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지막 첫사랑
김빵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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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봐, 명원아.│80

양우는 늘 단정한 머리에 맑고 산뜻한 느낌이 드는 착장을 하고 있었다.│81

“나는 미래에서 왔어.”│103

‘찰싹, 찰싹. 바다의 파도는 이런 소리를 내. 솨아아, 하고 밀려와서 하얗게 부서져. 포말을 만들지. 그렇게 사라진 파도는 흘러서 다시 파도가 되어 밀려와. 바다가 있는 한 사라지지 않지. 해안에 가 보는 게 버킷리스트라며. 물비늘이 이는 바다를 네가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122-123

“해당 연도의 경험 데이터를 수집해서 구축률을 99.9%까지 확보하면 인격형 인공지능 스피커의 복구가 가능합니다.”│124

‘1126611’│186

가을이라는 계절이 불어오는 바람이나 맡아지는 냄새, 느껴지는 공기로 기억되지 않고 저 웃음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211

‘사랑’이라는 글자를 잘못 써서가 아니라 더 잘 쓰고 싶어서 수정액을 사용했을 것 같은 명원.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날 것 같은 명원의 세계.│227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다정했다.│239

반짝하고 나타난 사랑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또다시 울음이 터졌다.│250

온 우주가 알았으면 좋겠어. 네가 내 첫사랑이라는 걸.│256

먼 미래에서 너무 뒤늦게 너를 좋아하고 있겠지만, 언젠가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세계를 꿈꾸며 너를 기다릴게. 내 21세기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안녕.│262

#21세기마지막첫사랑 #김빵 #자이언트북스

어쩌다 우연히, 영원히 새겨진 사랑.

미래에서 온 남자 중에 가장 애정하는 마미야 치아키를 떠오르게 한 나양우. 이 작품은 《시간을 달리는 소녀》보다 더 그윽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낸다. 전자가 청량한 여름 대낮의 하늘을 올려다보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석양이 부서지는 여름 오후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둘 다 눈부시고 뜨겁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우 쪽이 좀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바다를 잃은 양우는 2107년에서 2004년으로 21세기 시간 여행을 온 미래인이다. 버려진 자전거를 주워 탄 죄로 명원에게 미운 털 콕 박힌 조금 딱한 미래 소년. 우연인지 운명인지 자꾸만 마주치는 두 사람. 알고 보니 양우에겐 시간 여행 온 목적이 있고, 목적 달성을 위한 양우의 부탁으로 여러 경험을 하게 되는 명원. 스며들듯 서로가 서로에게 일상이 된다. 가장 무서운 일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일상이 된다는 건.

교복, 시디플레이어, 카세트테이프, 떡볶이, 러브장, 캔모아, 삐삐, 밴드 동아리. 추억 소환의 매개체가 여럿 등장해 그리우면서도 반가웠다.

이번 해 읽은 책 중 단연 랭킹 1위 아닐까 싶다(현재 기준). 남녀 간 사랑이나 애정을 다룬 글을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다시 좋아질 것 같다. 이런 유의 담백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라면.

未来で待ってる
미래에서 기다릴게

치아키가 마코토에게 남긴 말이 생각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만남을 기다리는 그들(양우도 기다린다 한다, 마음의 목소리로). 이런 순애보 넘치는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양우와 명원이 행복하길 바란다.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다시 닿기를 바란다.

시작부터 엔딩까지 마음에 쏘옥 들어와 버린 이 작품, 아는 사람에게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이미 두 명에게 영업). 오랜만에 책 읽다 울었다.

+기명원 역에 이재인 배우님, 나양우 역에 우도환 배우님 넘나 찰떡ᯓᡣ𐭩 괴몰입돼서 더 좋았던 작품.ᐟ 영상화 시급합니다.ᐟ.ᐟ
++시디플레이어 갖고 싶다. ILWOO 투명 시디플레이어 너무 예쁘고 너무 힙하고 너무 키치해ヅ 명원처럼 교복 입었을 때 못 써 본 시디플레이어⸝⸝ʚ̴̶̷̆ ̯ʚ̴̶̷̆⸝⸝ 어른이 된 지금이라도 써 보고 싶다. 생일 선물로 받으면 어쩐지 더 특별할 것 같은 기분♥ ັ
+++mew-conforting sounds 들으니 양우와 명원이 함께 보던 바다가 생각난다.

*자이언트북스(@giantbooks_official)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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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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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만약’이란 시간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듯이.│18-19

“억지로 지우려 하다가는 더 큰 얼룩만 남게 되는 경우가 있죠. 해변의 자갈이 파도와 바람에 마모되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잘게 부서져 모래가 될 뿐이죠.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추억이든 아픈 상처든 빛이 바랠 뿐입니다.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죠.”│126

“너무 가까이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죠. 한 발 떨어져야 비로소 보이고,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보아야 또렷이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137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지.”│208

#셰이커 #이희영 #래빗홀

한 번 마음에 들인 존재는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이의 부재는 여러 형태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불안한 그늘로, 차가운 여백으로 흘러들어 괜찮다며 지내온 나날에 균열을 낸다. 잔잔하게 흐르던 일상 위에 부재의 존재가 불거지면 남겨진 이들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만다.

