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예술가의 삶은 극적이고 극단적이다!

만일 예술가의 삶을 이렇게 규정한다면 여기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특히 작가라는 범주로 한정 지으면 몇명이나 언급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꽤 많을 것 같다.
평범한 소재나 주제로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 반향을 일으킨 작품들은 대부분이 그 소재나 주제에서 범상치 않음이 분명함에야 작가의 삶이 어찌 평범할 수 있을까?
특히 평범하지 않은 일을 겪고 글로서 풀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작가들임에 위의 명제는 그리 크게 틀려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전체가 아님에 참이 성립은 하지 못하겠지만...

로맹가리 = 에밀 아자르. 대단하다.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야유로서 그 만큼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맛 본 작가가 또 있을까 생각될만큼 로맹가리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작품에 악평을 해 대던 평론가가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판한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처음에는 카타르시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로 비참한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이 따구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쓰레기통 같은 평론계의 평가를 신경쓰며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 시간이 처철하게 비참하고 참혹스럽게 느껴졌을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에밀아자르의 이름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 작품에는 세상에 대한 조소와 야유로 가득하다. 세상을 너머 조물주에 대한 조롱마저 느껴진다. 이런 느낌 때문에 그는 신을 믿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맹가리가 죽고 난 후 에밀아자르와 그가 동일인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로맹가리에는 가혹한 혹평을 에밀 아자르에게는 찬사를 보냈던 평론가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궁금해 죽겠다. 특히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를 표절한다'고 까지 얘기했던 평론가의 기분은?

세상을 조롱하는 기분.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냥 권태로왔을 것 같다. 그래서 권총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을까? 작가의 삶이 극적이고 극단적이라면 로맹가리는 그런 삶을 정석대로 살다가간 작가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가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자기 앞의 생.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오래된 명제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작품이다. 작가의 삶과 더불어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깊은 심연으로 가라 앉는다.  

빌어먹을 로맹가리. 이따위의 아름다운 글들을 세상에 남겨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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