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미숙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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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미숙은 어릴 땐 언니 정숙에게 의지했다. 살가운 언니는 점점 변해 갔다. 아빠의 비뚤어진 표현 방식이 언니를 차갑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다툼이 언니 정숙을 참는 아이로 만들었다. 정숙의 허벅지는 나날이 멍투성이가 되어 갔고, 미숙 또한 멍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숙의 희망이 절망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숙은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은 꼭 했다. 의지하던 언니를 잃고, 미숙은 전학 온 재이에게 의지했다. 미숙은 재이와 함께 할수록 자기 동네가 작아진다고 했다. 자기 집 대문도 작아지고, 언니도 작아지고. 그럴수록 아버지는 미워지고 언니는 야속해진다고. 그만큼 미숙은 재이를 좋아했고 빈 부분을 그 아이로 채우려 했다. 사람은 누군가의 부재가 느껴지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작은 호의를 갖고 다가오면 그 빈 자리를 금방 내어 주곤 한다. 뭔가의 부재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연약하고 위태롭다. 미숙이 그래 보였다.


두 사람은 진정한 우정을 나눴던 걸까. 여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동네로 놀러 가고, 영화도 같이 보고, 팝콘도 같이 먹고, 전철도 타 보고, 도시락 반찬도 먹어 보고. 얼핏 그런 것 같았다. 보통의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재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재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다. 미숙의 아버지는 어디서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 왔다. 처음엔 갖은 관심을 다 보이다가 본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거들떠도 안 봤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아마 이 한 마디가 미숙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정숙은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못 했다. 본인 아픔 챙기기도 바빠서. 재이도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않았다. 본인을 위해 미숙을 이용했을 뿐.

미숙은 그렇게 덜 자란 아이처럼 어른이 된다. 그러다 평범한 일을 하게 되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누군가의 부재를 또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미숙은 ‘올해의 미숙’으로 살아간다. 지나간 날들이 마치 미래의 언제인 듯 느껴지는 지금을 살아간다.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는다. 약간은 불친절하다. 어쩌면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곱씹다 보면 몰랐던 맛이 느껴지듯 알 수 없었던 의미가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는 절대 접근하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히 추천할 수가 없다. 읽고 나서 개운한 마음보다는 미묘한 마음이 크다. 분명하기보단 불분명하고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보다 더 사실적일 수는 없다. 두세 번 곱씹듯 읽어 보길 바란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




*창비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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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24
김유철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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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해나는 없기를


처음엔 마이스터고가 소설 소재로 등장해 흥미로웠다. 직장 근처에 있는 마이스터고 때문이었을까. 흔하게 다루지 않는 소재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거기다 피해자로 조사 받고 있는 재석이 영 석연치 않았다. 범인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었고, 서평 신청을 하게 되었다.


230여 쪽으로 다소 짧다고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책을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이튿날 정독을 끝냈다. 올해 들어 가장 빨리 읽고, 가장 몰입해 읽은 작품이다. 한국 작가가 쓴 추리소설은 처음 접해 봤다. 일본, 미국, 노르웨이 등 해외 작가들이 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미스터리소설만 읽다 우리나라 사람이 쓴 추리소설을 보니 새로웠다. 이렇게나 호소력 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나 하고 놀랐을 정도로.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몇 해 전, 좋은 평을 받았던 중편소설 「국선 변호사, 그해 여름」의 주인공 ‘김’에게 해나 사건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사회파 추리소설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라는 논문 주제에 맞춰 중편으로 쓸 예정이었지만 이야기의 구성과 플롯이 처음 분량과 달리 전체적으로 길어져 버렸다. 논문으로 발표하는 대신 단행본으로 출간 결심을 한 이유다.


논문이었던 글을 ‘해나’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단행본 작업을 한 저자가 대단하다 생각됐다. 저자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이중적이고 타산적인 면모를 여실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읽는 내내 마음 아프면서도 화가 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나’는 마이스터고를 다니며 어머니와 두 남동생과 살아가는 어린 가장이었다. 마이스터고를 진학한 이유도 빨리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세상이 참 염증 났다. 돈 때문에 꿈이 있어도 그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현실이 숨 막히고 답답했다. 해나가 원하던 건 취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고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 모진 콜센터에서 일하면서도 힘들다 한 마디 안 하면서, 혼자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 아이를 차가운 저수지 속으로 몰았던 건 어느 한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현실적인 시선인 것 같다. 대기업 협력업체의 콜센터에서 정식 근무시간 이외에도 잔업이나 야근을 하면서까지 실적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이, 담임의 눈치에 가혹한 내쳐짐까지 혼자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을 그 가슴이 안쓰러워 미치겠다.


