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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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970년대 시카고 교외의 가상의 마을 뉴프로스펙트에 있는 제일 개혁 교회의 부목사 러스 힐데브란트가 교인인 프랜시스 코트렐에게 끌려 어떻게 하면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심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러스는 아내와 4남매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고, 프랜시스는 자녀 둘을 둔 젊은 과부다. 그러니까 러스는 유부남이면서 감히 불륜을 꿈꾸는 부도덕한 목사인 셈이다. 프랜시스와 함께 흑인 교회로 봉사활동을 가서 웃통을 까고 육체노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목사 사무실에 단둘이 남아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매력으로 프랜시스를 어떻게든 꼬셔보려고 요리조리 머리를 쓰는 모습을 읽고 있으면 가관이다. 하지만 목사가 바보도 아니고 싫다고 단호하게 자르는 사람에게 무작정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프랜시스도 목사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지고 여지를 남기는데 그 모습에 러스는 더욱더 욕망이 끓어오른다.


 

이 소설은 힐데브란트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서로에게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를 따라가는 가족 대서사다. 작가 조너선 프랜즌은 이 이야기를 3부작으로 구상했고, 《크로스로드》는 그중 첫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다. 이 책도 800쪽이 넘는 벽돌인데 앞으로 두 권이 더 나올 것이라니...이 가족으로 그렇게나 할 말이 많다는 사실에 일단 놀라고, 이렇게 긴 책인데도 지루하지 않고 인물들에게 빠져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글빨에 또 한 번 놀란다.

아무튼 힐데브란트 가족 중 가장 막내인 9살 저드슨을 제외하고는 부모와 세 자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중에서도 나는 부모인 러스와 매리언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그래서 아마도 이 리뷰는 러스와 매리언을 중심으로 쓰게 될 것 같다.


 

다시 러스 목사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러스는 프랜시스와의 불륜을 꿈꾸면서 동시에 청소년부 지도자인 릭 앰브로즈 전도사에게 엄청난 반감을 드러낸다. 이 교회의 청소년부 모임 이름이 바로 ‘크로스로드’인데, 러스와 릭이 함께 지은 이름이고 한때는 러스도 청소년부에서 십대 아이들을 지도했었다. 하지만 3년 전 러스는 아이들의 반감을 사 크로스로드에서 굴욕적으로 쫓겨나고 만다. 자신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던 릭 앰브로즈는 러스의 추방을 그저 방관하기만 했고, 러스는 그가 이 모든 사건을 부추겼다고 앙심을 품고 있다. 아이들은 모임마다 성경과 신에 대해 설교하는 러스 목사보다는 히피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공감하며 심리 상담을 해주는 릭을 훨씬 믿고 따른다. 러스는 그런 젊고 힙한 릭이 질투 나 죽을 지경이다.

하지만 3년 전 러스가 크로스로드에서 쫓겨나게 된 사연을 보면, 러스가 그렇게 억울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시대였으면 청소년부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 이상의 벌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십대의 인기 많은 금발 소녀가 부모의 이혼으로 불안한 상황을 러스에게 상담하러 왔고, 러스는 그 아이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도 아내 매리언과의 부부생활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정확히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던 것이다. 미쳤나? 교회에서 목사가 십대 소녀한테 이런 소리를 한다고? 이 일로 십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러스는 정말 개자식으로 통했고, 결정적으로 크로스로드에서 아이들의 신뢰를 잃고 만다.

이 일로 아이들은 릭 앰브로즈와 상담했고, 러스는 릭에게 십대 소녀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추궁당한다. 러스는 그저 소녀의 부모가 겪는 위기는 모든 부부가 겪는 일이며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소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려 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당시 자신의 성적 욕망이 십대 금발 소녀를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러스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어쨌든 이건 러스 자신의 내면의 일이고 릭은 러스가 보기에 아이들의 신뢰도 앗아가고 자신을 크로스로드에서 몰아낸 괘씸한 인간이기 때문에 3년 동안 한 교회에서 말도 한마디 안 나누고 삐친 채로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프랜시스가 러스에게 릭과 화해하라고 말한다. 러스가 다시 크로스로드에 들어와야 자신과 함께 애리조나 수련회에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프랜시스의 아들도 크로스로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수련회에 부모 대표로 프랜시스가 따라가기 때문이다.

러스는 프랜시스와 함께 있기 위해서 원수 같던 릭과 화해해야 하는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프랜시스를 욕망하는 데에 목사 신분으로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이던 러스. 그는 대체 어떤 논리로 자신의 불륜을 정당화 하는 걸까? 러스는 프랜시스를 주님이 그에게 주시는 두 번째 기회라고 생각한다. 기쁨에 찬 여인과 기쁘게 사랑을 나누라고 주님이 주신 기회라고. 그 여인 때문에 원수같이 지내던 릭을 용서할 마음을 먹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전하신 말씀의 정수이자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357쪽)라고 생각한다.

