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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디지털 리마스터링
정지영 감독, 독고영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감독: 정지영
주연: 독고영재, 최민수, 신혜수, 윤수진, 김일우, 홍경인, 김정현, 정순례, 황동섭, 전정로, 김교준,
노석래
특별출연: 이덕화, 이경영, 김혜수, 허준호, 김미미
촬영: 신옥현
음악: 신병하
15세 관람가 / Color / 115분
(2012, 12, 25)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슬로우 모션으로 만들고 싶을 때가 있다. 말하자면 남들과는 다르게 '인생을 잠깐이라도 영화처럼' 살고 싶어 한다는 거다. 예컨대 바위에서 뛰어내려 강으로 빠져들 때 그렇게 살고 싶은 누군가는 자신의 또래들이 뛰어내린 위치보다 훨씬 더 위에서 시도한다. 그 곳에서 뛰어내리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순간에 벌어지는 남들과의 차별성 그리고 높이의 차이만큼이나 순간의 시간은 곧 확장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있어 한 편의 영화로 승화된다. 안정효 작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영화같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의 노력은 무조건 한다고 다 좋다는 게 아니라는 방식으로 이야기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어른이 된 명길의 머리 속에서 그 순간은 분명히 한 편의 '영화'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는 읊조리기 시작한다. 내가 임병석을 처음 본 곳은 지금은 그 밑에 강변도로가 생겨 바위만 볼품없이 남아있는 마포 강변의 벼랑창에서 였다고.
작품의 첫 시작은 주인공에 해당되는 명길과 병석이 성인이 되어 경찰서에서 만나는 장면부터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기본 장르는 미스테리다. 병석이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한다. 그러나 어쩌다 화재가 났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병석이다. 집에 불이 났는데, 아들내미를 구해내지 않고 어릴 적부터 모아온 영화 프로그램들만 가지고 나온 것이다. (이후에 밝혀지지만 자신이 쓰고 있었던 시나리오도 가지고 나온다.)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기기에는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악할만한 상황이다. 병석은 혼이 빠진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심지어 자기가 집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하기까지 한다. 대답은 커녕 척 봐도 사람이 오락가락하는 것처럼 보이니 다행히 형사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명길이 물어봐도 병석은 묵묵부답이다. 안정효 작가는 병석이란 인물의 이름에 '병석에 누운 사람'이란 의미를 담았다. 말하자면 병든 사람. 그는 왜 병이 들었을까. 작품은 그 때부터 50년대 후반에서 시작해 90년대가 막 도래하기까지의 시간을 연대기 순으로 이어 나간다.

* "<알프스 소녀>가 <신데렐라>와 함께 <산장의 밤>을 보내고 <태양은 가득히> 빛나는 아침에 <회전목마>를 타고 <북북서로 가는 길>을 내려갔는데, 도중에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쫓아와서 하는 말이 <7인의 신부>가 필요한데 <세 자매>는 이내 <제 17포로 수용소>에 잡아놨으니 <황야의 3상사>가 <로마의 휴일>을 만나..."
병석이 맨 처음 선보인 이 암기법은 곧 명길을 비롯해서 반 아이들 전체에게 퍼져나가고, 그들은 병석에게 이 암기법을 배우고 싶어한다. *
과거 장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병석이 어느 누구에게나 다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미 강물로 다이빙 할 때부터 몇몇 애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던 병석은 명길의 학교로 전학을 와서 영화에 대한 지식을 뽐낸다. 그는 해박한 지식으로 같은 반 아이들의 존경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들 즉, 기성세대의 주목도 함께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주목하는 방식이 마냥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가령 병석은 자신의 현실적인 나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나이란 등급과 직결되기도 한다. 더구나 오래 전 한국에서는 학생이 영화를 보러 갔다 선도 교사에게 적발되면 정학 처분을 받지 않던가. 병석은 커티스 베른하르트 감독의 <비에 젖은 욕정>을 보려고 시도했다가 제대로 눈도장이 찍히고야 만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다. 선생들은 영화단체관람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골라야 할 지 난감해진다. 학생들이 봐도 무방한 작품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기성세대의 과도한 검열에서 비롯된 노파심일 뿐, 사실 그렇게 막는다고 해서 애들이 다 모르는 건 아닌데.. 그 때 이들은 병석을 부른다. 그리고 병석은 이들의 기대에 부흥하며 모든 학생들이 같이 볼 수 있는 건전한 작품에 관해 백과사전처럼 술술 풀어놓는다. 물론 그렇게 추천해줘 놓고 본인은 다른 작품 보러 몰래 도망가는 것이 반전이긴 하지만.
