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프레스턴의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온두라스의 동쪽 모스키티아라는 지역에는 수백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열대우림이 있다. 나무와 온갖 식물들로 빽빽한 그 곳은 너무나 원시적인 자연 그대로의 밀림이라 사람이 접근할 엄두도 못 내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오래전부터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었다. 그 밀림이 원래는 번성한 도시였고 수백년전 그 도시의 사람들은 신의 노여움 때문에 그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곳을 사람들은 '시우다드 블랑카' 바로 백색도시 라고 불렀다.

처음 스페인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범했을때 그 도시를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이 전설이 그냥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서구의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래서 보물을 찾겠다는 도굴꾼들과 잃어버린 도시를 찾고 싶은 모험가들이 이 모스키티아의 밀림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려 왔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밀림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아놓고 그럴듯하게 그 주변의 소문을 수집하고 다른 지역 유물을 빼돌려서 증거로 내밀며 드디어 잃어버린 도시를 발견했다고 떠벌리는 사기꾼들도 꾸준히 있어왔다.

이 책에서는 온두라스가 미국의 바나나 기업가에게 경제와 정치가 농락당한 근현대사를 언급하는데, 그와 비슷하게 서구열강의 사람들이 한 나라의 유적지를 보물찾기의 대상으로 여기며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녔던 기록 또한 다루고 있다. 읽고 있자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모험가든 도굴꾼이든 아무리 설쳐도 정작 모스키티아의 밀림 속을 제대로 탐험해 봤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곳이 너무나 울창한 자연이라 사람이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온두라스의 정치상황이 혼란스러워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세계 곳곳의 발견되지 않은 유적지들을 찾아내는 라이다라는 기술이 주목받게 된다.

오래전부터 모스키티아의 읿어버린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영화제작자는 라이다 기술을 이곳에 적용해 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라이다는 온갖 식물로 덮인 모스키티아의 밀림 속 지형에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닌 사람이 만든게 틀림없어 보이는 건축의 흔적들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드디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모스키티아의 잃어버린 도시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의 고고학자들과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언론인들, 다큐멘터리 제작팀, 온두라스의 군인들과 학자들 등등이 원정대를 꾸리고 모스키티아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정확한 지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밀림을 헤치고 두 다리로 걸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원정대는 풀과 나무들로 꽉 막혀 바로 몇미터 앞도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그 엄청난 숲을 헤치며 걸어간다. 불과 100미터를 가는데도 몇시간이 소요되는 고된 여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여정엔 당연히 무시무시한 뱀과 우글우글대는 온갖 벌레들도  빼놓으면 안된다.

모스키티아에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는 것은 그곳에 사는 동물들이 원정대를 보고도 경계하지 않고 다가왔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었다 한다.

밤이 되면 모기들과 작은 날벌레들의 습격으로 고생하고 뱀은 어디에서도 나타나고 재규어가 텐트 주위를 어슬렁대고 나무위에는 거미원숭이들이 원정대를 쫓아내려고 소리를 질러대는 곳.

그러나 저자는 이런 울창한 자연이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었다 말하고 싶었던거 같다. 산같이 솟은 빽빽한 나무들과 숲의 소리들은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을 테니... 문명으로 돌아올때 아름다운 밀림을 떠나는 것을 몹시 아쉬워 한다.

근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나는 저런곳엔 못 가겠구나 하고. 가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잃어버린 도시를 찾는다거나 온갖 모험얘기는 책으로나 읽고 싶은 거다.

특히나 저자가 밤에 볼일을 보려고 일어나 후레쉬를 땅에 비추니 수천마리의 새카만 바퀴벌레가 길을 덮고 있었다는 구절을 읽고 있자니 너무 소름이 돋는 거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서 나는 저런곳에 데려다 놓으면 1초도 못 버틸거 같단 생각을 했다.

원정대는 라이다에 나온 지표면의 흔적들을 찾아가서 피라미드나 건물터, 거대한 광장 같은 것들을 직접 확인한다. 모스키티아의 밀림 속에는 정말로 수백년전에 도시가 존재 했던 것이다.

게다가 땅 속에 반쯤 파묻혀 있던 돌로 만든 재규어형상의 조각품들과 도기 등 한무더기의 유물들도 발견하는 성과를 낸다.

