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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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서 채취한 피 몇 방울로 200가지가 넘는 질병을 미리 검사해 볼 수 있는 획기적인 진단기기를 발명해냈다는 회사가 있다. 힘들게 주사바늘로 다량의 혈액을 채취할 필요 없이 단 몇 방울의 혈액만으로도 질병을 알아낼 수 있고 거기에다가 기기의 크기가 작아 휴대까지 간편해서 집에서도 쉽게 진단을 받아볼 수 있는 혁신적인 의료기기를 만들어내는 회사. 그것은 바로 19살의 스탠포드 중퇴생 엘리자베스 홈즈가 세운 스타트업 테라노스.

엘리자베스 홈즈의 첫 시작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은 맞다. 공상 과학 같은 생각이었지만 만약 정말로 피 몇 방울로 미리 병을 알아낼 수 있는 기기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할 수도 있는 혁신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테라노스는 거창한 아이디어만 있고 기술은 없는 거대한 사기였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테라노스를 세우고 약 15년 동안 기기를 발명했고 기술이 있다고 뻥을 쳐왔지만 실제로는 엉성한 오류투성이 기계만을 만들어 냈을 뿐이고 혈액 몇 방울만으로는 200가지가 넘는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금발에 파랗고 커다란 눈을 가진 매력적인 젊은 여성 엘리자베스 홈즈가 놀랄 만큼 낮은 목소리로 테라노스의 장밋빛 미래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그대로 그녀를 믿었다. 그녀에게 설득당했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쟁쟁한 투자자들은 테라노스에 앞다투어 투자를 했다. 결국 테라노스는 기업가치가 10조원에 달하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이 되었다.

진짜 기술도 없이 그저 엘리자베스 홈즈의 매력적인 이미지와 말발과 그럴듯한 거짓말로 테라노스는 승승장구했다. 이런 일이 이렇게 쉽게 가능하다니 참 기가 막혔다.

 

투자자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굉장히 경험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던데(루퍼트 머독,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등등) 이런 사람들도 이렇게 쉽게 속는구나 싶어서 놀랍기 그지없었다. 하긴 속이는 사람이 나쁘지 속는 사람이 나쁜가 뭐......

그렇다하더라도 테라노스를 끝까지 놓지 못 했던 투자자들은 자신이 일단 믿기로 결정한 일은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 속성이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다. 자신의 결정은 틀릴 리가 없다는 과신으로 주변의 옳은 소리를 차단해 버리는 모습들 말이다.

일례로 조지 슐츠는 테라노스에서 일하다 그만둔 손자가 그 회사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고 할아버지가 속고 있다며 증거를 아무리 얘기해도 손자 말을 안 듣고 자신이 처음부터 믿기로 한 엘리자베스 홈즈를 끝까지 믿는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의 성공적인 커리어와 그로 인한 자기 확신이 오히려 어떤 상황에선 독이 되는 경우. 그러니 절대 과신하지 말지어다...라지만 말이 쉽지 어디 그게 그렇게 쉽나?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이때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오던 사람이라면 특히나 더. 그러니 인생은 역시 쉽지 않은 것 크흐~

 

 

쟁쟁한 이사진들, 정치인들과의 친분, 위협적인 변호사 군단을 거느리고 거짓의 모래성을 쌓아가던 테라노스는 이 책의 저자가 폭로한 기사로 드디어 그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기사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테라노스에서 일하다 그만둔 양심적인 직원들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라노스 측은 기밀유지 문서에 직원들의 사인을 받아두고 퇴사한 후에도 회사에 관한 어떤 말도 못 하게 협박해 왔다. 무언가 낌새를 보이면 최강의 변호사들을 보내 퇴사자들에게 소송을 건다고 협박해서 입막음을 시도했지만 내부고발자들은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했고 테라노스는 드디어 무너졌다.

이 과정이 정말 짜릿하고 긴장감이 넘쳐서 마치 영화를 한편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그래도 제니퍼 로렌스 주연으로 영화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현실이 픽션보다 더 하다는 걸 또 이렇게 새삼 깨닫는다.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티브 잡스를 똑같이 따라했다고 한다.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다녔고 애플이 맡겼던 광고회사에 테라노스의 광고를 맡기고는 매주 수요일마다 회의를 하는 것도 스티브 잡스를 따라한 거였다. 그녀의 남자 같은 바리톤의 낮은 목소리도 실제의 목소리가 아닌 꾸며서 낸 목소리라고 하니 아무래도 스티브 잡스를 목소리까지 베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의심도 든다. 겉모습은 따라했지만 진짜로 중요한 알맹이는 전혀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그녀는 계속해서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협박하며 성공한 기업인이라는 역할을 연기했다.

불안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거짓말로 살아 갈 수 있을까? 19살부터 시작해서 30중반까지 그렇게 살았다는건데 어휴~ 간도 크다. 

여러모로, 안 좋은 의미로 참 대단한 인간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근황을 보니 코로나와 출산으로 연기 되었던 재판이 요즘 다시 열리고 있는 모양이다벌써 감옥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재판도 안 했다니 또 한 번 놀랐다. 그녀는 실패한 것이지 사기가 아니라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동안 공개적으로 했던 그 많은 거짓말들은 다 뭐야? 

아무튼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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