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교육, 어릴 때부터 시켜야 된다면서요? 2편

한 중년 여성께서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 명의로 5백만원의 증권계좌를 만들어주고 싶다면서 찾아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를 여쭤본즉, 조기 금융교육 차원에서 소액이나마 직접 주식을 매매하는 과정을 체험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어딘가에서 들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러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요? 우리 애가 잘못해서 손실이 나도 괜찮아요. 어차피 5백만원 없는 셈 치죠 뭐”

“그게 아닙니다. 아드님이 손실을 낼까 봐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잘못해서 큰 수익을 내게 될까 봐 염려가 되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뭐라고요...???”

한 동안 필자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시던 그 분께서는 이어지는 필자의 설명을 다 들으시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한 시간 여에 걸쳐 필자가 설명 드렸던 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주식투자를 통한 우연한 성공은 큰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주식투자라고 하는 것은 투자대상 기업 및 그 사업내용에 대한 분석과 향후 전망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정보를 개인적으로 일일이 수집하는데 무리가 따른다고 한다면 증권회사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수집된 정보를 스스로 이해하고 선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투자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학생에게 그러한 판단력을 기대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식의 매매과정 자체는 무척 간단하기 때문에, 중학생이라고 해도 매매방법을 익히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컴퓨터게임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이라면 더더욱 간단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뭐, 주식이라는 게 알고 보니 별 거 아니었구나...” 바로 이 점이 함정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학생이 나름대로 매매를 몇 번 해 보다가 좀처럼 마음먹은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투자한도액을 다 날리는 경우라면, 오히려 필자가 보는 관점에서는 5백만원 이상의 교육효과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론적인 예상과 실제 주식시장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깨닫게 될 것이고, 이것이 기억에 남아 훗날 성인이 되어서도 과거의 실패를 떠올리고 신중한 투자습관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별 생각 없이 몇 번 매매를 해 보았다가 예상 밖의 큰 횡재를 하게 되었을 경우, 그것을 ‘단순한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 내지는 ‘타고난 시장감각’으로 착각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심리학에서 Illusion of Control(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라고 부르는 이와 같은 현상은 연령이 어릴수록 더 강렬하게 사람의 뇌리에 각인되는데, 이것은 나중에 훨씬 더 큰 규모의 무모한 투자에 뛰어드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만일 부모님께서 자녀로 하여금 매번 투자하기에 앞서 투자대상 기업을 고른 이유와, 그 기업의 사업내용 및 전망 등을 설명하게끔 하고 자녀의 설명이 나름대로의 공부와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것임을 확인하신 후 매매를 허락하는 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정말 훌륭한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의 설명에 논리적인 오류나 모순이 다소 있더라도 관계 없습니다. 설명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 의견을 존중해 주십시오. 이런 경우라면 설령 그 종자돈을 다 날린다고 하더라도 자녀에게 면박을 주거나 야단을 쳐서는 안됩니다. 어떤 경우든 그 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공부를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부모님께서 도저히 그러한 투자과정을 지도하고 감독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시거나 혹은 그러한 지도를 할 만큼 주식시장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신 경우라면, 절대로 자녀에게 “이 돈 만큼 네가 한 번 알아서 해봐라”는 식의 위험한 실험을 하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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