이 작품을 읽고 곧바로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작품을 읽었다. 번역판이 8권까지라 거기까지 봤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어머니가 다른 언니들과 사는 ‘스즈’에게 주변 어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힘들거나 어려울 땐 어른들에게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내 아이가 아니라도 아이라면 지켜 주어야 한다”고. 스즈를 보면서 해나가 더욱 가엾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도 다른 두 아이의 환경에 비통했다가 흐뭇했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작품은 일관되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은 해나의 죽음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왜 그 아이가 죽어야 했는지, 그 아이가 짊어지고 있던 짐이 얼마나 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참 씁쓸하고 처참했다. 다시는 해나와 같은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후일담이지만 <콜24>를 읽고 난 후, 「국선 변호사, 그해 여름」을 찾아 읽었다. 혹시나 ‘김’의 이름이 나올까 싶어서. 아니나 다를까. 신기하게도 ‘김’의 이름이 나온다. 김유. 그는 두 작품 안에서 일관성 있게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변호했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무장의 활약도 대단하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줘 지루하지 않게 사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바람이 하나 더 있다면, 다음 작품에도 ‘김’이 나왔으면 한다는 거다. 이대로 김유 변호사를 보내기엔 좀 아까운 감이 많으니까. 모래사장에서 부드럽게 다듬어진 유리조각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저자를 알게 되어 기뻤다.


속도감 있고, 몰입 잘되는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고 싶다 하신다면 감히 추천하겠다. 마지막까지 씁쓸한 맛이 나도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망설이지 말고 읽어 보시길.




*네오픽션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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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조항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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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애처로운 사신을 위한 아리아였을까


책 제목과 표지 디자인만 보고는 선뜻 엄청 읽고 싶단 마음이 들지 않았다. 표지부터 묵직하고 어두워 서평 신청 또한 며칠을 고민했던 것 같다. 확실하게 마음이 확 끌린 건 작품 소개 글과 미리보기를 보고 난 후였다. <자폭조항>의 전(前)편, <기룡경찰> 역시 읽고 싶어질 만큼 낯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궁금했다. 읽고 싶었다.


본격적인 경찰소설은 처음 접했다. 일본소설 중 경찰이 등장해 기발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풀어 가는 미스터리 추리물은 많이 봤지만 이렇게까지 떼거지(!)로 등장한 작품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또한 일본인 작가가 북아일랜드의 구체적인 사회 모습과 테러라는 사건을 이렇게까지 심도 있게, 전문적으로 다룬 글은 듣지도 보지도 못 했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로 놀란 건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다는 점. A4 한 면을 가득 채울 만큼 인물이 많고 이름 또한 어려워 수기로 기록하며 읽어야 했다. 무엇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액자구성 때문에 혼란스럽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모든 단점을 감수할 만큼 속도감 있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에 압도당해 버렸다.


두 번째로 놀란 건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는 점. 기갑병장(이족보행형 군용 유인 병기군, 경찰들만의 은어로는 ‘기모노’라 불림)이라는 최첨단 무기가 등장한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을 해치려 했던 군인들의 무기와 비슷한 모양새라고 추측했다. 북아일랜드의 어둡고 처참한 사회상과 테러에 연루된 사람들의 아픔과 잔상도 꽤나 자세하고 세심하게 다뤘다. 사전에 탄탄한 조사 없이는 감히 시도조차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글을 저자는 사실적이고 단단한데도 유연하게 풀어냈다. 감탄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세 번째로 놀란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섬세하고 매력적인 어조가 있다는 점. 굉장히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던 것 같다. 대단한 작품인 이유가 있는 법. 서사도 만점, 캐릭터 구축도 만점, 서술하고 있는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고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전체적인 어조 또한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끝까지 읽는데 재미도 놓치지 않고 붙잡을 수 있었다.


