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 벅, 제니퍼 리

성우: 크리스틴 벨, 이디나 멘젤, 조나단 그로프, 조쉬 가드, 산티노 폰타나, 알란 터딕, 시아란 힌즈, 스티븐 J. 앤더슨, 에디 맥크러그, 로버트 파인

미술: 마이클 지아이모

음악: 크리스토프 벡

전체 관람가 / Color / 92분

원제: Frozen

 

 (2014, 1, 20 / 3, 29 / 4, 26 / 4, 28)

.....

 

 

나는 솔직히 정말 걱정이 된다




'잘 생긴 왕자가 긍정적인 소녀를 사악한 여왕으로부터 구해낸다' 

-> '긍정적인 소녀가 사악한 여왕을 잘 생긴 왕자로부터 구해낸다'



크리스 벅, 제니퍼 리 감독의 <겨울왕국>이 어떤 작품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바로 위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 소녀를 설명할 때 '긍정적' 이었는지, '왈가닥' 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해지면서 조금씩 바뀌어진 듯 하다. 엘사를 악역이라 규정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근데도 굳이 1월 17일에 극장에서 관람한 이 작품의 리뷰를 끄적이는 건, 그냥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좋은 짤방들이 많이 생성되어, 그걸 삽입한 내 끄적임을 보는 게 어떤 기분일까 싶어 한 것이라 보면 될 게다. 그냥 개인적인 궁금증이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개봉된 디즈니 작품 중 가장 관객에게 사랑 받았다. 가수들은 자신의 가창력을 자랑하기 위해 'Let It Go' 를 쉴새없이 불렀으며 그 덕에 우린 클래식 음악 수준으로 한 곡이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만끽했다. 물론 이런 결과로 종편 채널에 의해 현 대통령과 공통된 모습을 갖고 있다는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건 어느 정도의 더러움을 감수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법. 엘사 공주님의 고귀한 승리는 온갖 수난을 극복한 결과다.



<겨울왕국>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 중에서 일반적인 디즈니의 통념을 뒤집은 엘사와 안나의 캐릭터는 충분히 관객을 매혹시킬만한 치명적인 매력을 전해 줬다. 이 중 엘사는 주디 갈란드와 크리스 에반스의 뒤를 잇는 성소수자들의 대통령이 된 상태이며, 안나는 디즈니 작품의 남자 주인공들의 역할을 채 와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 기념비적인 캐릭터이다. 그로 인해 디즈니 제작 작품 속에서 남자 캐릭터들이 할 일이 없어지긴 했지만, 작품은 그마저도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이웃나라의 왕자, 한스를 이 작품의 실질적인 악역으로 만든다던가,  얼음 장사꾼인 크리스토프의 역할이 그렇다. 크리스토프는 이 작품 속에서 사건 해결의 주체로 개입하는 순간이 거의 없다. 허나 <겨울왕국>의 세상에서 안나를 제외하고 엘사의 능력을 무섭게 바라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실리적인 얼음 장사꾼으로서 순수하게 엘사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스의 경우에는 안나와 함께 부르는 'Love Is An Open Door' 가 사랑에 관련된 곡이 아니라 악당을 상징하는 곡, 그러니까 '디즈니 빌런' 곡으로 둔갑시켜 버린 점에서 관객인 나의 뒷통수를 쳐버렸기 때문에, 그게 신선해서라도 분명 예전엔 볼 수 없던 캐릭터처럼 보인다. 

