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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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도서관에 들렀다 손에 들게된 작품.

고전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읽겠다는 최근의 각오에 충실히 선택한 작품입니다. 프랑의 대표적인 지성이라는 에밀졸라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어, 그냥 한번 읽어 볼까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죠

한 100페이지 쯤 읽었을 때, 묘한 기시감이 들더군요. 이걸 전에 읽었었나? 아닌데... 근데 왜 내용이 본 책인 것 같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 어 이건 '박쥐' 자너...
바로 인터넷 검색, 그리고 머리를 때리는 두 단어 "based on" 테레즈 라캥.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테레즈 라캥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졌다는 내용이 엔딩 크레딧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문학의 모방이다' 이 비슷한 말을 영화 평론가 정성일 씨가 했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박찬욱은 영감을 얻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테레즈 라캥'의 기본 스토리에 박찬욱의 상상력을 더했다'라고 말하는 게 맞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을 모방하는 '시뮬라르크'인 문학 작품, 그 '시뮬라르크'의 시뮬라르크인 영화

어째든 '테레즈 라캥'이 얼마나 위대한 문학 작품인지는 영화 박쥐의 이야기가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억척스러운 어머니 라캥 부인(영화에서는 라여사), 아들 카미유(영화의 강우), 테레즈(영화의 태주), 로랑의 4명으로 구성됩니다. 박쥐 영화를 보신 분들은 뱀파이어 스토리만 빼면 소설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카미유는 예전 친구 로랑을 우연히 만나 집에서 이뤄지는 '목요모임'에 데려오고 로랑은 그의 부인 테레즈와 외도를 하고, 외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살인을 하고 살인 이후의 심리적 전개에 대한 졸라의 치밀한 묘사... 이런 소설을 20대에 쓰다니, 위대할 지어다 졸라여!!!

이 소설에서 두 가지 묘사에서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시체에 대한 세밀한 묘사.
졸라는 로랑이 살인 후에 카미유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체 공치소'를 방문하는 장면을 길게 묘사합니다. 첫번째 놀라움의 감탄사가 튀어 나오는 장면입니다.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그리기 위해 몇달 동안 화실에 실제로 시체를 가져다 놓고 뎃생을 했었다고 하는데, 졸라는 이 장면을 위해 아마도 수백번은 당시의 시체 공치소를 방문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담담하게 시체의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박찬욱의 뱀파이어는 어쩌면 이 장면에서 탄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번째로 놀란 장면은 로랑과 테레즈의 심리가 무너지는 과정에 대한 묘사입니다.
당당하던 로랑은 카미유가 유령으로 자신의 방에 존재한다는 히스테리에 시달리게됩니다. 그리고 죄책감, 자괴감, 스스로에 대한 저주, 자신을 이렇게 만든 테레즈에 대한 저주(로랑 입장에서는 테레즈가 팜므파탈로 느껴지게 되는 거죠)의 과정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완전히 망가지게 됩니다. 테레즈 또한 마찮가지죠. 자신의 몸둥아리를 진창에 내 던지며 현실을 잊어보려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처방일 뿐 영원히 이 저주스러운 생활에서 벗어 날 수 없다고 느끼게 되죠.. 서로를 마지막으로 독살하는 장면에서는 이들이 택할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은 매우 연극적인 엔딩인데요, 전 개인적으로 이러한 연극적인 엔딩을 좋아합니다.

반면 뇌졸증으로 인해 거의 식물인간이 되어 죽어가던 라캥 부인이 아들의 죽은 이유를 알게되고 내적으로 겪게되는 분노를 졸라는 또한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라캥 부인은 로랑과 테레즈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죠. 아주 통쾌한 복수의 쾌감을 느끼면서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이들의 죽음의 순간을 단 1초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켜보면서 이 소설은 끝납니다.

구성, 심리묘사,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 인간 의식의 분석... 졸라는 이런 인류사에 남을 작품을 
겨우 28세에 썼습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죠... 뭐라할까요... 테레즈 라캥을 읽고 난 느낌은 또 한명의 천재를 경험한 느낌?

대단한 작품입니다.

현대에 보기에도 충격적인 이 작품은 집필 당시에도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었나 봅니다. 졸라가 직접 작품에 대한 변명을 서론에 장문으로 붙여 놓았으니까요. 오죽했을까요... 영화 박쥐를 보면서 낯설음에 움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영화를 보았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테레즈 라캥'에 대한 낯설음과 거부감과 놀라움이 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느낌이었을지... 영화 박쥐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대단한 문학 작품을 읽는 다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행운일 것입니다. 하나의 행운은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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