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 스트라이크 창비청소년문학 88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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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르지 않음을


자신과 다름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과 다르면 우선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약하거나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열등하게 여긴다. 함부로 대하고, 짓밟으려 하고, 상처를 준다. 사람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가혹하지 않은가. 똑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존재 아니던가.


여기,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다른 존재가 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던 존재일 것이다. 천사로 비유되는 모습과 같은 익인(翼人), 날개가 달린 사람 말이다. 허나, 이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 말이다.


비오는 도시인과 익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날개가 보편적인 익인보다 작게 태어난 게 특징이다. 온몸을 감쌀 만큼 커다란 날개를 가진 동생들과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다르게 비오의 날개는 그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친 생명들을 제 힘으로 회복시켜 주려 하는 인정이 넘치는 소년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아이는 이렇게나 작은데, 내 날개는 그보다 더 작아서, 감싸 줄 수도 낫게 해 줄 수도 없어요.” -10쪽


……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너의 두 팔로, 너의 가슴에. -11쪽


비오의 아버지, 다니오는 제 피가 흐르지 않는 아들에게도 저토록 따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지만 도시인의 아이를 임신한 익인, 시와를 품어 새로운 가정을 이뤄냈다. 비오 다음으로 시와와의 사이에서도 아이 둘을 더 낳는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익인들과 함께 시청 청사를 습격한 비오(익인들의 목적은 다니오를 찾는 게 아니었지만 비오의 목적은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상을 입고 인질로 잡혀 병사 하나에게 괴롭힘 당하던 그때, 루가 나타난다. 루는 도시인이지만 시청 안에서 외롭게 지내는 존재이다. 익인을 향한 호기심에 나섰다가 비오에게 잡혀 익인 마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익인들과 지내며 루는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 말고도 많은 감정을 알게 된다.


“가혹한 일이지요.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행식이란, 그날 당장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혼인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는 의식입니다. 비오가 혼인을 해선 안 되는 이유는 대강 알고 계실 테지요. 안됐지만 그런 겁니다.” -106쪽


“세상에 왔는데, 좋아서 태어난 게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그게 당신들의 초원조가 말하는 연결과 포용인가요. 비오와 같은 아이를 품지 못할 만큼, 초원조의 날개는 그렇게 작은가요.” -107쪽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다름에 대한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미숙하고 덜 자란 마음들이 강해지고 성장한다.


이런 독특한 세계관을 다룬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동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세계관은 말이 안 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갈등, 풍습, 인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장소설’이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 읽고 나서 마음이 조금은 자라난 것 같았으니까.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남에게서 얻으려 한다. 그걸 얻기 위해 어떤 존재는 생명을 잃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사람은 그토록 잔혹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슬플 때도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으면 그게 누구 앞이라도 하고야 마는 루도 참을 줄 알았다. 그러다 비오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 놓게 된다.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진심을 쏟아낼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이때는 알지 못 했더라도. 루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 비오와 함께 날게 된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유영기의 공격을 받고 비오와 루, 둘 다 큰 부상을 입고 만다. 위기의 순간, 비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루를 꼭 안아 준다. 체온이라도 나눠 주기 위해. 루에게 뭐든 전해 주기 위해. 비오 덕분에 목숨을 건진 루는 우여곡절 끝에 도시로 돌아간다. 돌아가 다시 날기 위해 떠나려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순간 그를 만나고 싶다. -299쪽

네가 어디 있건, 어디서 날고 있든 간에 기다려 줘. 지금 곧 거기로 갈게. -299쪽


루와 비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은 사람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 그 어떤 역경이 있다 해도 사람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고 결국, 성장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우오즈미 시리즈가 생각났다. 조금 특별한 두 사람 이야기지만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아주 비슷하고 닮았다. 두 사람은 결국 만났을까? 만났기를, 결국엔.


장르가 어떻든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덤덤한 것 같아도 따뜻하고, 아주 친절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걸 놓치지 않는 글이다.