 


참고로 <겨울왕국>의 도입부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운드트랙으로 볼 때 'Vuelie' 라고 명명된 그 트랙이 (나는 그 트랙을 이름대로 안 부르고 '나나나 헤야나' 라고 부른다. 저건 뭐라고 발음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Frozen Heart' 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치 지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보는 건지, 아님 마이크 가브리엘, 에릭 골드버그 감독의 <포카혼타스>를 보는건지 헷갈리게 만들어서다. 그만큼 북유럽 느낌 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도 'Vuelie' 만 듣고 있으면 무슨 우림 속 원주민들이 불 피워놓고 축제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트랙만 지나보자. 그러면 'Frozen Heart' 를 시작으로 'Do You Wanna Build The Snowman?' ->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 'Love Is An Open Door' -> 'Let It Go' 까지 이어지는 무척 흥미로운 초반 40여분이 이어진다. 작품이 가진 훌륭한 점은 관객과 평론가들로 하여금 단순히 안무와 음악에 취해 '항유' 차원에서 그치게 하지 않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끔 흥미를 돋궜다는 점이다. 디즈니 / 픽사를 비롯하여 기본적으로 G, PG 등급을 넘지 않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은 폭력과 위협, 죽음 등을 시각화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허용될 수 있는 표현수위 안에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것을 감안하고 봐도 <겨울왕국>은 '밋밋' 하지 않다. 말하자면 작품의 갈등과 해결의 핵심이 되는 엘사의 초능력은 상당히 위협적으로 느껴진다는 얘기다. 작품이 위협을 조성하는 요소들은 각종 흉기들을 이용해 발생하는 고어적인 폭력을 통해서가 아니다. 엘사의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얼음의 뾰족한 형태가 병사들을 향해 다가올 때. 혹은 그 마법이 공중에 뜬 상태에 있는 어린 안나의 머리를 강타한다던가, 성인 안나의 심장을 꿰뚫고 들어가는 순간들로 부터다. 



의외로 병사들과 안나의 심장 속을 향해 발사하는 엘사의 마법은 사실 극적 연출로서도 익숙한 이미지이고, 동시에 상징적인 측면도 많이 있어서 이후의 작품 전개를 먼저 생각하게 되어 순간의 위협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관객으로서 내게 가장 긴장됐던 순간은 어린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미숙하게 다뤄, 실수로 동생인 안나의 머리에 얼음을 박아 넣을 때였다. 

 


<겨울왕국>의 주 관객층이 아동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데려오려면 부모의 동행이 필요한 법이다. 그 부모들을 자극하는 연출이라고 해야할까. 나이가 어떻든 간에 머리 다치면 그것만큼 큰 일도 없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 볼 때 미취학 아동 시기의 자기 자식이 착지할 에어백 류의 기구도 없이 공중에 붕 뜬 채 머리까지 다치면.. 그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함의 절정이다. 어쨌든 디즈니가 <밤비>, <피노키오>, <덤보>에서 보여준 위협적 이미지들이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정말 무서운 반면, 이 작품은 많이 자제하면서도 그만큼의 위협적 정서를 담아낼 줄 안다. 작품에선 해당 연출이 지나간 이후 안나가 기억을 잃는다. 그리고 엘사는 안나를 다치게 한 것으로 인한 죄책감과 능력을 저주로 생각하는 스스로의 두려움, 더불어 그녀가 왕국을 통치해야 하는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상황까지 겹친다. 

 


이런 이유로 이후의 뮤지컬 시퀀스들은 좋고 흥겹기까지 하지만 모두 다 긴장감을 밑에 깔고 있다. 기억의 일부를 잃은 안나는 자신의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허나 언니에게 여전히 살가운 정이 있어서인지 끊임없이.. 참 끈질기구나 싶을 정도로 다가온다. 엘사는 이것을 끝까지 밀쳐내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디즈니가 짐승의 등장, 혹은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배제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것이 <포카혼타스> 부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품도 디즈니 사에서 과거에 만든 작품들처럼 가사 그 자체를 이미지로 형상화 하려는 경향의 뮤지컬 시퀀스들로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 상황극 개그도 적절히 끼워 넣어주고. 정확히 얘기하자면 노래가 나오는 그 순간만큼은 캐릭터들이 어떤 상태이건 상관없이 나름대로 갖고 있던 흥에 모두 취해버리는 셈이다. 이는 89년부터 90년대 말까지 이어지던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에서도 여전했다.

