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릿 애트우드는 2020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미출간 소설이었던 "갈라놓을 수 없는" 이 출간되자 그에 대한 글을 썼고 이 책 "타오르는 질문들"에 실려있다.
애트우드 여사가 사르트르에게 가하는 일침에 속이 후련해져서 옮겨본다ㅋㅋㅋㅋㅋ
그것은 지금껏 출간된 적 없었던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 "갈라놓을 수 없는"이다. 이 책은 그녀에게 아마도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경험을 담고 있다. 그 경험은 평생의 친구였던 자자(Zaza)와의 관계다. (소설에서 자자는 앙드레라는 소녀로 등장한다.) 두 소녀의 우정은 자자가 비극적이고 이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다층적이고 강렬하게 이어진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출간한 지 5년 후인 1954년에 이 책을 썼고 이것을 사르트르에게 보여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정치적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이었고, 이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가 유물론자이자 마르크주의자였다는 것을 생각할 때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은 두 젊은 여성이 처한 물리적·사회적 여건을 치열하게 묘사한 책이 아니던가. 당시 진지하게 여겨지던 생산수단은 공장 노동과 농업이 유일했다. 여성의 저평가된 무보수 노동은 거기 해당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이 작품을 하찮게 보았다. - P620
보부아르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 작품에는 "어떠한 내적 필연성도 없어 보였고, 그래서 독자의 흥미를 끄는 데 실패했다"라고 썼다. 이는 보부아르의 말이 아니다. 당시에는 그녀도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흠, 독자여, 사르트르 씨가 틀렸다. 적어도 이 독자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인류의 완성이나 정의와 평등 같은 추상적 관념에 몰두하는 사람은 원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소설은 개인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사람은 자기 연인이 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자기가 연인의 삶에 등장하기 전의 일을 다루고, 자기가 아닌 남이 중요하고 재능 있고 사랑받는 인물로 등장하고, 더욱이 그 인물이 여성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유산계급 소녀들의 내적 삶? 너무 사소해 이런 소소한 감정 유희는 여기까지만해, 시몬, 너의 그 명석한 두뇌를 보다 진지한 문제들에 쓰는 게 어때? - P621
그런데 사르트르 씨, 21세기에서 답변드리자면, 이것이야말로 진지한 문제거든요. 만약 자자가 없었다면, 자자와 보부아르의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관계가 없었다면, 보부아르의 지적 야망에 대한 자자의응원과 시대의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보부아르의 욕망이 없었다면, 가족과 사회가 자자에게 그녀가 여성이란 이유로 가했던 치명적인 기대-보부아르가 보기에는 자자의 총명과 기운, 기지와 의지에도 불구하고 자자의 생명력을 그야말로 고갈시켜버린 기대-에 대한 보부아르의 견해가 없었다면, 제2의 성이 있을 수 있었을까? 또한 이 중추적인 책이 없었다면, 이후에 일어난 일이 과연 일어난 만큼 일어날 수있었을까? - P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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