언뜻 보면 병석의 태도는 제도권에 잠식당하지 않겠다는 반항의 자세나 다름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병석은 기성세대에게 이용당하는 것과 같다. 단지 본인이 모를 뿐이다. 왜냐면 병석이 있었던 그 곳은 50년대 대한민국이지, 앙리 랑글루아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운영하고, 이후 그 곳을 사수하기 위해 병석과 같은 영화광들이 투쟁을 벌였던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석은 튀는 돌일 뿐이다. 경직된 한국의 사회는 그와 같은 인물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초반부는 학창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다소 무거운 현실을 다루고 있더라도 독고영재와 최민수, 신혜수가 등장하는 중반부에 이르기 직전까지는 나름대로 꿈을 꾸는 학생들의 발랄하고 향수어린 기운을 잃지 않고 진행된다. 실제로 정지영 감독은 안정효 작가의 동명소설에 많은 변화를 주지 않고,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진행시킨다. 말하자면 소설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영상화시킨 셈이다. 나름대로. 물론 감독만의 시각과 변화가 약간, 아주 약간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잠깐의 변화들이 이후, 주인공들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커 가고 배우가 교체되면서 점점 소설과 평생선을 달리는 영화가 선로를 달리 하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그리 하여 해석의 결이 점점 달라져서 최종적으로 조금 다른 함의를 가진 작품이 되기에, 굳이 더 많은 변화를 줄 필요가 없었던 듯 보인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안정효의 소설'이라기 보다 '정지영의 영화'라고 끝끝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사실 바로 보여지는 오프닝 시퀀스부터다. 감독 본인에게는 극장에서 뱀 풀었다가 구속 당한, 조금은 씁쓸한 과거가 있는 헐리우드 영화 직배 반대투쟁의 실제 풍경을 담은 영상이 등장하는데 (현재는 절필 후, 대목장이 됐다고 하는 이정하 전 평론가가 촬영한 영상이다.) 이는 안정효 작가의 원작소설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안정효 작가는 이런 변화를 상당히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왜냐면 작가 본인이 소설에 담아낸 관점은 상당히 개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영화를 만들고 그처럼 살기를 꿈꿔왔던 한 '개인'이 결국엔 현실과 영화와의 괴리감을 느끼고, 결국엔 도피해서 영화의 환상 속에 매몰되는 과정에 집중했다. 그래서 안정효 작가는 병석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형성하는 과정 중에 오손 웰즈 감독을 많이 떠올렸다고 한다. 시대를 앞서나간 불행한 천재의 이미지를 기본적으로 떠올린 뒤, 그 천재가 될 수 있는 삶을 꿈꾸다 그의 그림자만을 쫓아가 버리는 삶으로 최종 완성형이 된 것이다.

* 마지막 캡쳐 사진은 임권택 감독의 뒤통수 *
그러나 정지영 감독은 첫 장면에 직배 반대 투쟁 촬영 영상을 삽입함으로 인해 개인보다는 한국영화 산업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이 바라보는 작품 속의 '헐리우드 키드'는 병석 한 명만이 아니라 명길을 포함해서 94년 당시에 한국에서 영화판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헐리우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를 가지게끔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정지영 감독 본인도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이야기 전체에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음을 은연 중에 고백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정지영 감독이 이 작품에 관해서 어딘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해 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들의 학창시절을 다룬 작품의 전반부를 감상하다 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이 떠오른다. 그래서 아마도 정지영 감독이 영향은 받되, 그걸 자신의 입으로 얘기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은연 중에 관객이 느낄 수 있게끔 이런 방식으로 연출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렇듯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보는 가장 큰 재미는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것을 쓴 작가와 영화로 옮긴 감독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를 관객으로서 구경하는 것에 있다.