나우와 하제, 성진, 한민은 이내라는 존재를 잃고 서른두 살을 살아가는 중이다. 나우는 이내와 형제처럼 자란 친구사이. 두 사람 사이에 하제가 있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이 되어 이내와 하제는 연인이 된다. 친구의 여자를 마음에 품게 된 나우. 청혼을 준비하던 즈음 검은 고양이를 따라 낯선 바에 들어선다. 묘한 분위기의 바텐더가 만들어 준 칵테일을 마시고 잠들었다 깨어나니 열다섯 살의 시간으로 돌아간 나우. 이내가 살아 있는 시간으로 돌아간 나우는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홀로 악전분투한다.

기존 타임슬립 작품과는 다르게 어떤 존재가 만들어낸 시간 속으로 이동하는 점이 특이하다. 무알코올 칵테일을 마시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기억이 현실이 되는 점도 신비롭다. 현실이 된 과거의 시간을 과거와는 다르게 바꾸려는 시간 여행자. 선택의 기로 끝에 숨겨진 반전이 가장 마음에 든다.

과거를 바꾸면 이전과는 달라진 현재에 만족하며 살게 될까. 인간이 바라는 만족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를 바라면 열을 바라는 게 인간 아닌가. ‘if’는 가장 많이 생각하지만 가장 허망하고 부질없는 단어 아닐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right now’가 가장 필요한 것 아닐까. 인간은 흔들리며 단단해진다. 수많은 if에 흔들려도 다시 right now 할 수 있는 것도 다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나우가 그러했듯이.

현재에 충실하고, 소중한 이를 더 소중히 아끼고 싶은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마지막 즈음에 다들 입틀막 할지 궁금하다.

+스물아홉이 아닌 열아홉에 그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열아홉의 그이는 어땠을까. 만나 보고 싶다(그때 만났으면 그때도 서서히 스며들듯 반했으려나).
++이희영 작가님 전작 다 읽어 보고 싶다. 《소금 아이》 진짜 재미있게 읽었는데 기록하지 않았더니 기억에서 희미해짐⸝⸝ʚ̴̶̷̆ ̯ʚ̴̶̷̆⸝⸝ 기록에 더 충실하자.ᐟ

*래빗홀(@rabbithole_book)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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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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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의심하다니,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연인이여!

그대에게 아낌없이 바친

사랑 중 일부만 신께 바쳤어도 -

신이 만족했을 텐데요 -

영원히, 내 전부를 드렸는데 -

여인이 더 이상 무엇을 드릴 수 있을지,

얼른 말해 주세요. 그대에게

마지막 기쁨까지 다 바쳐도 된다고 해 주세요!

이건 내 영혼일 수 없어요 -

예전에 그대의 것이었으니까 -

나 그대에게 모두 바쳤어요 -

초라한 처녀인 내가

무슨 재산이 더 있었겠으며,

그대와 조용히 사는 것뿐이었어요!│56쪽

우리는 사랑이 끝나면 다른 물건들처럼,

서랍 속에 보관한다 -

결국 조상의 옷처럼

사랑도 골동품이 된다 -│188쪽

사랑은 - 태어나기 전 -

죽은 다음에 - 오는 것 -

창조의 순간,

숨결 속에 있던 것 -│191쪽

#에밀리디킨슨시선집 #에밀리디킨슨 #을유문화사

고등학생 때 문학이라는 과목(특히 소설)을 너무나 좋아했다. 문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는 일 자체에 존경심이 끓어 담당 선생님도 좋은 마음으로 따랐다. 시험기간에 돌입해 수행평가로 ‘시 짓기’를 하게 됐다. 모방해도 좋으니 기존 시를 참고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쓰지 못했다. 운문은 산문과 다르게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영 어렵기만 했다. 마감일에 겨우 기존 시 하나를 베끼다시피(단어 몇 개만 바꿔서) 적어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후, 생각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문학 선생님은 가장 좋은 시를 제출한 학생을 호명해 읽게 했다. 나와 시선이 얽힌 후, 웃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기존 시 단어만 몇 개 바꾼 친구도 있어서 읽는데 몹시 불쾌했어요…” 여선생님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그 후, 시를 멀리했다. 시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랑하는 세계에 거부당한 느낌이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시를 읽는 일은 없었다. 어쩌다 놀러 간 서울 지하철역에 붙은 시를 봐도 읽지 않았다. 그러다 시간이 더 흘러 사랑하는 이를 만났고, 느낀 감정을 운문 형태를 빌려 조심스럽게 적어 봤다. 시를 향한 거부감이 서서히 옅어져 갔다. 지금도 많은 시도 중이다. 시를 읽고, 운문 형태의 글을 쓰기도 하고. 이렇게 제대로 된 시집을 읽는 건 두 번째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시집을 읽고, 시는 어렵기만 한 게 아니구나, 많지 않은 글자로 가슴을 울릴 수도 있구나, 시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녹아내리기도 했다(「내가 너를」이란 시를 가장 사랑한다).