*창비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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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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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악한 진실


작품 소개부터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지간한 미스터리 스릴러 소재는 전부 접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큰 자만이었다. 사건의 진범이 배심원으로 등장하는 법정 스릴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잔인하면서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사이코패스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조슈아 케인. 그는 프롤로그 등장부터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새삼 치밀하고 깔끔하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단숨에. 엘턴이라는 법원 우편배달부를 살해하고 그가 얻은 건 하단에 빨간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위에는 흰 글씨로 ‘즉시 개봉할 것. 중요 법원 소환장 재중.’이라고 인쇄된 우편물들이었다. 6, 70통의 그런 봉투를 다섯 장씩 놓고 카메라에 담아 그들의 개인 정보를 알아낸 그는 완벽하게 그들 중 한 명이 된다.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한 사람의 흔적을 없애고 그 사람이 된다. 그 방법에 소름이 돋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잔악하고 악마 같은 인간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에 임했다. 심지어 고통이나 인정 같은 것도 연기를 할 정도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자였다.


케인을 대적할 상대로 에디 플린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하자 극의 흥미로움은 배가 되어 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전직 사기꾼이었던 그는 판사인 해리 포드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아내 크리스틴과 열두 살의 딸, 에이미를 위해 안정적인 수입을 원했다. 그는 의뢰인에게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신념 있는 변호사였다. 스타들의 공식 소송자인 변호사, 루디 카프의 ‘제안’을 처음엔 단칼에 거절했다가 그 제안의 주인공인 배우, 로버트 솔로몬의 자료를 보고 그를 도와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바비가 진범이 아닌 증거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사건의 끝에 연쇄살인범이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다가갔을 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디 플린이라면 억울한 자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찾아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캐릭터의 활약은 독자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부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에서도 ‘이마니시 에이타로’라는 형사가 그런 역할을 맡아 줬다. 작품 흐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진범을 밝혀내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소란하지 않게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에디 플린과 아마니시 에이타로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다른 매력이 있다면, 화자가 진범과 그를 좇는 자, 두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더 생동감 있게 현장을 느낄 수 있고, 서둘러 결말에 도달하고 싶었다.


모래그릇의 경우는 범인을 모른 채 그에 도달하는 과정이라 약간의 답답함이 있었다면, 열세 번째 배심원의 경우는 범인은 이미 알고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사건을 은폐했으며 어떻게 수면 위로 드러나는지를 밝혀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데서 후련하다고 해야 하나. 엉켰던 실타래의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법정 용어에 대해 몰라 찾아가며 읽어야 했는데, 그 부분도 즐거웠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제본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북로드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북로드라는 출판사를 몰랐다면 얻을 수 없는 특권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현재도 확약하고 있는 인권 변호사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경험보다 확실한 전달은 없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제 어지간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좀 식상하다 여겨진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법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단, 악마에게 너무 매료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북로드에서 가제본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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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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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남자 없는 출생. 이 글은 처음부터 아주 파격적이고 논란이 될 화제로 시작된다. ‘난자 대 난자’ 수정을 통해 소수자 즉, 동성연애자도 정자 기증 없이 임신할 수 있게 되는 사회가 열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닿고, 기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을 그려 보게 된다. 로지 루이스 바컴(31세) 또한 사랑하는 애인, 줄리엣 커티스(34세)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둘은 평범하게 만나 서로에게 끌렸고, 연인으로 발전해 만남을 이어가던 커플이었다. 보통의 다른 연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같은 성염색체를 가진 동성이었다. 즉, 아이를 가지려면 정자 기증 밖에 길이 없었다. 그런 그들 앞에 희망 같은 수가 생긴 것이다.


작품은 줄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의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호기심과 설렘에 크게 매료된다. 그러나 그 설렘도 오래 가지 못 했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적대적인 눈빛, 거기서 더 나아가 폭력적이기까지 한 행태와 시위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둘을 몰아붙여 댄다.


점점 지쳐가는 줄스와 로지. 줄스는 보편적이라면 모성을 느껴야 하는데 임신을 한 건 아니라 그런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하고 기쁜 척, 감격스러운 척 연기를 한다. 그 모습에서 비단 그녀만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이라는 작품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 즉, 모성을 다뤘다. 여기서의 모성은 줄스가 느끼는 모성과는 성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내내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이 떠올랐다.