 


알고 보면 이 와중에도 나름의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 시도한 흔적은 있다. 가령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게리 트러스데일, 커크 와이즈 감독의 <노틀담의 꼽추>나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감독의 <보물성> 에는 가사 그대로의 이미지를 구현하면서도 그 인물의 '절망적인' 심리를 형상화하는 곡들이 있었다. 전자는 악역인 클로드 주교가 에스메랄다를 향한 정념에 괴로워하다 그녀를 마녀 취급 하기로 작정하는 'Hellfire', 후자는 주인공인 짐 호킨스가 실버 선장을 따라나서면서 자신의 불우했던 환경과 방황하던 심리를 묘사한 'I'm Still Here' 같은 곡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작품은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중에서 관객 대상으로 크게 재미를 못 본다.





 

그러다 네이슨 그레노, 바이론 하워드 감독의 <라푼젤>에 이르러 디즈니는 뮤지컬을 극의 흐름과 정서에 일치시키는 시도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겨울왕국>도 그렇다. 'For The First Time In Forever' 는 'Do You Build The Snowman?' 을 듣고 보게 될 경우, 성문을 여는 안나의 충만한 행복과 왕위를 계승하는 대관식을 여는 엘사의 긴장된 모습을 그냥 건성으로 보지 않게 된다. 인물들은 모두 안무를 하면서 기본적인 중력을 무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훨씬 빨리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13년동안 언니 만나고 싶어 만날 노크만 해 제끼던 여인의 한풀이가 관객에게 와닿을 때 엘사와 안나가 여는 '문' 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바깥세상을 맞이하는 두 여자의 모습을 작품이 교차편집 할 때 거기엔 단순한 앙상블 그 이상이 있다. 이것이 결국 'Let It Go' 에 이르게 되면서, 홀로 된다는 것에 관해 유독 두려움을 많이 가지는 한국 관객들에게 시원한 해방으로서 납득시킨다. 괜찮아. 문을 열어도 돼. 그리고 이 시퀀스에서의 엘사는 미치도록 아름답고 섹시하다. 금발. 살랑살랑 걸음걸이. 번쩍거리는 드레스.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 'Let It Go' 의 한국 버전 중 하나. '다 좆까'. 욕설 선진국 한국이 욕으로 이뤄낸 아주 희귀한 쾌거.

"다 좆까 / 완벽한 년은 뒤졌어 / 이 곳에 / 시발 빛을 받으며 / 아렌델 개 좆 까라 / 추위는 좆도 아니니까" 로 마무리 되는 가사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잠깐 딴 소리. ..음. 딱히 헐리우드에 한정지어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주로 헐리우드 작품들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굳이 한정 짓자면, 요 몇 년새 만들어지는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작품의 시각적인 하일라이트를 후반부가 아니라 중반부에 미리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 나서 후반부는 다소 소소한 전개나 액션 시퀀스로 진행된다. 

 


<겨울왕국>은 'Let It Go' 시퀀스에서 절정을 선사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Let It Go' 이후, 이 작품에 대한 내 호감이 급격하게 떨어지더라. 도입부의 '나나나 헤야나' 를 들으며 느꼈던 괴리감이 다시 살아났다고 해야할까. 잘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겨울왕국>을 극장에서 보고 나오며 뭔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던 이유에는 아마도 디즈니가 만든 전작이 <라푼젤> 이라서 였다. 사실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더 나은 함의를 갖기 이전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느꼈던 매력적인 지점들은 각자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내겐 그것이 뮤지컬 시퀀스의 효과적인 배분과 활극적인 재미였다. 

