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없는 월급쟁이가 어디 있나요?

자산관리 상담을 업으로 삼다 보니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물론 저의 고객들로부터 받는 질문은 아니고, 대개 제 주변의 친구들이나 이웃, 또 여러분들을 포함한 선후배 등으로부터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만, 정색을 하고 물어보는 분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이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라는 것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필자 역시 ‘돈을 버는’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미 많은 돈을 버신 분들의 효율적인 자산관리를 연구하다 보니 적어도 ‘돈을 버는 사람’ 과 ‘돈을 못 버는 사람’의 차이점을 구분하는 정도는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필자가 실제 경험을 통해 느낀 그러한 차이점을 몇 가지 말씀 드리는 것도 성공적인 자산관리를 꿈꾸는 여러분에게 작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돈을 버는 사람’과 ‘못 버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눈다고 할 때 그 기준을 말한다면 실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와 같은 급여생활자들에게 있어 우선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은 부채, 즉 빚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일상에서 흔히 듣게 되는 표현으로(대개의 경우 선배나 상사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지요:

“부채도 자산이라니까... 고지식하게 내 돈만 가지고 언제 재산을 불려?”
“글쎄 걱정 마, 부채 없는 월급쟁이가 어디 몇이나 되나?”

어떻습니까, 많이 들어보신 말이지요? 여러분도 혹시 이러한 말에 동감하십니까? 확실한 것은,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 ‘돈을 많이 버는’ 부류의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또한 안타깝게도 ‘돈을 버는 사람’의 부류에 합류할 가망은 거의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여기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이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과는 좀 다른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복권에 당첨되거나 거액의 상속을 받은 경우라면 ‘돈을 많이 가진 사람’ 임에는 틀림없겠습니다만, ‘돈을 버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말씀이지요.

‘부채도 자산’ 이라는 말 자체는 물론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재무회계 상으로도 그렇게 보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이야기이지, 개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기업의 경우, 은행 등의 금융기관을 통해 낮은 이자(‘조달금리’라고 합니다)에 일정 한도내의 외부자금을 차입해 그 돈을 공장을 짓는다든지 원자재를 확보한다든지 하는 보다 생산적인 활동에 활용함으로써 조달금리 이상의 이윤을 창출해 내는 것을 바람직한 경영활동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개인이,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과연 조달금리, 즉 은행이나 카드사 등 금융기관에서 차입하는 이자비용 이상의 효율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자본을 생산적인 활동에 투입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조달금리 보다 훨씬 낮은 자본효율이 나오는 활동에 차입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을 뿐더러, 애초부터 차입의 목적 자체가 이윤창출이 아니라 ‘소비활동’ 혹은 ‘수익률이 불확실한 투자활동’에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업경영에서 말하는 ‘효율적 경영을 위한 부채자산의 운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부채 없는 월급쟁이가 얼마나 되나?”라는 말 역시 거짓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부채를 정당화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채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느냐, 아니면 당연하게 여기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부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있지요. 그래서 월급쟁이를 해서는 평생 돈을 못 번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적금을 깨기는 아까우니 예금담보대출을...?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라고 기억합니다. 뜻하지 않게 갑자기 목돈이 필요하게 되어 입사 후 꼬박꼬박 부어오던 비과세적금을 해약하러 은행에 간 일이 있습니다. 미혼인 관계로 회사의 저리주택자금대출 등의 혜택을 일절 볼 수 없었던 시절인지라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은행직원이 기막힌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1년만 더 부으면 만기인데 이걸 깨는 것은 손해이니, 예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예금을 담보로 그냥 돈을 빌려준다니, 그런 괜찮은 제도가 있는 줄 필자는 처음 알았습니다.

필자는 집에 돌아와 한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 그 은행을 찾아가 결국 적금을 깨고 말았습니다. 1년 후의 비과세 혜택을 감안하더라도 은행이 제시한 대출이자 쪽의 금리가 1% 가량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당시로서는 제 판단에 그다지 확신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지금의 시각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백 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10% 중반대의 금리 수준이었고 지금은 4% 대의 금리 수준이라는 것만 차이가 날 뿐, 금융기관에서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에 차이를 크게 두는 이치가 변할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대마진(預貸 margin)’ 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기관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개인이 은행에 예금을 하는 금리 보다 대출을 하는 금리가 낮을 수는 없다는 것이고, 따라서 대출을 일으키는 개인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끔 되어 있다는 뜻이지요. 만일 10여년 전과 똑 같은 상황이 지금 발생한다면, 필자는 아무 주저 없이 적금을 해약할 것입니다. 금리를 물어보고 비교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당연히 적금을 깨는 쪽이 이익입니다.

직장인이 재테크를 함에 있어서 부채를 일으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대부분의 경우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물론 본인의 소속회사나 정부가 특정한 목적에 한해 장기저리대출을 허용하는 제한적인 경우라면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어떠한 이유를 붙이더라도 개인 부채의 존재이유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번 ‘MMF 등을 통한 현금자산의 효율적 운용’에 대해 설명해드릴 때 하루 이틀 이자를 우습게 보시면 안 된다는 말씀을 강조한 바 있었는데, 누적되는 이자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인식하시게 되면 왜 부채를 만들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쉽게 이해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자가 싼 경우에는 괜찮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채를 만드는 그 순간부터 금융기관이 여러분의 현금흐름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장악하고 통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금융기관에 가서 돈을 한 번 빌려보시면, 대개 첫 달 이자를 선이자로 떼면서 각종 수수료 등의 요구조건을 내거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이 여러분의 예금에 대한 이자를 먼저 주는 법이 있었나요? 항상 만기이자(후이자)로 지급하지요. 심지어 여러분이 빌린 돈을 예정보다 일찍 갚으려 해도 ‘중도상환수수료’라고 해서 엄청난 벌금을 부과합니다. 한 마디로 ‘빌릴 때는 네 마음이지만 갚을 땐 그렇게 못한다’ 는 것이지요. 돈을 빌린다는 것은 어떤 경우이든 그만큼 급한 사정이 있는 것이니 만큼, 그러한 약점을 이용하여 금융기관은 항상 손해 볼 일 없는 유리한 거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시장에서 금융기관이 돈을 버는 원리이므로 이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돈을 벌겠다’ 라는 생각을 가진 개인이 이러한 거래를 ‘당연하게’ 일상생활 속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자 등을 빚을 얻어 하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분들일수록 나름대로의 신념이 확고하기 때문에 설득이 어렵습니다. 그분들의 표현에 따르면 “성공하는 사람들 치고 자기 돈만 갖고 큰 돈을 번 예가 없다” 라고 하시더군요. 구체적으로 도대체 어떤 분이 그런 식으로 성공을 하셨는지는 필자도 아직까지 들은 바가 없으나, 적어도 이 칼럼의 독자인 여러분들 만은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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