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리처드 포드는 초기작 '스포츠 라이터'에서 프랭크 배스컴이라는 인물을 만들내고 적지 않은 분량의 장편 소설을 냈는데 몇년 후 또다시 그 인물을 가지고 역시나 꽤나 길게 이 소설 '독립기념일'을 써냈다.
'스포츠 라이터'에서 6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가 바로 '독립기념일'의 배경이다.
작가 약력을 보니 최근까지 프랭크 배스컴 4부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앞으로 프랭크 배스컴 이야기가 2편이나 더 있다는 소리다.



나는 현재 이 소설을 힘겹게 다 읽고 난 후 앞으로 같은 주인공의 소설이 더 있다는 정보를 접하니 뭘 또 그렇게까지 할말이 남아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스포츠 라이터'와 '독립기념일'의 프랭크 배스컴 이란 인물은 소설의 주인공으론 그렇게 호감가는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년전 '스포츠 라이터'를 읽을때 나는 배스컴이 너무나 비호감인 인물인지라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거듭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약간 이기적이기도 하고 회피형의 인간. 첫째 아들을 잃고 나서 자신은 방황했다 하는데 그 방황이란게 아내 외의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혼한 남자.
이혼남 클럽에서 만난 친구의 고민과 슬픔을 들어주는게 너무나 어려운 남자.
여자를 사귀는 것을 자신의 감정에 대한 도피처로 삼는 남자. 대충 기억하기론 이렇다.



이런 프랭크 배스컴이 6년후 40중반이 되었다. '독립기념일'에서의 그는 지금의 시기를 '존재의 시기'라 명명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녀를 비롯해 어떤이에게든 미덥지 못한 사람에 그칠지도 모른다. 로맨스 초기에 울리는 낭랑한 종소리를 좋아 하면서도 그 달콤한 종소리가 어떤 중요한 것으로 발전할 조짐이 보이면 이를 진전시키기보다 그저 무시해 버리고 마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돌이켜보면 나는 중년기를 나름 성공적으로 보내 왔는데, 이 시기를 '존재의 시기'로 명명하고서 싫어하는 것들, 꺼림칙하고 복잡해 보이는 것들이 나타나면 대부분 무시로 일관하거나 흘려 보냈다.   (1권 23쪽)



그러니까 열정이 어느정도 사그라 든 상태. 내가 어쩌지 못 하는 일들에 대해서 크게 동요하거나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그냥 눈감고 모른척 해버리는 상태, 어느것에도 크게 애정을 쏟지 않음으로 해서 세상에 대해서 상처를 덜 받겠다는 상태를 거창하게 '존재의 시기'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배스컴의 성향은 '스포츠 라이터'에서도 익숙한 것이어서 6년이란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었다고 해서 사람이 확 변해 이렇게 된 건 아닌거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스포츠 라이터'의 배스컴은 친구의 아픔은 그사람의 몫 그 누구도 아픔을 거들어 줄 수 없다는 태도로 자살직전의 친구에게 무심하게 굴지 않았던가...
나이를 더 먹은 배스컴은 원래 가지고 있던 성향을 이제는 좀더 드러내놓고 인정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아 보인다.



하지만 삶이란게 자신이 인정한 방법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단순한 것인가말이다.
해덤이라는 조용하고 부유한 마을에서 어느것에도 어느관계에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고 고요하게 존재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배스컴은 실상을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아 보인다. 



나이가 한참 어린 애인과의 프랑스 생활은 그 한계를 보았고, 돌아와서는 전부인 앤과 재결합하려고 마음먹었지만 앤은 이미 부자 남자를 만나서 재혼해 버렸다. 이부분에서 배스컴은 질투에 눈이 멀어 이미 존재의 시기란 말이 무색해져 버리는 행동을 한다. 바로 앤이 살던 집을 사서 이사를 하면서 앤이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는 거다. 



