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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미숙 ㅣ 창비만화도서관 2
정원 지음 / 창비 / 2019년 2월
평점 :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미숙은 어릴 땐 언니 정숙에게 의지했다. 살가운 언니는 점점 변해 갔다. 아빠의 비뚤어진 표현 방식이 언니를 차갑게 만들었다. 부모님의 다툼이 언니 정숙을 참는 아이로 만들었다. 정숙의 허벅지는 나날이 멍투성이가 되어 갔고, 미숙 또한 멍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숙의 희망이 절망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미숙은 많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은 꼭 했다. 의지하던 언니를 잃고, 미숙은 전학 온 재이에게 의지했다. 미숙은 재이와 함께 할수록 자기 동네가 작아진다고 했다. 자기 집 대문도 작아지고, 언니도 작아지고. 그럴수록 아버지는 미워지고 언니는 야속해진다고. 그만큼 미숙은 재이를 좋아했고 빈 부분을 그 아이로 채우려 했다. 사람은 누군가의 부재가 느껴지면 그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작은 호의를 갖고 다가오면 그 빈 자리를 금방 내어 주곤 한다. 뭔가의 부재가 있는 사람은 그래서 연약하고 위태롭다. 미숙이 그래 보였다.
두 사람은 진정한 우정을 나눴던 걸까. 여느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동네로 놀러 가고, 영화도 같이 보고, 팝콘도 같이 먹고, 전철도 타 보고, 도시락 반찬도 먹어 보고. 얼핏 그런 것 같았다. 보통의 친구처럼 지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재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재이는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다. 미숙의 아버지는 어디서 강아지를 한 마리 얻어 왔다. 처음엔 갖은 관심을 다 보이다가 본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자 거들떠도 안 봤다.
“…아껴 줄 거면 끝까지 아껴 주지….”
아마 이 한 마디가 미숙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고 생각한다. 정숙은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못 했다. 본인 아픔 챙기기도 바빠서. 재이도 미숙을 끝까지 아껴 주지 않았다. 본인을 위해 미숙을 이용했을 뿐.
미숙은 그렇게 덜 자란 아이처럼 어른이 된다. 그러다 평범한 일을 하게 되고,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누군가의 부재를 또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미숙은 ‘올해의 미숙’으로 살아간다. 지나간 날들이 마치 미래의 언제인 듯 느껴지는 지금을 살아간다.
작품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말해 주지는 않는다. 약간은 불친절하다. 어쩌면 이해가 안 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공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곱씹다 보면 몰랐던 맛이 느껴지듯 알 수 없었던 의미가 서서히 스며들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는 절대 접근하면 안 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감히 추천할 수가 없다. 읽고 나서 개운한 마음보다는 미묘한 마음이 크다. 분명하기보단 불분명하고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이보다 더 사실적일 수는 없다. 두세 번 곱씹듯 읽어 보길 바란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이라면 그래야 한다.
*창비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