그 뒤로, 먼 타지에 시간 속에 존재하던 시를 만났다. 관습을 벗어난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을 사용해 아주 독창적인 사고를 표현하는 시를. 단절의 여러 측면을 다루고 있어 특별하면서도 어렵게 다가왔다(아직은 시를 잘 몰라서). 정해진 시각을 초월해 쓰여진 시라 그런지 이해에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독특하고 특별한 시를 쓴 시인이 있었다. 그는 묘비에 새긴 문자처럼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몇 번이고 ‘다시 소환되’고 있다. 150여 년 전, 외부와 차단된 채(30년 동안 병간호한 어머니가 돌아가셔 장례식을 치르는데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창밖으로 지켜봤다고) 가장 생명력 있게 집필한 시인, 에밀리 디킨슨. 사후, 여동생 라비니아가 발견한 1800여 편의 시가 토머스 H. 존슨에 의해 원문과 가장 흡사한 형태로 출간된다. 1955년에 출간된 시 전집을 토대로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이 만들어진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게 된다. 몇 세기를 뛰어넘은 지금,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어느 때고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이나 시는 고상한 사람들이 읽는 거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에게 유의미한 손길로 권하고 싶다. 어려워도 한 번 읽기에 도전해 보시라고.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착각이 인다. 어떤 시를 읽든 그의 목소리가 함께 온다.

♥사진 촬영에 협조해 주신 내 사랑 빛과 님, 고마워요◡̎

*을유문화사(@eulyoo)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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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행성서비스센터, 정상 영업합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4
곽재식 지음 / 네오픽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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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연히 꿈꾸면서 마법처럼 좋다고 생각한 일도 막상 실제로 현실이 되고 보면 이것저것 골치 아픈 문제가 가득할 때가 많거든. 원래 세상일이 다 그래요.│53


‘돈을 번다는 것은, 남이 하기 싫은 일을 내가 하고 그 때문에 돈을 받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아. 무슨 스타트업 회사라고 하면서 남들 보기에 폼나는 일, 일하는 동안 다들 재미있고 즐겁기만 한 일, 그런 멋있는 일만 하면 돈은 어디서 어떻게 떨어지는 건데.│77

은하계라는 게 한 수십조, 수백조 개는 있거든요. 저희는 그 중에 은하수라고 부르는 은하계에서 왔고요. 은하수에 있는 별 중에 태양이라는 곳이 있는 태양계에서 왔어요.│83

별이 빛나고 해가 뜨고 지고 계절이 바뀌고 그에 맞춰서 생명체가 태어나고 죽고, 이런 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하필 이렇게 생긴 세상에 태어나서 짧은 삶을 살다가 사라지는 것인지, 슬프고 기쁘고 화내고 두려워하는 시간 속에서 소중히 여기고 아끼던 것들도 언젠가 다 허무하게 흩어져버리는 이 우주에서 우리는 왜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들이 저희는 너무나 궁금했습니다.│84

원래 기술이 발전하면서 엄청 무서운 것 같은 일도 점점 안 무서워지는 거야.│143

#은하행성서비스센터정상영업합니다 #곽재식 #네오픽션

우주적 시점에서 보면 우리는 우주먼지만큼 조그맣고 귀여운 존재일 것이다(조구만 스튜디오의 #우리는조구만존재야 생각난다. 귀여운 브라키오🦕). 작품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에는 여러 은하가 존재하고 그 중 한 곳에 아마 미영과 양식이 있을 테다. 우리도 있고.

별이 있는 곳엔 행성이 형성되고, 행성이 존재하면 가끔(드물지만 반드시) 생명체가 생겨난다. 생명체는 진화를 거듭해 인생사 세상사에 대해 고민하는 종족으로 발전한다. 정말 그럴까. 이미영 사장의 말처럼 공동인(목동자리 공동에 사는 우주인이랄까)은 그렇게 존재하게 된 걸까. 허구인 줄 알면서도 사실처럼 믿게 된다. 본격 SF 장르는 초면이라 대단히 기묘하고 알쏭달쏭하다(다른 작품 읽은 적 없어서 비교 불가). 태어나 처음 마주하는 사람과 환경은 생경 그 자체. 평범하지 않은 낯선 은하 속에서 현대 사회문제 비판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유일하게 김양식 이사만이 이성 있는 인간이다(김미영 사장은 도전적이며 모험적이고 약간 이상한데 초긍정형 인간).