새로 사귄 애인 샐리와는 불안한 관계다. 샐리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 샐리에게 확답을 주지 못 하는 상태인데 배스컴은 이것이 자신이 존재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로는 아무래도 샐리가 그동안의 배스컴이 사귄 여자들이 그래왔듯 자신을 먼저 떠날거 같기 때문에 그 불안감으로 선뜻 마음을 주지 못 하는 듯 보인다.
존재의 시기란 또다시 상처를 받지 않겠다는 자기보호의 시기인 만큼 그렇기 때문에 외로운 시기 라고 해도 무방하다.



곧 인생을 하직할 사람처럼 다시 가슴이 쿵쿵쿵 뛰기 시작한다.할 수만 있다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딱딱하고 작은 수화기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괜찮아 난 도망쳤어.위험했지 하지만 날 어쩌지는 못 했어.그 숨결을 코로 맡았고 어둠 속에서 빛나던 그 빨간 눈을 봤어. 그 기분나쁘게 축축한 손이 나를 건드렸지. 하지만 난 해냈어 살아남았다고. 그러니 기다려줘 이제 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았어"

하지만 아무도 없다. 여기, 아니 그 어떤 곳에도 이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타깝다. 참으로 안타깝다. 참으로, 참으로              (1권 372쪽)



이중에서도 배스컴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 가장 큰 요인은 아들 폴이다.

형의 죽음과 어린시절 키우던 반려견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 한 폴은 재혼가정에도 적응을 못 하고 여러 사건을 일으키는 문제아가 된다.
배스컴은 이런 아들을 위해 독립기념일을 맞아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하는데, 여행내내 폴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도통 배스컴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자꾸만 과거 안좋은 기억에 얽매여 우울함에 사로잡히는 폴에게 배스컴은 과거를 끊고 현재를 살아가는 진정한 독립에 대한 교훈을 주려고 하지만 폴은 더 격렬하게 반항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그러다 급기야 폴은 야구공을 눈에 맞는 사고까지 당한다.


아들의 반항 앞에서 배스컴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큰아들의 죽음과 받아 들일 수 없는 이혼 앞에서 자신을 누군가가 한대 때려 줬으면 했다고 고백하며 폴도 지금 그런 심정이 아니겠냐고 눈물짓는 배스컴.
드디어 미지근한 존재의 시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아픈 과거를 끌어안은 채 과거의 상처가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현재의 삶에서 진정한 관계를 회피하는 것을 존재의 시기라고 이름 붙인 자기기만의 상태. 그래서 진보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없었던 그 상태에서 말이다.



이렇게 해서 배스컴은 독립기념일에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고 자신만의 진정한 독립을 찾는다.
샐리와의 더 진지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고 미련이 남았던 전부인 앤과는 스스로 마음을 정리한다.
그리고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를 바라보며 세상과 사회에 좀더 마음을 열고 미래로 천천히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 소설은 '스포츠 라이터' 보다 더 내면에 침잠한 소설이다. 솔직히 '스포츠 라이터'도 집중이 안되어서 몇번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서사로 이루어지는 소설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과 기억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 집중을 하지 않으면 한참을 읽어도 무슨 소린가 하고 있을때가 많다.

게다가 일상적인 풍경이나 행동에 대한 묘사가 세세하고 많은 분량이 그런 묘사로 채워지다 보니 조금만 한눈을 팔면 지루해지기 쉬운 소설이다.
그런 면이 '독립기념일'에 와서는 더 심해졌다 ㅜㅜ


어떻게 보면 작가가 하나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그 캐릭터에 대해 인간적인 면면들을 온갖 묘사로 풀어낸다는게 얼마나 깊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일인가. 그런면에 대해선 참으로 존경스럽지만 이정도로 프랭크 배스컴에 대한 속얘기를 길게 했는데 또 할말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은 참....뭐랄까... 아... 조금 지친다.

그래도 번역되어 나오면 나는 또 읽어보겠지. ㅜㅜ 


더 나이먹고 더 성숙해진 프랭크 배스컴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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