이 책은 이런 발굴 상황을 사실대로 묘사하는데 나는 읽으면서 좀 밋밋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거다.

밀림을 헤치고 가서 유적지를 확인했고, 이 오목한 지형엔 울창한 초목을 걷어낸다면 예전 도시의 넓은 광장이 나타날  것이고, 저쪽 평평한 지대에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뭐 이런식의 서술들 말이다.

이게 사실이고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기대했던건 이런거다.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돌계단을 밟았더니 보이지 않던 문이 열렸고 그 문 안은 또 다른 수수께끼의 미로이며 뭔가를 만지면 저주가 내려서 원정대원의 누군가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병에 걸려 죽고 등등등

영화나 소설에서 고고학자라는 주인공들이 나와서 고대문명의 미스터리를 풀어 가는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봐 온 나머지 나는 정작 현실에서의 중요한 발견이 픽션같지 않다며 은근히 실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사서 읽게 된 이유도 혹시나 저런 픽션같은 현실이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라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라니. 분명 제목은 사실에 기반한 것이 맞긴한데, 이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는 뭔가 인디아나존스의 한장면이 연상되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미신적 전설을 따라가는 류가 아니다.

원정대는 신기술을 도입해서 지도를 제작하여 자연을 헤치고 가서 드디어 약 오백년 전에 이곳에 도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게 다다. 여기에 어떤 신비한 음모론 따위는 없다.

약간의 실망감은 여러 사실적인 추론과 흥미로운 정보들이 뒤이어 나오며 상쇄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도시는 버려졌는가 하는 추론들 말이다.

여전히 거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여러 학자들의 말을 종합해 저자는  서구 세계의 침범으로 인한 전염병의 창궐이 그 이유일 것이라  말한다.

모스키티아는 스페인 정복자들도 굳이 들어가지 않았던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이 도시는 정복자들에 의해 파괴되었거나 정복자를 피해 그곳 사람들이 도시를 버렸던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된다.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오면서 함께 가지고 왔던 전염병들이 대륙을 휩쓸었고, 모스키티아의 오지 도시에까지 그 전염병은 확산 되었을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이 병이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라 생각했고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 그 이후 이곳은 아무도 들어가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이 추론을 뒷받침 하는 것이 원정대가 발견한 유물 무더기들이다. 귀한 물건들이 사람이 일부러 쪼개고 훼손한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물건의 정령을 풀어준다는 의미의 일종의 제례의식이었다고 한다. 전염병으로 죽어가던 도시에서 일부 남은 사람들은 이렇게 의식을 치룬 뒤 마을을 떠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밀림의 환경 특성상 발굴한 유물들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도 불가능한 현재, 옛날 모스키티아에서 정확히 언제 어떤일이 벌어졌었는지는 여전히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유물들의 정확한 연대는 그 주변 문명들에서 발견된 유물들의 유사성으로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밀림에서 돌아온 저자는 어쩌면 기생충을 연구하면 모스키티아에서 도시가 버려진 시기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의 계기는 저자를 포함한 원정대원들 대부분이 리슈만편모충에 감염되어 치료를 받게 된 상황으로 발생했다. 치료중에 이 기생충이 모스키티아에서 고립되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 변이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기생충이 얼마동안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연구하면 모스키티아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시기를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질문을 던진다.

리슈만편모충 치료가 상당히 고되고 위험하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 기생충이 모스키티아 도시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저자의 집념이 참 재밌으면서도 대단하다 싶었다.

온두라스의 역사는 스페인점령기 이후는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 시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마야문명이 아닌 온두라스의 토착 문명은 발굴도 연구도 미진한 상태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스키티아의 잃어버린 도시의 유적지를 발견한 것은 온두라스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옛날에 모스키티아의 도시를 버린 사람들은 미지의 세계로 사라진 것이 아니고 여전히 온두라스 이곳저곳에서 정착해서 살았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 한다. 그래서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서 연구한다는 건 온두라스인들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의 잃어버린 역사를 찾는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고.

앞으로 나도 온두라스의 잃어버린 도시에서 또 무엇을 발견했는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소식이 들려오면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될 거 같다. 온두라스의 역사와 자연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관심있게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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