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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 - 자유혼 (自由魂) [디지팩]
김두수 노래 / 드림비트 / 2002년 3월
평점 :

~ TRACKS
1. 들꽃 (One-Point-Stereo Live Recording)
2. 기슭으로 가는 배
3. 나비
4. 해당화
5. 보헤미안
6. 새벽비
7. 19번지 Blues
8. 산
9. 시간은 흐르고
10. Romantic Horizon
11. 추상 (追想)
12. 저녁강
~ BONUS TRACKS
13. 방랑부 (賦)
14. 들엔 민들레
~ 7" Singles (Available Only In Limited Deluxe Edition LP)
Side A. 나비
Side B. 새벽비
Side C. 19번지 Blues
Side D. 산
Side E. 들꽃
Side F. H.H에게 헌정함
2LP + 3 45 R.P.M. (Limited Deluxe Edition LP), 1CD / 68:03 Mins (1CD) / 레이블: 드림비트 레코드, 리버맨 뮤직
"김두수 분명 대마초꾼일거야."
- 어떤 음반 제작자가 그의 앨범 수록곡들을 들어보고 한 말(이라고 한다.)
음유시인이 아프다. 몸도 마음도 모두. 몸의 경우는 2집인 <약속의 땅>을 발표할 당시였다. 경추결핵 3기. 생사를 넘나들게 만든 이 병마때문에 김두수는 2집을 제작한 음반사인 동아기획의 바람과는 다르게 홍보를 위한 방송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고, 이후 현대음향을 통해서 겨우겨우 몸을 추스려 1991년에 3집인 <보헤미안 / 강변마을 사람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3집의 수록곡인 '보헤미안'을 듣고 부산에 사는 한 여자 감상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정확히 이 곡이 'Gloomy Sunday' 만큼 사람의 감정선을 충동적으로 지배해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인지, 아니면 전부터 자살할 의지가 있었는데 이 곡이 모티브가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듣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면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임에는 확실하다. 90년대 후반까지 음악에 관한 사회의 인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에서 '내 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거야' 란 가사가 있다고 그게 공영방송국 뉴스 프로그램에 문제 된다고 나왔었던, 그런 시기였다. 2, 3집은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티스트 본인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고통이 환멸을 만들었고, 11년간의 은둔을 만들었다.
3집의 발표 이후가 김두수에게는 큰 기점이 된 것 같다. 그의 이미지는 분명 '통기타를 든 음유시인' 이지만, 이전 음악들은 사실상 프로그레시브에 가깝다. (가령 내 블로그 배경음악 중 하나이자 3집 삽입곡인 '청보리 밭의 비밀'을 위에 클릭해서 한 번 들어보시라.) 신디사이저 음향과 약간의 잔향이 더해진 당시 김두수의 목소리로 완성된 곡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우주를 경험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자유혼>부터 이후의 <열흘 나비>, 그리고 2009년작이자 현재까지는 그의 최근작인 <저녁강> 앨범의 김두수는 악기 편성이나 본인의 보컬에도 상당히 간결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 가서 헛돈 쓰미스트' 했다는 어느 누구와는 반대로 간결해 졌다고 완성도에 하자가 있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유혼>이 그런 변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을텐데, 1번 트랙인 '들꽃'은 원 포인트 스테레오 마이크를 이용하여 김두수의 자택에서 한 번에 동시녹음됐다. 그리고 다른 곡들의 경우엔 역시 집에서, 그리고 8 트랙 레코더로 연주하고 코러스한 것을 녹음, 마스터 테이프로 만든 뒤 서울의 스튜디오로 가져가 세션들의 악기연주를 더빙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원 포인트 스테레오 마이크 녹음은 여섯곡 더 녹음됐다고 하는데, 자연의 소리가 잡음처럼 들어간 이 녹음분들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져 최종 앨범에서는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시녹음에 대한 세션들과의 의견차 때문에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런 녹음 방식은 앨범이 발표된 당시에도 그랬지만 11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는 더욱 보고 듣기 힘들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의도라기 보다는 시간과 기술의 흐름과 효과에 굳이 영향받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잘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찾은 아티스트의 접근 자세라 보는게 옳을 것이다.