모성이라는 감정은 본능적인 것일까, 학습된 것일까. 어렵고 복잡한 감정이다. 아직 아이를 가져 본 적 없는 독자 입장에선 더더욱 어려웠다. 로지 배 속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줄스가 모성이라 불리는 감정을 전율처럼 느끼지 못한 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직접 자신의 배 속에 품고 있는 게 아니니 더더욱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모성이란 무엇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줄스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와 아이 둘 다 지켜야 할 묵직한 책임감을 안고 있었다. 기자인 그녀는 직장 상사로부터 온갖 괴로운 일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뿐만 아니라 로지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서도 끝까지 노력한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줄스와 로지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계속해서 맴돈다.


쓰러질 것 같은 그들에게 자꾸만 시련이 주어질 땐 보는 것조차 지쳐서 읽는데 애 좀 먹었다.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탄탄해서 지루할 틈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분노가 치미는 현실 앞에 함께 지쳤다. 난난 수정으로 태어날 여자아이들 때문에 세상에서 남자가 사라질 것 같다니. 지금 현재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 말에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위협적으로 다가오곤 했으니까. 허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난자 대 난자 수정이 자연임신을 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것도 아닌데, 이름 모를 병이 걸린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그렇게 분노해야 했을까. 터무니없는 의견을 내세워 SNS에 자랑하듯 떠드는 남자도 있다. 모두들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다수가 개인을 공격하는 일.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하고, 슬픈 일인가.


작품 해설까지 읽고 나서야 ‘아, 이 알찬 책을 끝까지 볼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턱대로 소수자들을 배척하고 모함하고 욕보이게 하는 태도는 분명 고쳐야 한다. 가치관이 맞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을 누구도 갖지 않았으니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난자 대 난자 수정이라고? 뭔데 이렇게 당당하지? 하는 의문이 생긴 분들은 꼭 이 작품에 접근해 보길 바란다.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도 감히 추천한다.


마침표가 찍히니 아쉬운 마음이 큰 작품이라. 더 행복한 모습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저자의 차기작도 이처럼 아쉬움이 커 자꾸 생각나는 글이길 소소하게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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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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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미숙은 어릴 땐 언니 정숙에게 의지했다. 살가운 언니는 점점 변해 갔다. 아빠의 비뚤어진 표현 방식이 언니를 차갑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다툼이 언니 정숙을 참는 아이로 만들었다. 정숙의 허벅지는 나날이 멍투성이가 되어 갔고, 미숙 또한 멍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숙의 희망이 절망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숙은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은 꼭 했다. 의지하던 언니를 잃고, 미숙은 전학 온 재이에게 의지했다. 미숙은 재이와 함께 할수록 자기 동네가 작아진다고 했다. 자기 집 대문도 작아지고, 언니도 작아지고. 그럴수록 아버지는 미워지고 언니는 야속해진다고. 그만큼 미숙은 재이를 좋아했고 빈 부분을 그 아이로 채우려 했다. 사람은 누군가의 부재가 느껴지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작은 호의를 갖고 다가오면 그 빈 자리를 금방 내어 주곤 한다. 뭔가의 부재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연약하고 위태롭다. 미숙이 그래 보였다.


두 사람은 진정한 우정을 나눴던 걸까. 여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동네로 놀러 가고, 영화도 같이 보고, 팝콘도 같이 먹고, 전철도 타 보고, 도시락 반찬도 먹어 보고. 얼핏 그런 것 같았다. 보통의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재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재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다. 미숙의 아버지는 어디서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 왔다. 처음엔 갖은 관심을 다 보이다가 본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거들떠도 안 봤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아마 이 한 마디가 미숙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정숙은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못 했다. 본인 아픔 챙기기도 바빠서. 재이도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않았다. 본인을 위해 미숙을 이용했을 뿐.