서두부터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요코하마항 다이코쿠 부두 T-9 계류장에 정박한 ‘이스턴리프’호. 그 배에 실린 불온한 것들. 그리고 검은 머리 백인 남자의 무차별 학살. 그 학살에는 거대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예측할 수 없어 더 심장 뛰고 궁금했다. 일본 특수부 경찰들의 추적 끝에 요코하마 사건의 끝에 누가 있는지 알게 됐을 때 의아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싶은 의문. 그리고 일본 특수부 외인 경찰 중 한 명인 라이저 라드너 경부의 충격적인 과거가 드러난다. 의아했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사건은 점점 흥미로워지고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아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굵직한 인물들이 작품 전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특히 라이저를 중심인물로 세운 저자의 의도에 감탄할 정도였다. 스릴 넘치고 긴박한 작품을 원하고 있다면 당장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이다. <기룡경찰>이 궁금해서 못 견디겠다.


<자폭조항>은 황금가지의 새로운 레이블인 LL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제33회 일본 SF 대상 수상작이라는 엄청난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왜 그렇게 대단한지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올해 첫 시작으로 아주 좋은 작품이었다.




*황금가지(민음사)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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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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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닿을 때까지 끝은 없다


안드레아스 그루버. 저자의 이름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외국 소설에는 흥미를 갖지 못 했기 때문에! 허나, 피터 스완슨과 T. M. 로건의 작품을 읽으면서 외국 미스터리 소설도 취향에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독일 작가이다.


물 흐르듯 유연한 가독성과 전개 호흡이 빠른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어떤 독자들은 밤을 새워 봤을 정도라지만 체력이 저질이라 밤을 새서 읽진 못 했고, 앉은 자리에서 100쪽 이상 단숨에 읽긴 했다. 저자의 치밀하고 덤덤한 서술에 마음이 더 끌렸던 것 같다. 이런 문체 대단히 사랑하고 좋아한다.


저자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가 출간한 작품들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워낙 책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인상적이라. <새까만 머리의 금발 소년>, <지옥이 새겨진 소녀>, <죽음을 사랑한 소년>. <죽음의 론도>가 나오기 전작들로,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라 불린다. 이 작품은 그 시리즈의 최신판인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시리즈가 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에 오, 하고 감탄했다.


작품의 시작은 긴박했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아우디 주인인 남자의 죽음. 이어 철로 위에 차를 세워 죽은 여자, 만찬석상에서 잠시 나와 담배를 태우던 여자의 죽음 그리고 욕실에서 제 턱을 향해 총구를 겨눈 남자까지. 자비네 네메즈가 쫓는 사건들, 거기엔 공통된 점이 있었다. 연달아 죽은 사람들이 연방 범죄수사국의 수사관들이었다는 것! 그들은 어째서 죽어야 했고, 6월 1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비네는 그들의 죽음에 마르틴 S. 슈나이더가 연관되어 있다 확신하고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을 수 있던 말은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였는데. 사건 조사를 하던 자비네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고, 슈나이더가 나서게 된다. 자비네와 슈나이더 콤비도 볼 만했지만(현실적이면서 냉소적인 분위기랄까) 자비네와 티나 콤비 보는 재미도 좋았던 것 같다. 티나는 외적으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인데 비해 자비네는 단정하고 딱 봐도 수사관 같았기 때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호흡이 지켜보는 재미를 더했다.​


분량이 굉장했던 것에 비해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눈이 한 번 닿으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6월 1일의 정체를 알고 싶어 읽어 나갔고, 진실에 닿았을 땐 씁쓸하면서 후련했던 것 같다. 끝을 본 것 같아서! 자비네가 조사하던 사건과 하디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모든 사건이 해갈될 때 비로소 답답한 마음이 확 풀렸던 것 같다.


전작을 읽지 못해 비교해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로맨스를 읽을 때와는 다른 맛이 있다. 역시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볼 때 더 활력이 생김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에 닿을 때까지 끝은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독특하고 이해하기 힘든 슈나이더지만 그가 들려 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의 모습도 멋있지만 사건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파헤치는 모습 또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음 이야기도 빠른 시일 안에 나와 주면 좋겠다. 역시 로맨스보단 미스터리 스릴러가 더 취향인지도.


