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센은 그런 인물이 아닙니다.
입센에게는 그와는 별도로 세속에 초연한 자신이 있었고 시종일관 나아지려고 했지요.
그것이 [브랜드Brand]에서 발휘되었습니다.
입센은 무엇을 위해 관습의 썩은 오랏줄을 끊어냈을까요.
거기에서 자유를 얻고 진흙탕에 몸을 맡기려고 한 게 아닙니다.
힘찬 날개로 바람을 가르며 높이 날아오르려고 했던 겁니다. (58-59)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아파트 이야기와 주식 이야기, 자식 교육 이야기 아니면 할 말이 없어? 라고 아이가 물었다. 옆옆옆 테이블에 아줌마들 여덟이서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보다. 아마 그들의 드레스 코드가 오늘 레드인가 보다. 여덟이서 다 레드로 맞춰 입었다. 삐딱하게 보지 않아도 아파트와 주식과 자식은 삶의 중심에 자리한 게 맞으니까 당연히 대화가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거고. 정보를 주고받는 자리니까 당연히 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고갈 거다. 각각의 자리마다 각각의 페르소나가 자리하고 있을 테니까. 다만 저 페르소나가 내 안에서 아주 크게 자리하지 않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고. 함께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두 시간 내내 자신의 딸아이 이야기만 한 어떤 중년 여성이 떠올랐다. 이십여년 만에 마주한 옛날 애인은 함께 하는 내내 자신의 아내와 반려묘들 이야기만 했다. 허영에 찌들어 지극히 세속적으로 사랑을 추구한다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뭐 누구나 다 그런 면모들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여긴다. 마주하는 한편 내내 간헐적으로나마 관계를 이어간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쥐톨만큼이라도 있을 때고. 아빠가 많이 아팠을 때 우연히 데이트를 하는 친구와 마주쳐서 친구의 그녀가 함께 맥주를 마시자고 해서 함께 했던 때. 셋이서 어두컴컴한 대학로 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였을 때 한겨울이었다. 그때 친구의 그녀가 담배를 꺼내기 위해서 가방 지퍼를 열었고 그 안에 내 가방 안에 있는 책과 같은 책이 있어서 웃었다. 왜 웃어요? 그녀가 물었다. 가방 안에 있던 책을 꺼내 보여주니 그녀가 소리내어 웃었다. 친구는 담배를 태우지 않아서 둘이 나가서 거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내 담배만 태웠다.
모리 오가이를 읽다가 그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지극히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연락처를 주고받지도 않았고 그 후로 다시 본 적도 없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친구에게 그녀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더니 헤어졌다고 답했다. 왜 헤어졌어? 라는 질문 같은 건 경박해서 하지 않았다. 꽤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라고 말했더니 응, 분에 넘치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나를 떠난 거겠지. 라고 친구가 답했다. 그 괜찮은 사람도 지금은 쉰이겠군. 딱 한 번 스치듯 만났을 뿐인데 오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걸 보니 호감이 꽤 짙었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