 


<겨울왕국>은 그걸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뮤지컬 장르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싫은 것이 하나 있다. 뮤지컬 작품은 대개 상영시간이 긴 편이다. 문제는 그 긴 작품들 대부분이 전반부에는 흥미로운 춤과 노래로 가득하다 인터미션을 거치거나, 혹은 중반 이후에 들어가면서 급격히 비중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전반부에 작품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후반에 몰아서 한다는 느낌을 주는데 그것이 참 싫다. 애초에 곡이 더 필요하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뮤지컬적 요소가 들어가 있으면 그걸 기대하게 된단 말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전면적인 뮤지컬이라고 보긴 힘들다. 이 작품 역시 그렇다. 그러나 초중반부의 이야기를 대사와 뮤지컬 시퀀스를 적절히 구사하며 훌륭하게 이어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 올라프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중후반부는 많이 실망스럽다. 'In Summer' (<메리 포핀스>가 생각나기는 한다.) 라든가,  사랑을 이뤄주려는 크리스토프의 친구들, 트롤들이 부르는 'Fixer Upper' 는 음악적으로 영 힘이 달린다. 물론 'Fixer Upper' 는 곡 자체가 복선을 넘어 맥거핀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쓰임새가 꽤 재미있다. 내 눈에는 그 곡이 여지껏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연애라는 것을 모르고 후닥닥 해쳐먹으며 노래로 커플을 이어주려 했는지에 대한 반증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디즈니의 커플 노래치고 이렇게 인상에 남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의도라면, 굳이 '부자연스러움' 으로서의 뮤지컬 시퀀스가 필요했을까? 감정과 상황을 노래와 안무로 표현해야 하는 뮤지컬은 해당 장르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러움의 극점이다. 이런데 해당 시퀀스 자체가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관객에게 굳이 전해줄 필요가 있었을까? 내게 'Fixer Upper' 는 잔재미는 있으나 이야기 상으로도 그렇고, 굳이 넣을 필요 없는데 넣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더불어 활극적인 재미를 따지는 기준에서, <겨울왕국>의 액션 시퀀스는 적절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뮤지컬 시퀀스는 볼만한 게 많고 중반부까지는 천의무봉의 경지다. 하지만 액션 시퀀스는 영 힘이 빠져 보인다. 이를테면 얼음 운반 썰매를 몰고 타는 스벤, 크리스토프 + 안나가 늑대 떼들에게 쫓기는 순간이 그렇다. 2D와 3D 버전으로 한 번씩 봤지만, 딱히 역동적이지도 않고 액션의 합도 돋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박력도, 절정의 순간도 없다. 



여기서 좋은 비교 대상이 되는 작품은 역시 전작인 <라푼젤> 이다. 기본적으로는 디즈니 공주 캐릭터의 모험이지만, 알고 보면 상영시간 내내 젊은 남녀가 티격태격하며 연애 하는 이야기다. 그 덕에 작품은 마지막에 등이 하늘 위로 날아가고, 두 주인공이 배를 타고 호숫가로 나가는 순간에서 관객에게 그 로맨스를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상영시간 동안 관객들이 동화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라푼젤>은 <겨울왕국>처럼 역시 액션 시퀀스의 빈도는 높지 않고 또 몇 장면 되지도 않으며 시간조차 짧은 편이다. 하지만 한 번씩 등장하는 동적인 순간들이 웬만한 활극 뺨치는 수준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그것이 액션 시퀀스가 아니라 안무를 선보이는 차원에서 끝난다 할지라도 <라푼젤>은 분명 인상적인 순간을 남긴다. 