그렇다고 음향 자체가 후지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다음 앨범인 <열흘 나비>가 5년 뒤에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CD로 들으면 다소 둔탁해서 한 번에 가사를 잘 들을 수 없다는 단점이 존재하는 반면 (이것에 관해서 찾아보긴 했는데, 내 자료 찾는 능력이 모자라서인지 마스터링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관해서 끝내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물론 김두수의 보컬이 다소 굵어졌다는 느낌도 있다. 몇 번 들으니 익숙해지기는 한데, LP로 들어보질 못했다. 들으면 또 다르려나?) <자유혼>은 편성된 악기의 소리, 그리고 김두수의 목소리도 또렷하다. 단순히 준비가 소박해서 마스터링을 하는 것이 쉬웠다기 보다는, 그것이 감쪽같이 위화감 없게 자연스럽고 편하게 귀에 전달되는 과정을 준비하는 능력이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일 것이다. 성능 좋은 장비를 이용해 정성을 들이기는 커녕 PC용 스피커로 듣고 적당히 작업해서 오디오 시스템보다 mp3 플레이어에 최적화되는 앨범을 만들고 있다는 요즘 음악업계 종사자들의 작태를 생각하면 '무려 10년전에 발표된' 이 앨범은 음악 관련 기술에 관해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고 해도 그 내공을 절로 느낄 수 있는 경우이다. 내가 그렇다.
나는 언제나 김두수의 목소리에 매혹 되어왔다. 3년 전에 3집인 <보헤미안 / 강변마을 사람들>의 리뷰를 끄적일 때도 했던 것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음악 감상자에게 가수의 목소리가 곧 악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는 사례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앨범은 악기 편성의 간소화라는 사실이 주는 첫인상과 달리 들을수록 상당히 과감하다는 인상을 준다. 가수가 보코더 같은 것들로 자신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어찌보면 내 편견이다. 작가적 의도로 보코더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찌보니 뭔가 쉽게 예시를 들고 싶어 이렇게 한 것인데, 앨범에서 세션들의 연주와 김두수 본인이 수준급으로 연주하는 통기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의 참여는 말 그대로 뒤를 든든하게 받치는 것이며 진짜 승부는 김두수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것은 3집보다 더 직접적이다. 그는 발표 당시, 이 앨범을 두고 자신의 실질적인 데뷔 앨범이라고 얘기한 바 있는데 이것은 어떤 발전, 혹은 실패를 해서 리부트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과 달리 정말 '시작'이라 할만하다. 1집인 <시오리길 / 귀촉도>는 검열과 음반기획사의 상업적 논리로 인해 아티스트의 본래 의도가 온전히 담겨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8~90년대의 그의 음악경력은 애초부터 '원치 않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약속의 땅>에 있었던 '나비'와 <보헤미안 / 강변마을 사람들>에 있었던 '보헤미안'이 이 앨범에서 다시 불려졌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로 소박한 포크 음악이다. 2집과 3집을 만들 당시의 김두수는 자신이 부르고자 하는 곡을 감상자의 머리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관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비'를 부르던 1988년의 김두수는 한 손에 술병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피리를 부는 쾌활한 우울증 환자처럼 경쾌한 톤으로 곡을 부르고, '보헤미안'을 부르던 1991년의 그는 비어버린 세상을 향한 '공허한 메아리'의 느낌을 음악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마치 과거의 것을 정리하겠다는 듯, <자유혼>에서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곡을 새로 부른 것이다. 곡은 더욱 간결하고 원숙하며 동시에 이전의 것들에 비하면 많이 메말랐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일까.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두 곡에 대한 선호는 그리 크지 않다. '나비'는 분명 다른 맛이 있지만 '보헤미안'의 경우에는 3집에서 부른 방식이 내 취향에 더 맞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다. (물론 4집 버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들꽃'을 비롯해 2번 트랙인 '기슭으로 가는 배', 4번 트랙인 '해당화' 까지 인상적인 곡들이 포진해 있지만 새롭게 부른 두 곡, 그리고 그의 앨범에서 드물게 번안곡인, 고든 라이트풋의 'Early Morning Rain' 을 번안한 6번 트랙 '새벽비' 를 생각해보면 6번 트랙까지의 인상은 이전의 그의 모습을 완벽히 지우기 위한 것같다.
물론 <자유혼>은 버릴 곡이 없는 앨범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짜 정수는 7번 트랙인 '19번지 Blues' 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명곡들에 있다고 본다. 진짜배기 블루스인 이 트랙에 빠져 블루지한 기분을 느끼고 8번 트랙인 '산'을 넘어가면 9번 트랙인 '시간은 흐르고' 와 만나게 된다. 3집에서 들었던 '보헤미안' 에서도 그랬고 이 앨범의 '시간은 흐르고' 도 그렇지만, 나는 그의 앨범에서 북소리가 등장하는 순간을 기다리곤 한다. 그의 음악 속에서 들려오는 북소리는 내게 있어 퀸의 'Bohemian Rhapsody'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징과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앞으로의 삶, 그리고 자신과 더이상 동시대를 살지 못하고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할 때 곡의 화자는 문득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을 본다. 정확히는 곡에서 '바람부는 그 길에 / 갈가마귀 날아가는가' 라는 부분에서다.