시리즈를 기다렸던 독자들에겐 아주 좋은 선물이 될 이번 작품. 역시나 책표지가 인상적이라 한 번 더 시선을 끌 것 같다. 색다른 수사관들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분들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면 후회 없을 거라 말해 주고 싶다. 일단 읽으시길. 끝까지 읽지 않고는 자꾸 생각날 테니까.




*북로드에서 가제본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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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도주
조인영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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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밥보다 누군가가 커진다는 거


조인영 작가님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에 글을 올리던 카페에 <야반도주>가 연재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었고, 그 당시 전자책 출간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봄에서 종이책으로 <야반도주>가 출간된 걸 알고 누구보다 먼저 읽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도 크고 무엇보다 설렜다. 아주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을 숨 쉬는 것도 잊고 읽은 것 같다. 꼭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고 싶었다. 첫 시작부터 아리고 시렸다. 끝 또한 그럴 것 같은 예감에 실은 내내 슬픈 눈으로 지켜봤던 것 같다.


책 표지가 왜 그렇게 아름답고 오묘하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는지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알게 됐다. 아름다운 나방. 어둠이 되기로 한 빛. 강유경과 한태주.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겪기 어려운 아픔을 갖고 사랑을 하게 됐다. 사랑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걸까.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절감한 것도 같다.


유경은 ‘아트라’ 미술관 장학생으로 관장의 집에 거주하며 미술관 일도 했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돌보고, 아트라에서는 큐레이터로 일했다. 유경에겐 공식적인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는 아트라 한 관장의 아들, 한선우였다. 유경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 한태주 아니던가.


초반부터 재회물이겠구나, 약간은 폐쇄적이고 어두운 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표지부터 그런 느낌이 강했으니까. 짐작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글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통 로맨스 한 편 제대로 본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만족감이다. 이런 글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벅찼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 애한테 사랑을 말하던 그때라고. -61쪽


유경은 태주를 잊지 못 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떼를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픔 때문에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만이 그녀가 지옥을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렇게 느꼈다. 한태주가 없었다면 아마 강유경은 진작 죽어 버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삶은 버겁고 숨 막혔다. 그래서 태주에게 이별을 고했고, 태주도 유경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다 보이는 거짓말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다 아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지 다 아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고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 태주에게는 예외였다. 태주는 유경이 신고 있는 스타킹, 양말,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벗겨 주곤 했었다. 태주가 아무렇지 않으니까, 유경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받는 기분이었다. -74쪽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태주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게 전부인 듯 살아가는 유경은 지켜보는 내내 유약하고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밥보다 강유경,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어린 날이 떠올라 귀밑이 시큰거렸다. -97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짙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 또한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 같던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만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고 애틋한지 알겠기에.


강유경, 한태주, 오수희, 손하정 이들 전부 그랬다. 그런데 특히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한선우. 그렇게 아플 수 없다. 이 남자의 사랑법은 왜 그렇게나 지독했어야 하는 걸까.


이상하게도 늘, 그 애가 보고 싶었다. -266쪽


늘 보고 싶은 거. 어디에도 그 사람 흔적이 묻어 있다는 거. 그거 참 견딜 수 없이 미칠 거 같은 건데 그는 꼭 그렇게 아프게 사랑했어야 했던 걸까. 참 많이 아팠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었다. 이 사람처럼 사랑했다가는 아파서 살 수 없을 듯...


읽는 족족 마음을 파고드는 글이라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머무를 것 같다. 여운 긴 것도 마음에 들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그렇게 깊고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진짜 사랑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19금 씬이 이토록 간절하고 진솔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역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로!


<야반도주>를 읽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참 좋은 글이었다. 꺼졌던 로맨스라는 장르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재회물, 퇴폐물, 피폐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얼른 보시길. 두 번 보시길.


끝으로 인쇄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혹 2쇄를 하게 된다면 수정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244쪽은 전체가 여백이라 쪽수가 필요 없는데 쪽수가 들어가 있다. 증쇄하게 된다면 해당 쪽수는 제거해도 되겠다. 하나 더, 259쪽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웃어 대기 바빴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 대기 바빴다. 가 맞는 것 같다. 출간 일정이 빡빡했던 걸까. 조금은 완성도 높은 증쇄를 기대해 본다. 봄에서 저자의 <중독>도 종이책으로 꼭 출간되길 바라 본다.




*봄미디어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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