 

 



* 라푼젤과 플린이 동굴에 갇히기 전에 벌이는 액션 시퀀스 *

 

 

 

* 'Kingdom Dance' 시퀀스 *

 

 

영화의 역사를 다뤘거나 뮤지컬을 다룬 책을 보면 나오지만, 이 장르의 기원이 되는 보드빌 쇼는 귀족이 아니라 빈민층의 사람들, 혹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술의 형태였다. 보드빌 쇼는 사회자와 노래, 춤, 악기 연주, 콩트, 마임 등으로 이뤄진다. 관객과 무대를 분리시키지 않아서 이들이 언제든지 사회자의 진행방식에 따라 참여도 할 수 있었다. <라푼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Kingdom Dance' 시퀀스 같은 것은 축제라는 배경을 빌려 거의 뮤지컬의 초기형태인 보드빌 쇼를 동화 속으로 옮겨와 효과적으로 되살려 낸다. <겨울왕국>은 정작 이런 재미들을 많이 챙기지 못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한스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솔직히 자신의 왕국에서 왕위서열이 열 몇번째로 밀려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그가 악역이 될 듯하다는 생각도 조금은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그냥 그 캐릭터가 어느 순간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 같다는 정도에서 생각이 멈췄다. 케빈 리마 감독의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 에이미 아담스가 검을 들고 용과 맞서는 시퀀스를 보고 난 뒤부터, 그냥 어떤 식으로든 내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독특한 변주가 나오겠거니 싶었기 때문이다. 

 

 

* 안나를 엿 먹이는 엘사의 모습 *

 

 

<겨울왕국>은 한스와 결혼하겠다는 안나를 보며 엘사가 "처음 만난 사람과 바로 결혼할 수는 없어" 라고 초장에 바로 엿을 먹인다. 깜짝 놀랄 발언이었지만 작품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프링글스 아저씨 닮은 영감이 악역처럼 보여서 뒤에 저 발언을 만회할만한 전개가 나오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스가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권력을 탐하며, 안나를 이용했음을 밝히고 '급'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걱정되는 건 안나라는 캐릭터다. 안나를 보고 있으면 나는 마봉춘 방송국의 TV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의 363회인 '만약에...' 1부의 코너로 나온 <우리 결혼했어요> 속 송은이, 길 커플을 떠올리곤 한다. 무직이라는 유재석이 송은이의 절친으로 등장해서 길에게 그녀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할 거냐고 묻는다. 그는 그러면서 이 말을 덧붙인다. "...혹시 은이에게 상처줄거면, 접근하지 마요. 이런 식으로 은이에게 접근해서 적금 빼먹고 도망간 남자가 한둘이 아니에요." 라고. 곧이어 길은 송은이를 보며 "예쁘잖아요" 라고 하는데, 분노한 유재석이 그의 멱살을 잡는다. 그리고 말한다. "너 뭐야. 너 뭐하는 놈이야! 너 은이한테 뭘 바라는거야!?" 맞장구치듯 자막이 뜬다. '돈이 목적이냐' 사랑한다, 예쁘다는 길이의 말은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는 유재석의 경고로 마무리된다.



...나는 굳이 디즈니 속 만화에서까지 '첫 눈에 사랑에 빠지면 그건 상대방 쪽에서 네 재산을 노리거나 이용하려는 거다' 라는 이야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 M.B. 님의 <겨울왕국> 패러디 만화 '미친 소리' 편 *




물론 리뷰에서는 간간히 테마에 맞게끔 컨셉, 혹은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 다소 냉소적인 면을 보여줄 때가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바깥에서 '원래 세상이 그래' 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아직까지는 그 발언을 하게 되면 죄책감이 따라온다. 그럼 원래 세상이 그렇게 될 동안 너는 무얼 했냐는 식이다. 아니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글에서 그런 표현이 묻어나오는 건, 내가 주로 다루는 작품들이 대부분 나의 현재 시간으로부터 주로 거슬러 올라가고, 결론적으로 나보다 더 오래 묵은 작품인 경우가 많기에, 그 접점을 줄이려 범하는 행동일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프라인에서 언젠가 때가 되면 하게 될 지 모를 상황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온라인에서부터 연습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충분히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점은 잘 안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디즈니랜드에 들어서는 순간 오직 꿈을 꾸게만 해 줄 것이라고 대놓고 공표하는 디즈니의 그런 정책이 개인적으로는 꽤 멋있다고 느끼던 차였다. 그건 그냥 단순한 현실도피성 발언이 아니라, 삶의 삭막함 속에서도 이뤄지기 힘든 해당 가치들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꿈과 순수의 한 영역이니까. 물론 현실의 디즈니 사는 그것으로 돈을 벌어먹는 기업이고, 디즈니랜드에서 그런 아름다운 꿈을 꾸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모순과 논리가 있지만서도.