김두수의 음악에서 등장하는 북소리는 곡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고 곡 바깥에서 듣고 있는 감상자를 일깨운다. 이상한 것은 그의 목소리는 이전 곡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는데 이 곡부터 격앙된 듯 호소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떤 특정한 효과를 노린 것 같지 않다. 만약 의도라면 이전곡들은 모두 '건조한 곡'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김두수는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듣기에 건조해 보인다는 목소리로 수많은 감정들을 표현하고 있었다. 단지 이게 <만추>의 탕웨이가 짓는 표정처럼 그런 시각적인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귀로 느껴야 하다 보니, 이 곡까지 와서야 내가 깨달은 셈이다. 정확히는 <자유혼>이 내 마음에 통한 순간이다. 이 순간을 접하게 되면 그의 음악이 아름다워진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10번 트랙 'Romantic Horizon'과 11번 트랙 '추상'은 앨범에서 가장 추상적이다. 동시에 전자는 6분 26초, 후자는 7분 14초로 앨범 내에서 대곡이기도 하다. 두 곡 모두 하나의 것이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개별적으로 급작스러운 음악전개의 전환을 보여주며 김두수의 목소리 역시 <자유혼> 내에서 가장 다채롭게 변화한다. 이 두 곡은 처음 접근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으며, 특히 '추상'의 초반 4분까지의 전개는 3집의 '청보리밭의 비밀'보다 더 불친절하고 난해한 구석이 있어 트레이에서 CD를 빼고 싶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찾지 않으면 사람은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들어서 익숙해 진다면 곧이어 이 두 곡이 얼마나 사람 마음을 울리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자유혼>에서의 이 두 곡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즐거움'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렸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는 건 그것이 어떤 감동이라서가 아니다. 정말 슬퍼서 울게 되는 것이다. 왜 그의 노래 속에서 그렇게 이야기 되어지는 방랑은 행복하지 않은 것인가. 왜 그는 누군가에게 버림받거나 스스로 버려야만 하는 것인가. 지금의 세상에서 뭔가를 채워가는 것은 비워가는 것에 비해 행복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인가? 난 내가 가진 것들을 절대 버리지 못하겠는데. 그러나 김두수는 노래 속에서 스스로 비워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romantico 를 느끼는 것에 뭔가를 동반하는 것은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낭만을 탐하는 것.. 세상의 모든 역사는 아름다움만을 지향하고, 그 아름다움을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했을 때 타락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두수의 노래는 뭔가를 더 채워도 되지 않을까. 그는 힘들게 방랑하는 자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을 탐하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댓가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노래한다.
'Romantic Horizon'의 마지막 가사가 가슴 저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가오라 나의 천국 / 길을 잃고 또 길을 얻노라 / 맹인의 눈물, 농아의 노래'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누구도 모를 맹인의 눈물과 농아의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았을 때 말이다. 그것이 아름답지만...적어도 그에겐 누구도 모를 아름다움보다는 모두가 아는 풍요로운 것으로 누리게 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때가 너무 많이 묻어버린 사람이 흔히 말하는 쓸데없는 오지랖일 것이다. 김두수, 그 만이 비밀스럽게 알고 있는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슬프다. 비워낼 수 있는 자신이 없어서다. 그래서 이 앨범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단호하게 절멸 (絶滅)의 길을 택하는 김두수의 모습이다. '추상'에서 (보너스 트랙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인) 12번 트랙인 '저녁강' 에 이르면서 김두수는 해가 저물어가는 강가에 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다. 이 앨범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자유혼'에 대한 장송곡으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셈이다. '추상'은 분명 회귀의 노래다. 그러나 김두수는 길 위에 남아있을 뿐,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새들 뿐이며 그의 상념은 집을 짓는다. 그리고 그는 coffin. 즉, 관이나 다름없는 상념의 집 속으로 스스로 고립되길 자처한다. 마치 수도승처럼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음악적 진경을 경험한 것에 대한 숙제를 주듯이. 이제야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라며 더 아름다운 것을 보기 위해서 네가 비워내야 할 것이 많다는 충고를 위해서일지 모른다. <자유혼>이 끝나는 지점은 '이제 안녕을 고하라 / 시간이 강둑 저편 기슭에 머문다 / 노을, 꽃처럼 붉다 / 이제는 나의 땅으로 돌아갈 때' 이다. 이는 '저녁강'의 마지막 가사이다.