캬~ 러스 목사님 정말 대박! 자신의 욕망을 신앙의 언어로 바꾸는 솜씨 정말 대박!

아무튼 이렇게 러스는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가족을 대하고 목사 일을 하고 있다. 아무도 모를 줄 알겠지만, 사실 러스와 프랜시스의 관계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눈치 채고 있다. 좁은 동네에서 둘이 붙어 다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겠는가? 이로 인해 큰아들 클렘은 안 그래도 실망스러운 아버지에게 더욱 실망하고, 딸 베키는 아버지와 멀어지면서 교회까지 옮겨 버린다. 약물 중독에 빠져드는 작은아들 페리의 문제는 프랜시스와의 불륜에 정신이 팔린 러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점점 더 악화되어 간다.

 


부인인 매리언 또한 러스의 불륜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과 아이들에게 헌신하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매리언은 살이 찌고 생기 없는 모습으로, 러스에게 전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 사실을 매리언도 잘 알고 있다. 최근 남몰래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그 상담을 통해 매리언의 과거와 진심이 밝혀진다. 매리언은 왜 지금의 모습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고 있는지가.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매리언은 꽤나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부유함은 모두 아버지의 빚으로 이루어진 모래성이었고, 빚을 감당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자살하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매리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우가 될 생각으로 LA로 가지만, 꿈은 좌절되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던 중 만난 유부남과 사귀게 된다. 그 관계에서 큰 상처를 받고 정신이상까지 일으켜 정신병원에서 1년을 보낸 뒤, 애리조나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살게 되고, 가톨릭 성당에 다니며 고통스러웠던 마음의 상처를 신에게 의지해 잊으려 한다. 여기까지가 매리언이 러스를 만나기 전의 과거였다.

애리조나에서 러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려 했을 때, 매리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러스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차마 털어놓을 수 없어서, 러스를 만나기 전 철없던 시절 성급하게 결혼했다가 이혼했다고 거짓 고백을 한다. 러스는 큰 충격을 받지만 매리언을 사랑했기에 그녀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고 결혼한다. 매리언은 차마 밝히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결혼생활 내내 죄책감에 시달리며 러스에게 헌신해 왔다.

그리고 현재 체중이 불은 우울한 중년의 매리언은 심리상담사에게 과거의 진실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묻어두었던 과거를 들춰낼수록, 스무 살 때 만났던 그 유부남에 대한 열망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때 제대로 끝맺지 못한 집착적인 관계가 여전히 매리언을 끌어당긴다. 매리언은 그를 다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결혼 생활의 위기 속에서 과거의 남자를 다시 만나려는 열망에 사로잡힌 매리언은 남편에게 헌신해온 삶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시 담배를 피우고 러스의 빨래를 해주지 않고, 살을 빼고, 지역 극단에 들어간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찾아가던 매리언은 아들 페리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다시 러스에게 돌아오는데...


 

페리의 일이 자신이 프랜시스에게 빠져 있을 때 일어난 일이라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러스를 보며 매리언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한다. 과거 자신이 빠졌던 남자, 그로 인해 선택했던 일들을. 죄 많은 자신은 러스에게 죄를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리는 매리언은 자신의 죄책감을 러스에게 고백하지 않은 채, 오히려 러스가 고백하는 죄를 용서하는 입장에 서서 살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부부는 다시 결합한다. 매리언은 이것이 바로 신의 뜻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제자리다. 매리언은 앞으로도 러스의 설교문을 써주고, 빨래를 해주고, 러스에게 헌신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부터 시작된 매리언의 뿌리 깊은 죄책감은 매리언의 신앙의 토대가 된 듯 보인다. 어떻게 보면 신에게 의지하고 종교가 필요했던 사람은 러스 보다는 매리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자급자족하는 보수파 기독교도들의 공동체에서 나고 자란 러스의 신앙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것이라면 매리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상처와 마음속에 감춰둬야만 하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 찾게 된 신앙이라는 점이 달랐다. 그러니 더 간절히 매달리고 진심으로 구원을 찾는 쪽은 목사인 러스보다는 매리언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러니 신의 피조물인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러스를 달래는 쪽도, 기도를 하라고 종용하는 쪽도 매리언일 수 밖에...

 

 


이 소설은 1970년대 진보적인 개신교 교회의 목회자 가족이라는 이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좀처럼 접하지 못 했던 배경을 이야기 하고 있어서 아주 재밌게 읽었다. 문제 많은 목사와 목사 사모뿐만 아니라 그 자식들 까지 다사다난하다. 그 집단을 경험해 보지 않고는 도저히 이렇게 까지 세밀하게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마도 작가는 청소년시절 크로스로드 같은 교회 모임에 참석해 봤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작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걸 얼핏 본 기억도 나고...

인물들의 상처와 죄책감, 은밀한 욕망, 내밀하고 뒤틀린 인간의 심리로 꽉꽉 채워진 소설이었다. 힐데브란트 가족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된다.

한달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읽느라 팔이 아팠지만 보람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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