그런데 이렇게 하면 마치 디즈니의 과거 애니메이션이 너무나 낡고 고루한 것으로만 상징되지 않나? 물론 디즈니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건 몇 편 없지만, 적어도 과거의 디즈니 작품들을 보면서 마냥 시대착오적이라 느낀 적은 없었다. 그걸 볼 때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왕국>은 안나라는 인물을 상징 삼아 전통강호로서의 디즈니가 가진 이미지를 단박에 철딱서니 없는 것으로 부정해 버린다. 정말 그렇게 했어야만 했는가?



뭐, 기왕 부정하는 김에 그 에너지를 끝까지 밀고 가서 여태껏 월트 디즈니 사의 작품에서 본 적 없는 이미지를 구현해 냈더라면 또 모르겠다. 사실 디즈니는 그런 거 해도 무방하다. 굳이 종교로 예시를 들자면, 한 때 교회에서는 반기독교적 현상의 최대 원인으로 KBS에서 방영된 <디즈니 만화동산>을 꼽곤 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측에서는 아동들에게 해당 종교를 전파하려 했으나, 그들이 아침에 그 프로그램을 봐야하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아서 신도 확장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생명을 멈춘 안나를 되살리기 위해 엘사가 키스라도 할 줄 알았다. 만약 그랬다면, 그 쇼트의 막강한 상징성 때문에라도 <겨울왕국>은 혁명적인 작품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겨울왕국>은 어찌되었든 멋진 결말을 만들어내며 끝맺는다. 그런데 보고 나오면서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작품은 디즈니 사의 과거 작품들에서 접할 수 있었던 낭만적인 감성을 현실의 세상으로 밀어내어 기어이 놀림받게 만든다. 안나 캐릭터 말이다. <겨울왕국>은 말미에 이르러 디즈니가 꾸며왔던 기존의 영토에 어울리지 않게 발을 걸친 듯한 인상이다. 안나 캐릭터 말이다. 사실 관객으로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기성적인 것을 끝까지 거부하는 시도를 한다고 할 때, 거기에 '예술'을 갖다 붙이면 나는 일단 속아주는 편이었다. 실제로 대개 내 만족의 선에서는 만족할만한 경우가 많이 나오기도 했었고. 그런데 안나라는 캐릭터를 기어이 그런 과정에 이르게 했어야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내 눈에는 안나의 수난이 여전히 기존 디즈니 작품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져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라푼젤>이 더 좋다. 근데 디즈니가 <겨울왕국>의 방식으로 과거의 자신들을 죽이고 또 죽일 것 같아서, 좀 걱정된다. 왜냐면 회사 측에서 죽이고 싶어하는 그들의 과거도, 내게는 꽤 재밌었기 때문이다.


 

 





p.s.1 - '<겨울왕국>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당신은 작품을 완전히 잘못 받아들이고 있어요.' 라고 민원이 들어올 것 같아서, 여러분이 제게 <겨울왕국>의 블루레이 타이틀을 선물 삼아 보내주시면 감상하고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뻔뻔)  



p.s.2 - 아. 맞다. 이 작품,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님의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했어요. ..갑자기 이렇게 적으니까 되게 뜬금없네요. 그리고 끄적이는 동안에 오스카 장편 애니메이션 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죠. ..이것도 뜬금없나. 여튼 언제나 지나간 사실을 언급함으로서 여러분에게 다시 환기를 시키는 역할을 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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