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스 캐롤 오츠 "멀베이니 가족"

 

 

이 소설은 아버지 마이클과 어머니 코린이 서로 만나 멀베이니 가족을 이루는 시기부터 4명의 자식들이 새로 가족을 만들고 또 자식을 낳는 동안의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방대한 가족사를 느리고 우직하게 끌고 나가는 와중에 각각의 가족구성원의 사연이 차분하고 세세하게 묘사되어서 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게 그려지는게 인상적이다. 마치 이 멀베이니 가족을 내가 언젠가 실제로 본적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업이며 자식들이며 부모의 관계며 모든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행복했던 멀베이니 가족.
그러나 예쁘고 착한 치어리더 딸 매리엔이 강간을 당하는 사건 이후로 이 가족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1970년대 피해자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던 미국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한때 부러움을 샀었던 멀베이니 가족은 동정을 받거나 동네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는 가족으로 전락한다.

가족의 고통 앞에서 현실을 회피하고자 딸을 내치는 부모와 그런 부모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그들도 딱히 어쩌지 못 하는 자식들은 가족을 떠나서 뿔뿔히 흩어지고 만다.

멀베이니 가족의 행복의 상징과도 같았던 하이포인트 농장은 파산해서 팔리고 멀베이니 가족이 누렷던 부와 명예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무너져내린다.

 

 

이 고통의 기록은 읽어내기가 참 슬프고 우울했다.
작가의 정성스러운 어루만짐안에서 이미 인물들의 세세한 역사와 성격은 물론이고 외모와 취향까지도 알게되고나니 이 인물들이 하는 행동에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던 거 같다.

 

 

 

해체된 멀베이니 가족은 이제 각자에게 닥치는 삶 앞에 서게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있을때는 치유하지 않고 외면하기에 급급했던 상처가 가족을 떠나 개인의 삶을 살아내면서 서서히 치유되는 지점에서 가족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가족......

가족은 아픈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 한다. 아픔은 아픔이라고 정직하게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래서 상처는 저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야 만다
진짜 고통스러운 문제는 어쩌면 가족 안에서는 절대 해결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족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멀베이니 가족은 다시 행복한 가족으로 재회한다.
가족을 떠나 스스로 삶을 회복해 나가려 했던 각자의 노력들이 가족의 재건으로 보상받는 결말은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p.s

장장 800페이지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멀베이니 가족들이 내 머릿속에서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읽고 며칠이나 지났지만 때때로 멀베이니 가족 한사람한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 소설이 얼마나 생생하게 인물들을 묘사해냈는지 인물들 각자의 그림을 그리라면 얼추 그려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작가의 집중력에 정말 감탄이 나오는 소설이었다. 대단히 대단히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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