미숙은 그렇게 덜 자란 아이처럼 어른이 된다. 그러다 평범한 일을 하게 되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누군가의 부재를 또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미숙은 ‘올해의 미숙’으로 살아간다. 지나간 날들이 마치 미래의 언제인 듯 느껴지는 지금을 살아간다.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는다. 약간은 불친절하다. 어쩌면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곱씹다 보면 몰랐던 맛이 느껴지듯 알 수 없었던 의미가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는 절대 접근하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히 추천할 수가 없다. 읽고 나서 개운한 마음보다는 미묘한 마음이 크다. 분명하기보단 불분명하고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보다 더 사실적일 수는 없다. 두세 번 곱씹듯 읽어 보길 바란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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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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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나는 없기를


처음엔 마이스터고가 소설 소재로 등장해 흥미로웠다. 직장 근처에 있는 마이스터고 때문이었을까. 흔하게 다루지 않는 소재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거기다 피해자로 조사 받고 있는 재석이 영 석연치 않았다. 범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었고, 서평 신청을 하게 되었다.


230여 쪽으로 다소 짧다고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이튿날 정독을 끝냈다. 올해 들어 가장 빨리 읽고, 가장 몰입해 읽은 작품이다. 한국 작가가 쓴 추리소설은 처음 접해 봤다. 일본, 미국, 노르웨이 등 해외 작가들이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미스터리소설만 읽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추리소설을 보니 새로웠다. 이렇게나 호소력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나 하고 놀랐을 정도로.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몇 해 전, 좋은 평을 받았던 중편소설 「국선 변호사, 그해 여름」의 주인공 ‘김’에게 해나 사건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사회파 추리소설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논문 주제에 맞춰 중편으로 쓸 예정이었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플롯이 처음 분량과 달리 전체적으로 길어져 버렸다. 논문으로 발표하는 대신 단행본으로 출간 결심을 한 이유다.


논문이었던 글을 ‘해나’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단행본 작업을 한 저자가 대단하다 생각됐다.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이중적이고 타산적인 면모를 여실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읽는 내내 마음 아프면서도 화가 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나’는 마이스터고를 다니며 어머니와 두 남동생과 살아가는 어린 가장이었다. 마이스터고를 진학한 이유도 빨리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이 참 염증 났다. 돈 때문에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현실이 숨 막히고 답답했다. 해나가 원하던 건 취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 모진 콜센터에서 일하면서도 힘들다 한 마디 안 하면서, 혼자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 아이를 차가운 저수지 속으로 몰았던 건 어느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현실적인 시선인 것 같다. 대기업 협력업체의 콜센터에서 정식 근무시간 이외에도 잔업이나 야근을 하면서까지 실적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담임의 눈치에 가혹한 내쳐짐까지 혼자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을 그 가슴이 안쓰러워 미치겠다.


이 작품을 읽고 곧바로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작품을 읽었다. 번역판이 8권까지라 거기까지 봤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어머니가 다른 언니들과 사는 ‘스즈’에게 주변 어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힘들거나 어려울 땐 어른들에게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내 아이가 아니라도 아이라면 지켜 주어야 한다”고. 스즈를 보면서 해나가 더욱 가엾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도 다른 두 아이의 환경에 비통했다가 흐뭇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작품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해나의 죽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왜 그 아이가 죽어야 했는지, 그 아이가 짊어지고 있던 짐이 얼마나 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참 씁쓸하고 처참했다. 다시는 해나와 같은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후일담이지만 <콜24>를 읽고 난 후, 「국선 변호사, 그해 여름」을 찾아 읽었다. 혹시나 ‘김’의 이름이 나올까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신기하게도 ‘김’의 이름이 나온다. 김유. 그는 두 작품 안에서 일관성 있게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변호했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무장의 활약도 대단하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줘 지루하지 않게 사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다음 작품에도 ‘김’이 나왔으면 한다는 거다. 이대로 김유 변호사를 보내기엔 좀 아까운 감이 많으니까. 모래사장에서 부드럽게 다듬어진 유리조각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저자를 알게 되어 기뻤다.


속도감 있고, 몰입 잘되는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하신다면 감히 추천하겠다. 마지막까지 씁쓸한 맛이 나도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읽어 보시길.




*네오픽션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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