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번역하면 "잃어버린 약제상"인데 만약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다면 좀 더 흥미를 끄는 제목으로 바뀔거같은 느낌이다.
잃어버린 약제상은 정직한 제목이긴 한데 확 끌리진 않으니... 약제상이란 단어도 좀 그렇네 200년전을 떠올릴법한 옛스러우면서 신비스러운 느낌의 단어 뭐 없을까...라는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ㅋㅋㅋ 책이 나온다면 알아서들 출판사에서 잘 만들어 내겠지 뭐~
일단 소설의 소재가 확 끌리긴 했다.
18세기 런던의 약제상에 관련된 인물 두명과 현재의 인물 한명 이렇게 딱 세명의 이야기다.
현재의 인물 캐롤라인은 남편의 바람으로 10년간의 결혼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부부는 영국 여행을 계획했지만 남편의 부정에 큰 슬픔을 안고 캐롤라인 혼자만 현재 영국으로 여행와있는 상태다.
과거로 가서 200년전 런던의 뒷골목에는 여자들만 은밀하게 알음알음해서 찾는 약제상이 있었다. 이곳은 주로 여자들에게 독약을 팔았는데, 그 독을 먹고 죽는 사람들은 남자들이었다. 여자 입장에서 죽어도 싼 남자들. 여자를 배신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가정에서 나쁜짓을 일삼는 남자들.
약제상 주인인 넬라는 여자들이 주문한 독약을 곰모양이 새겨진 병에 담아서 팔았다. 곰은 약제상의 위치를 암시하는 표시였다.
넬라는 음식에 넣거나 술에 타거나 하는 식으로 의뢰인이 원하는 용도에 맞게 재료를 구해서 감쪽같이 독을 사용할 수 있게 조제했다.
이 약제상에 독을 사기 위해 나타난 12살 소녀인 엘리자는 자신이 하녀로 일하고 있는 집의 남자 주인을 그의 부인과 공모해서 음식에 독을 타 죽인다. 그 남자는 엘리자를 만지고 희롱하던 나쁜놈이었고 그걸 알게 된 여주인은 엘리자에게 넬라의 약제상에서 독약을 사오라고 시켰던 것.
엘리자는 12살의 어린 나이지만 강단있고 의리있는 여자아이이고 넬라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이런 200년전의 인물들과 현재의 캐롤라인이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템스강바닥에서 발견한 곰이 새겨진 약병이다.
캐롤라인은 혼자 런던을 여행하던 중 mudlarking 이라는 걸 하는 투어를 하는데, 이게 뭐냐하면 템스강에 물이 빠질때 강바닥에 나가서 진흙을 뒤지며 옛날에 강에 버린 물건들을 줍는 취미활동이란다. 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게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다. 깨진 도자기 파편이나 운이 좋으면 거절당한 옛날 프로포즈 반지 등등 이것저것 찾아낸다고 한다. 옛날엔 가난한 사람들이 강바닥에서 찾은 물건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고도 하고 요즘엔 취미로 강바닥을 뒤져서 옛물건들을 찾기도 한다고 한다.
아무튼 캐롤라인은 강에서 찾아낸 약병으로 인해 대학때 역사를 전공하면서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연구하는걸 자신이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떠올린다. 그런쪽으로 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결혼을 하는 바람에 그리고 남편의 현실적인 조언들에 결혼생활 10년간을 스스로 꿈을 접고 살아왔다. 약병에 뭔가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런던에서 나름대로 조사를 시작하고 어찌어찌 하다가 옛 기록들에 접근하게 되고 거기서 200년전 독을 팔던 약제상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들만 찾던 약제상. 그것도 독약을 파는 곳. 여자들만 공유되었던 은밀한 장소,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주며 비밀이 유지되었던 곳. 결국 이 소설은 200년전 과거의 여자들의 이야기가 현재의 여자에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야기다. 캐롤라인은 결국 홀로서기 하여 대학에 다시 들어가 공부하기로 한다. 약제상의 비밀을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진정 가슴뛰며 할 수 있는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여자들의 목숨을 건 우정 앞에서 용기를 얻었다.
사실 충분히 흥미진진한 소재이긴 한데 이 소설은 약간 좀 기대에 못 미치긴 한다.
과거와 현재를 엮어 내는게 조금 어설프고 너무 쉽게 일이 진행된다는 점이 맥빠지는 지점이다.
내레이터들의 반복되는 감정 표현도 왜이렇게 자꾸 똑같은 얘기를 하나 싶기도 했고...
아무튼 말끔하게 잘 정제된 소설은 아닌 느낌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힘은 분병히 있었다.
음산하지만 슬픈 약제상의 분위기도 머릿속에 그려졌고, 어떻게든 이야기가 쓱쓱 진행되기는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