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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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님의 이 수필의 마지막 장을 넘긴 주말, 공교롭게 뉴스에서 그녀의 부음을 듣게되었다. 암투병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노작가의 죽음은 더욱 낯설고 갑작스러웠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의 유서를 뜻하지 않게 읽어버린 느낌...
(하지만 이 에세이가 그녀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마지막 작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도스토예프스키가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편을 정렬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듯이 그녀의 머리 속에는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이 들어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일정 부분은 원고가 진행되었거나 탈고가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세상에 남겨진(아직까지) 이 마지막 원고에서 글 형식의 특징이 그렇듯, 하나의 주제가 아닌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조명하고 몇가지 인상적인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생활하면서 느낀점들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주변의 일상을 자신만의 화폭에 그려넣는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늘 이렇게 활자에 목매고 있고, 모든 일상이 온통 활자와 연계되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안에 그려진 풍경 중, 유난히 내 삶과 가까운 이야기들이 많았기에 즐겨 읽지 않는 에세이 한권에 유난히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올림픽공원, 아차산, 두물머리, 남한산성... 노작가와 같은 풍경을 자주 보았고, 많은 인생의 이벤트가 이 곳들과 연계되어 있어서 이 풍경들에 대한 정서적 공감대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남한산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작가 김훈의 이야기는 세대를 넘어 이 분과 매우 가까운 정서적 동질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김훈의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작처럼 내 살갗을 저미는 같았다"

(그랬다. 김훈의 그 인정머리 없는 문장들 때문에 몇 번이고 소리를 참으며 꺼이꺼이 울었었다...)


책장을 덮고 나자 '한 세대가 넘게 차이나는 이 분의 정서를 참 많이 이해하게 되네'라는 생각이 미치자 이웃에 살고 계신 그동안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신 집안의 높은 어른 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고향이 이북이신 이 분의 가정사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 집안의 정서와 공명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한세대 넘게 연륜에서 차이 나는 노작가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었는지도...

박완서님은 그렇게 가셨다... 막 알게된 참 좋은 어른이 너무도 큰 아쉬움을 남겨 두고 가버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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