰다. 1921년 <우투산 힌디아>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비슈누 무르티는 어디서나 [인민의] 각성을 불러온다. 자본주의를, 그 노예인 제국주의에 의해 지탱되는 자본주의를 폐지하라! 신은 이슬람에게 성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셨다".... 이렇듯 수카르노는 민족주의 이슬람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종합`해 인도네시아 민족주의당...을 창설했으며, 이는 이후 반식민주의를 추동하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종교와 마르크스주의의 이런 혼합은 1970년 수카르노가 사망할 때까지 거의 정치 전략의 특징이 되었다. (28)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억압적인 체제 중 하나인 수하르토 장군의 군사독재가 30년 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서구 열강의 자비 덕분이었다.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는 오랫동안 서구 자본가들, 그리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같은 이들의 기관에 의해 `모범생`으로 여겨졌다. 필거가 표현했듯이 "아시아의 세계화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무차별 학살 속에서 탄생했다".... 이 시기에 세계은행은 3백억 달러가 넘는 돈을 수하르토 체제에 제공했는데, 세계은행의 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그중 20-30퍼센트가 수하르토와 그의 친인척 명의의 금고로 들어갔다고 한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수하르토 독재 체제가 인도네시아에 `안정`을 가져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마거릿 대처는 그를 가리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최고의 친구 중 하나"라고 불렀다. (38)

이런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비교하는 능력은 사라졌다. 창의성은 불신되고 붕괴되었으며, 다양성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해외여행도 경제 정치 엘리트들이나 누릴 수 있었는데, 이는 신질서 시기든 신질서 이후 시기든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사회는 붕괴했다. 대다수 인도네시아 인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안전한 식수조차 구하기 어려운 비참한 환경에서, 하루에 미화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예술가들은 현실에 안주했고, 언론은 자기 검열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46)

이 작업을 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프람은 쉽게 지쳤고, 종종 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화를 내고 좌절했다. 때로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인도네시아에 걸었던 모든 희망이 무너진 듯했다. 한번은 그가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주의가, 현재 인도네시아 인 엘리트가 무자비하게 저지르는 약탈보다 나았다고 단언했다. 내가 그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 나라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식민주의를 경멸하는 사람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람은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 광활한 군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바주의`와 자바 제국주의가 외국 식민 지배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는 것이다. (53)

그렇다면 식민주의가 사람들에게 권력을 존경하고 두려워하도록 가르친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이미 인도네시아 문화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습니다. 자바주의에는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원칙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미 식민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거죠. 1965년 이후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자바주의를 이해해야 합니다. (63)

`자바 파시즘`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나요?
자바주의와 마찬가지입니다. 윗사람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바가 수 세기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겁니다. 자바 엘리트들은 향료를 찾던 식민주의 세력과 협력했죠. 사람들은 엘리트에게도, 식민주의자들에게도 감히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식민주의 초기부터 엘리트들은 식민지 세력에게 매수되었고, 자바는 전투 한 번 치르지 않고 적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윗사람들에게는 윤리라는 게 없었고,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99)

왜 인도네시아에서는 지적 호기심이 사라진 걸까요? 다른 독재 체제들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 지식인들이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과 잡지를 찍어 내 몰래 배포했습니다. 많은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민은 진실에 목말라 했고, 그 결과 종종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기도 했죠. 왜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어째서 인도네시아 인들은 이 나라의 과거에 대해, 세계에서 인도네시아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체제에 대해, 혹은 동티모르와 아체, 파푸아 등에서 일어난 잔혹 행위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겁니까? (118)

수하르토와 그 체제에는 이상주의라고 할 만한 것조차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문화가 그저 하찮은 오락 수준으로 퇴화하고, 결국에는 믿을 수 없이 천박해져서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은 배울 게 전혀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모든 게 공허해졌어요. 인도네시아 인들은 거짓된 것을 억지로 주입받고 있습니다. 텔레비젼에서 많은 영웅들을 보여 주는데, 사실 이 나라는 변변한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수 세기 동안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영웅이 있다는 겁니까? 무하마드 야민, 아르코, 티르토와 같이 이 민족을 발전시키려 노력한 진정한 영웅은 우리 역사책에 절대 나오지 않습니다. (120)