김두수는 신념의 아티스트다. 이러한 고립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결국은 스스로 박제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이게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하는 거라고 덤덤하게 대답할지도 모를 일이다. 신기하게도 <자유혼>에서 김두수의 목소리는 하나도 슬프지 않다. 나만 슬퍼할 뿐이다. 이게 참 신기하다.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일까. 아니. 이것은 인생의 모든 것에 관한 깨달임일지도 모른다. 비워내고, 그 대가로 자신은 고립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수없이 경험과 개인적인 배움과 견해들을 복기하며 고립의 삶을 벗어나자고 마음먹을 때, 문득 자신이 익숙하게 봐 왔던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달리 보일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평상시 있던 것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그래서 그것의 존재의의를 여태껏 몰랐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단순한 깨달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김두수는 그런 방식으로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감히 얘기하자면' 말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에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를 만들어내는 건 아티스트 본인이 가진 통찰력의 문제다. 김두수는 이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낄만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1집부터 3집까지 그래왔지만, 4집부터 현재 최근작인 6집까지의 그의 음악 스타일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조롭다거나, 혹은 도태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혼>은 그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이것은 타락의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비워진 세상으로 걸어들어가, 그 황무지에서 사람을 울리는 꽃을 피운 아티스트에 대한 최상의 찬사다. 여전히 생각날 때마다 자주 듣곤 하는 이 앨범은 그래서 참 좋다.
p.s.1 - 3집인 <보헤미안 / 강변마을 사람들>의 리뷰를 끄적일 때 언급하지 못했던 게 있었네요. 김두수 님의 앨범 중에서 '가장 먼저 들은 앨범'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인데, 저는 김두수 님의 앨범을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었던 2006년에 처음 들었습니다. 그 때 신나라 레코드에서 인터넷 주문으로 3집과 4집을 같이 구매했지요. 그러고는 별 생각없이 4집인 <자유혼>을 먼저 비닐 뜯어서 들었어요. 3집은 LP 미니어처로 발매되어져 있었기 때문에 좀 더 늦게 뜯어보고 싶었거든요. 맛있는 것일수록 뒀다 먹고 싶은 마음이지요. 어쨌든 결론은 4집을 제일 먼저 들었다는 얘기죠.
하지만 앨범에 관한 소문을 처음 들은 것은 3집이었습니다. 어디서 들었냐면 벅스뮤직에 들어가서 한대수 님의 앨범을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김두수'라는 이름을 봤었거든요. 3집은 LP 미니어처본과 실제 LP 간의 커버 디자인이 살짝 다른데,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그 LP 음원이 벅스뮤직에서 서비스 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봤던 댓글이 '정말 대단한 음악인인데 한대수, 김민기 같은 사람에 비해서 너무 안 알려져 있다. 꼭 재평가 받아야 한다.' 였어요. 지금의 벅스뮤직이야 그저 그런 사이트지만 오래 전에는 정말 양질의 음악들을 서비스 했었죠. CD로는 절대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앨범들까지 거의 다 서비스 했었으니까요. 김두수 님을 알게 된 건 결국 벅스뮤직 덕택이었습니다.
p.s.2 - 보너스 트랙 두 곡을 언급하지 못했는데, 음... 만만찮게 좋은 곡들이니 들어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자유혼> LP는 제가 앨범을 살 당시에 구매할 기회가 있긴 있었는데, 당시에 가격이 8만원 가까이 해서 제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대였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렸죠. 이후 감상자들의 요구가 빗발쳐서 7인치 싱글 세 장을 추가한 박스 세트로 새로 한정 발매 되는데요, 이 7인치 싱글곡들을 들을 기회가 없네요. 'H.H.에게 헌정함' 같은 곡은 오직 싱글에만 있으니까요. 그 곡 좀 들어보려고 하면 LP로 재테크 하려는 사람들은 프리미엄 얹어서 비싼 액수를 부르겠지만 말이죠.
어차피 세상이 자유경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이렇게 프리미엄을 얹는 행동들이 장기적으로 보자면 디스크 시장 (그것이 LP든, LD든, CD든, DVD든, BD든..) 을 더 좋지 않게 만드는 원흉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물건을 사면 그 희귀성을 알기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지만, 디스크를 산다는 것 자체가 이젠 더이상 '돈지랄'이라는 생각에서 바뀌지가 않는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영겁의 시간이 계속 지속되는 것 같고요.
* Romantic Horizon *
다가오라 나의 천국
그토록 오래도록 기다려온
너는 그 어디에
나를 버리고
길을 잃어 방황하여도
나 항상 너를 그리워하였네
잊혀진 꿈이여 너를 부른다
- 저 문이 열리고,
비조(飛鳥)의 날개짓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운 Romantica여, 만개(滿開)한 빛들의 궁륭
La-
다가오라 나의 천국
길을 잃고 또 길을 얻노라
맹인의 눈물, 농아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