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오늘 살아서 시계를 보고 집을 나선다.
어제처럼 네가 없는 시간 속으로 혼자 간다.
네가 없다. 같이 있었는데 같이 있었는데
아 정말 같이 있었는데 네가 없다.
거기 그 자리 네가 앉아 있었는데
네가 없다(네가 앉았던 자리, 323-4)
이 책에는 딸의 죽음이 있다. '거기 그 자리 네가 앉아 있었는데 네가 없다' 나도 그랬다.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슬픔은 내게 달려와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은 눈물로 수 없이 씻어낸 후에야 겨우 견딜만해지곤 했다.
이 책에는 죽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희망과 기쁨이 있다. 죽음 뒤에 이어지는 생명력을 잃은 회한이 아닌, 죽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살아있는 기적. 저녁노을이 찬란한 아침노을로 바뀌는 기적이 있다. 저자는 죽음의 의미를 저녁노을에서 찾는다.
"그래, 당연히 서쪽에서 지는 저녁노을은 내일 아침 불타는 동쪽의 새벽노을이 되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침몰하는 슬픔을 희망과 기쁨으로 재생하고 부활하는 힘이 있어야 하지. 나는 너의 죽음을 통해서 노을의 그러한 힘을 믿게 된 거야."(277)
"이 말을 꼭 들려주고 싶어.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의 노을을 아침의 노을로 바꾸어버리는 재생과 부활의 힘을 믿는 것이라고. 남들이 다 놀리더라도, 나는 그 힘이 네가 말하는 믿음의 힘이고 희망이고 빛이라고 생각해"(279)
이 책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 담겨있다. 딸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
"나는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랑이 스토르게, 가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어쨌든 내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그 길목의, 마일스톤 중의 하나가 가족이었다는 것,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244)
"그렇게 너를 보내고 나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금 깨달았어. 여전히 네가 떠나 자리는 따끔거리지만, 내가 너를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계실 거라고 믿는다. 어느 깊은 밤에 눈을 떳을 때,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응답이 올 거야. "나둥' 하고 말이지"(237)
그리고 이 책에는 어쩔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이 있다. '제2부의 혼자 울게 하소서'에는 남겨진 자에게 허락된 슬픔의 노래들이 담겨있다. 사람이 천상의 진리를 깨닫는다해도 어쩔 수 없는 슬픔 말이다. 그 누구도 함께 해줄 수 없는 슬픔을 오롯이 혼자서 노래한다. 책 구석구석 그 눈물 자욱이 보이는 듯 했다. 눈물로 얼룩진 책장을 넘기며 나는 대답했다. '나도 그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