이곳은 상황이 다릅니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작가들의 경험은 나와 달라요. 나는 삶의 대부분을 싸우면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지배에 맞서 싸웠고, 나중에는 수카르노의 혁명을위해 싸웠죠. `국가와 국민성 건설`이라는 문제에 깊이 관여했어요. 바로 그런 게 지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도 국가와 국민성을 만드는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작가들은 국민에게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아무 글이나 써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나는 그것을 처음부터 깨달았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렸죠. (127)

그러나 인도네시아에도 선생님이 존중하는 지역이 하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전부 부패해 가는 건 아닙니다. 아체는 예외입니다! 인도네시아가 2백 년간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을 때도, 아체는 독립을 유지한 채 적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개인주의자들이죠. 네덜란드는 아체를 점령하기 위해 자바에서 암살자들을 보냈는데, 지금 인도네시아 정부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항상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아체를, 그들의 개인주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얘기해 온 겁니다. 아체 인들은 용감합니다. 그들은 가정에서 용감해야 한다고 배우죠. (154)

사라진 책들 중 적어도 일부라도 다시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책은 한 번만 쓸 수 있는 거에요. 책을 쓰는 동안 작가가 빠져드는 주변 환경과 기분은 다시 만들어질 수 없죠. (135)

1998년 수하르토의 몰락을 취재하면서, 당시 학생 시위의 본부였던 트리삭티 대학에 갔습니다. 한 가지 저를 놀라게 한 것은, 학생 지도자들이 수하르토 정부와 이른바 `정실주의`에 대해서만 반기를 들었을 뿐, 퇴행적 문화, 억압적인 가족 구조,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종교의 개입, 심지어 억압적인 정치 경제구조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 상황은 학생들이 문화 사회 정체체제 전반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1968년의 파리나 멕시코시티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게 이른바 `개혁`이라는 건데, 이건 수하르토의 신질서를 개량하려는 시도에 불과합니다. 신질서를 개혁해 봤자 발전된 형태의 신질서를 만들어 낼 뿐이겠죠. 이는 진정한 혁명과는 무관합니다. (170)

앞의 질문과 연결해 생각했을 때, 인도네시아가 이 거대한 체제에 홀로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봅니까?
인도네시아가 자체의 혁명을 할 수 있습니다만, 전 세계적인 경제적 정치적 독재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동맹이 필요합니다. 우선 우리 정부와 엘리트가 신뢰할 만하지 않은데 어떻게 우리가 세계적 권력에 맞서 싸우는 국가적 단결을 이뤄 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누구든 뇌물을 주는 쪽에 섭니다. 그게 인도네시아의 현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먼저 우리 자신부터 혁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에야 세계적 투쟁을 위한 동맹을 찾아볼 수 있겠죠. (173)

인도네시아가 1945년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 많이 손상되어서, 어떤 개혁도 효과가 없어요. 모든 행정 권력은 골카르의 손에 있고, 인도네시아에 남아 있는 건 모두 훔쳐서 외국에 팔아넘기는 군부와 엘리트가 실권을 장악한 마당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뭘 해낼 수 있겠어요? 답은 혁명입니다. 총체적 혁명!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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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는 기술 - 아침 30분이 당신의 3년 후를 결정한다
후루카와 다케시 지음, 김진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습관 세우기에 관한 원칙 복습: 1) 한 번에 한 가지씩 습관 들여온다. 일찍 일어나 영어공부 하기는 이미 두 개. 2) 새 습관을 들여오는 대신 포기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하자. 3) 센터핀과 보틀넥 정확히 파악하고, 센터핀 사수. 4) '굿/문제/트라이/드림'으로 습관이 내 것 될 때까지 매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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