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캐롤라인 냅에 대한 책을 접한건 도서관에서 빌린 게일 캘드웰의 책 "먼 길로 돌아갈까"에서 였다.
두 여성작가의 우정을 아주 인상깊게 기록한 그 책엔 게일 캘드웰의 글로 표현해낸 캐롤라인 냅이라는 작가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그녀의 가장 유명한 책인 "드링킹"을 그 다음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나는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캐롤라인 냅이라는 작가가 너무 글을 잘 써서......
글을 잘 쓴다는게 기교적이고 문장이 아름답고 하는 등등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내가 충격을 받은건 글이 너무나 솔직하다는 점이었다.
작가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우울, 불안, 슬픔, 좌절 등의 감정들을 깊숙히 들여다보고 적나라하게 글로 꺼내 놓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텐데 캐롤라인 냅은 그것을 해내는 것이었다.
정도와 방향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드링킹"에서의 그녀의 고민과 아픔은 우리의 마음 속에도 웅크리고 있을 것들이어서 그녀의 글엔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토록 솔직하게 드러낸 자기자신으로 인해 나는 위로를 받는 느낌까지 들었다. 불완전한 인간이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간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같은 위로 말이다.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는 "드링킹" 이후의 캐롤라인 냅의 삶을 다룬 책이다.
여러 사례를 제시하면서 문제견 뒤에 문제 많은 인간이 있다는 식의 개 기르기 교본같은 이야기들이나 인간과 개에 대한 관계, 특히 개를 대하는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매우 지적인 이야기들이 이 책을 채우는 와중에서도 가장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역시 캐롤라인 냅 자신의 이야기다.


술을 끊고나서 강아지 루실을 가족으로 들이고 루실에게 집착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드링킹"에서의 위태로움과는 달랐다.
여전히 그녀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내성적이라 루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 내가 너무 루실에게만 집착해서 세상과 고립되면 어쩌나 등등 그녀다운 고민을 한다. 그러나 루실로 인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간관계로 나아가기도 하고, 그녀의 근원적인 애정결핍이 점차 치유된다 느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남자친구와는 헤어졌지만 옆에 루실이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 괴로워 하지는 않는다.


"먼 길로 돌아갈까"를 제일 먼저 읽었기에 나는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 이후 몇 년 후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캐롤라인 냅이라는 한 인간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다소 희망찬 끝이 어쩐지 좀 슬펐다.
알콜중독이라는 자기파괴의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루실과의 따뜻한 관계로 자신의 삶이 치유되고 있다고 자신하며 루실에게 "루실 너를 사랑해,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라고 말해주는 마지막 부분에와서는 눈물이 왈칵 나오기까지 했다.



사랑받고 싶지만 상처 받는게 무서운 나약함,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간이 세상에 나와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할때 입는 상처들, 그 상처들을 바라보며 하는 자책들, 이 모든 복잡한 감정들을 품고 삶을 긍정하며 살아보려 노력했던 흔적이 바로 캐롤라인 냅의 글들에 남아있다.
그녀가 더 오래 살았다면 지금쯤엔 불완전한 인간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무사히 잘 견뎌내고 담담히 살아가는 노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라면 그 담담한 삶도 진솔하면서도 맛깔나게 표현해 내었을텐데......
더이상 그녀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깝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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