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조지 펠레카노스가 워싱턴을 배경으로 활약하는 사립탐정 데릭 스트레인지를 주인공으로 쓴시리즈 소설중 첫번째인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이 첫번째 시리즈는 흑인 사복 경찰을 근무중에 총으로 쏴 죽인 백인 경찰 퀸이 어떻게 흑인 탐정 스트레인지와 파트너가 되는지 그 과정을 그렸다고 보면 된다.
백인 경찰이 실수로 라고 하지만 흑인 경찰을 쐈으니 당연히 인종차별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흑인들은 그 내막을 대충 정확하게 짐작하지만 정작 백인 경찰 퀸은 자신은 인종주의자가 아니고 흑인에대한 편견따위도 없다고 주장한다. 스스로에게도 당당한듯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론은 퀸이 싹쑤없는 인종주의자 백인은 절대 아니지만 그의 의식속에 뿌리박혀있는 흑인에 대한 편견은 부정하려해도 어쩔 수 없다는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 부터가 인종문제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위선 떨며 난 아니라고 말하는건 갈등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어쩌면 굉장히 무거운 문제를 풀어놓는 소설이지만 이런 인종문제에 대한 주제는 소설전반에 걸쳐 살짝씩 뿌려주며 생각할거리를 남겨두는 식으로 다루고 있고, 범죄해결의 짜릿함과 박진감 넘치는 액션과 우수에 젖은 듯한 멋진 주인공의 묘사 등을 전면에 내세워 미스터리 범죄 소설에서 기대하는 바 또한 쫄깃하게 총족시켜 준다.
나쁜놈들은 법의 심판 이전에 처절하게 응징하는 데릭 스트레인지의 스타일도 이 첫번째 시리즈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상남자 아날로그 탐정 데릭 스트레인지. 매력이 철철 넘친다~
두번째 시리즈 "지옥에서 온 심판자"
첫번째 보다 더 재밌었던 두번째 소설.
워싱턴 흑인 빈민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다뤘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것이라고는 마약과 범죄 세계. 아빠는 누군지도 모르고 마약중독자 엄마들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커서 할 짓이라고는 역시나 그게그거.
가난의 대물림, 악순환의 반복.
워싱턴이 고향인 저자가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그 세계를 쓰고 있다는게 팍팍 느껴졌다.
잔인한 악당들까지도 그냥 악당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의 배경을 친절하게 그려준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가난하고 처참했던 어린시절을 보여 주며 그들의 문제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상기시키는 식으로.
첫번째 시리즈에서 악당은 그냥 악당이기만 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역시나 스트레인지 탐정은 멋졌다.
법 이전에 악당을 처절하게 응징한다는 스트레인지의 정의는 두번째 시리즈에서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데 스트레인지도 성장을 한다. 내 응징을 받아라 식이 아니라 막판에 좀더 사회를 믿어보기로 하는 것으로. 복수는 하되 거리에서 행해지듯 무대뽀 복수는 아닌 방법으로.
나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 대부분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록되었다고 믿고 있고, 그건 바로 뿌리 깊은 인종 문제라고 생각해요. 피할 방법은 없겠지. 벌써 수백 년에 걸친 앙금이니 말이오. 게다가 그것과 밀접한 문제가 바로 가난이요. 당신이 뭐라고 하든 간에 모두 우리의 능력 밖에 있는 문제들이요. 하지만 무엇이든 책임을 나누려고 한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고, 또 우리에겐 해볼 능력도 있는 것 같소. 매일 매일 고민한 끝에 이제야 겨우 확신을 갖게 됐소. 불평등을 안고 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들을 이끌어줄 부모요. 엄마 아빠 둘 다가 필요하지. 419 - 420 쪽
데릭 스트레인지는 소설 말미에 이런 말을 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결국 그 아이들에게 사회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스트레인지가 풋볼팀 감독으로 아이들을 보살펴 주듯 사회가 엄마 아빠의 책임을 조금씩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 말이다.
스트레인지 시리즈를 읽으며 비록 소설의 외형은 날것의 욕설과 잔인한 범죄로 가득하지만 그 속은 참으로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명탐정 스트레인지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어서 그렇고, 소설을 써내는 작가의 시선이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해 보여서 그렇기도 하다.
이 시리즈가 계속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출판사 보고있나? 헤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