이 책은 열두 행성 방문 서비스를 기록한 일지 비슷하다(읽어 본 바). 미영과 양식이 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목적과는 너무 안 맞는 일만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생존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는 미영의 모습에서 현대인의 노고가 역력히 보인다. 투덜거리면서도 미영을 따르는 양식의 고충은 일개미라면 누구나 공감할 모습. 우주인도 밥벌이에 똑같이 고통받고 있구나 싶어서 묘한 동질감이 인다.

SF 입문용으로 적절하다. 다작하는 작가라니 앞으로 새로 쓸 작품이 기다려진다. 미영과 양식 시리즈인 《ㅁㅇㅇㅅ :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도 꼭 읽고 싶다. 오랜만에 새벽까지 몰두하게 만든 책이다.

*자음과모음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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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서 - 외롭지 않은 혼자였거나 함께여도 외로웠던 순간들의 기록
장마음 지음, 원예진 사진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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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서 좋은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65


행복은 금방 지나가고 또 잊어버리기 쉬워 애써 찾아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새 유통기한이 훌쩍 지나버린 냉장고 속 우유처럼 상해버린다.│102


준비한 것들이 다 동나면 급기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사실은 나도 필요했던 것들까지 주어야 했다. 나는 시간을 주었고 감정을 주었고 집중을 주었다. 주도권을 주었고 관심을 주었고 얼마 갖고 있지 않은 자긍심을 주었다.│126


그러니까, 밥 같은 거다. 너무 많이 먹어도 탈이 나고, 그렇다고 아예 안 먹으면 굶어 죽는 일. 적당히 맛있게, 골고루 먹어야 한다.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에게 사랑이랄지 관심이랄지 하는 것들은 밥만큼이나 중요한 걸지도 모른다.│167


누구나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산다.│196


오늘은 어제가 될 수 있지만 어제는 오늘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지나간 것들보다는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230


#혼자이고싶지만외로운건싫어서 #장마음 #스튜디오오드리


사람이라는 동물은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이런 모순이 다 있나 싶을 만큼 이상하고, 그래서 아름답기도 하다. 혼자여도 좋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뉘앙스의 이 책 제목처럼.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종족인 사람에게 가장 많이 상처받고, 가장 많은 치유를 얻는다. 사람이 싫어 떠났는데 결국 다시 사람 곁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사람을 등급 매겨 사귀던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물론 그 실상은 나중에야 알게 됐고), 누구에게나 베풀던 허물없는 호의에 마음 주기도 하고(같은 마음일 거라 지레짐작했고), 때론 마음 줄 사람 없어 매일 같이 보던 이를 좋아하는 감정이라 되뇌며(아무라도 좋으니 좋아하는 감정에 빠져 눈앞의 외로움을 해갈하려) 헛헛한 마음 어딘가를 채우려고 했다. 그럴수록 어긋나고, 허기지고, 공허했다. 좋은 건 순간이고, 빈 느낌은 길게 남아 마음에 쌓여 갔다. 자신의 행복을 다른 이를 통해 얻으려 하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고 혼자인 시간이 마냥 즐겁고 좋기만 했던 건 아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책을 가까이하고, 가고 싶던 곳에 머물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 행복한 순간은 어쩐지 허전함을 느끼게 했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고 원하게 된다. 사람 곁이 힘들어도 사람 곁으로 돌아온다. 혼자의 충만을 느껴본 사람은 함께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소회는 그렇다.


저자는 누군가 지나온 새파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예쁘기만 한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똑같이 아프기도 한 새파란 시절을. 이 책의 글이 이렇게까지 어두울 줄은 프롤로그 읽을 땐 미처 알지 못했다. 밝고 소소한 분위기나 어둡지만 피식할 만한 포인트가 있는 글을 좋아하는데 이번 글은 읽을수록 어째서인지 마음이 축축 처지고 글자가 마음 주변에서 겉돌았다(글의 톤이 한 톤이었다면 몰입하기 더 좋았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말하듯 반말로 묻는 구어체나 갑자기 존댓말로 화자에게 말하는 몇몇 부분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과거의 한 부분을 들여다본 듯해 반갑긴 하다. 나도 그랬지, 그런 마음이었지 싶다가도 그 감정에만 머물라고 끌어당기는 것 같아 도망치고 싶었다. 마음이 힘들 때는 손을 뻗기가 망설여질 것 같다. 읽는 내내 가쿠타 미쓰요의 《어떻게 사랑한다고 말해》를 읽고 싶었다.


*스튜디오오드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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