작품의 DVD 타이틀에 스페셜 피처로 실린 음성해설에서, 안정효 작가와 정지영 감독이 대화를 나누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 있다. 음성해설에서 안정효 작가가 언급하는 이승만에 관한 이야기는 다름아닌 자신의 과거의 추억에 관한 것이다. 그의 유년시절 시기엔 툭하면 전기가 끊기곤 했는데, 딱 하루만 전기를 풍족하게 쓰는 날이 있었다고 하니 그것이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일날이었다는 것. 반면 정지영 감독은 그 시기에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과 나이가 비슷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더 인상깊게 기억에 남은 것은 4.19 혁명이었고,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이 혁명 장면이 짧게 등장하고 언급되는데 이는 안정효 작가의 원작소설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다. 안정효 작가의 작품철학은 '내가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자' 였고, 정지영 감독은 반대로 그 일들을 통해서 어떤 발언을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감독은 한 개인의 인생을 역사라 칭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인물들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명길과 병석, 그리고 다른 친구들을 포함한 '영화동아리 4인방'을 한국영화 그 자체로 의인화 시킨다면, 정지영 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동시에 등장인물들을 통해 한국영화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작품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깊게 남는 것은 다름아닌 폭력이다. 유년기 시절의 명길과 병석은 영화를 본다는 행위를 위해서 자신의 온 몸을 내던진다. 일단 기본적으로 선도 교사에게 적발되면 정학처리 아니던가. 그리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조직 폭력배가 표를 받고 있는 (일제강점기 때도 그랬지만 이승만 정권 시기까지도 극장을 소유하고, 영화산업의 실세가 됐던 조직폭력배들이 있었다.) 검표소에 들어가 코피가 터질 때까지 얻어맞기도 하고, 사금파리들이 박힌 담장을 위험하게 뛰어 넘어가기도 한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잔인해서, 별 탈 없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때 그 시절을 추억거리로 미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의 이 소년들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목숨을 건 상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 들킨 댓가는 회초리나 나무몽둥이로 손바닥이나 몸 전체가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얻어맞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통제권 안에 넣고자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는 작품 속 선생들에게 당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꼭 엄혹했던 군사정권의 검열 속에서 여러 수난을 당하는 한국영화를 은유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물론 비판의 여지 역시 동시에 엿보이기도 한다. 가령 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한 편의 어떤 영화에 비하면 지금 저것은 혁명도 아니라며 비판하는 시각과 해박한 영화 관련 지식을 갖췄지만, 자라나는 그 시기의 모든 소년들이 그렇듯이 영화동아리 4인방도 어느새인가 성적 호기심에 더 치우치는 '애들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마냥 특별한 영웅으로 보였던 병석의 존재도 이 즈음부터 실망을 주기 시작한다.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드라큘라>에 담겨진 에로티시즘을 분석하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최근작' 이라며 <새>를 보러 가던 병석은 동시에 나이를 속이고 집창촌에 가며, 학생 감독이 되어 영화를 찍을 때는 주연으로 캐스팅한 동년배의 여학생인 현숙을 '자빠뜨리려다가' 영화적 동지라 여겨왔던 세 사람의 실망을 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병석이 명길의 주먹 맛을 보는 것으로 이 사태는 마무리된다.
사실 10대 시절 특유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인 것도 있지만, 병석은 현실의 모든 순간들이 영화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쪽이다. 집창촌에 들어가서도 그는 옷을 벗는 창녀를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 보려는 듯, 자신이 원하는 여러가지 동작들을 주문해 본다. 말하자면 자신이 그런 영화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동시에 작가 정신에 입각해 자신의 의도대로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하지만 그런 믿음이 7~80년대의 한국에서는 이용 해먹기 좋은 순진함에 불과했다. 그늘진 곳에 사는 여성들의 현실을 사실주의 영상으로 포착했다고 하지만 보다 보면 전혀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 유진선 감독의 <매춘> 같은. 혹은 김호선 감독의 <영자의 전성시대> 같은 작품, 이두용 감독의 <뽕> 같은 작품들이 이후 원전을 만든 감독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사와 다른 감독들이 이상한 속편과 모방작들을 우후죽순으로 생산해 냈던 것을 생각해보라.

물론 그 감독들도 나름의 의도는 있었겠지. 그래서 이런 의도를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했는데...

최종적인 완성품은 매번 이렇게 됐다고나 할까?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만들어진 시기는 한국영화계의 그런 암흑기와 이별을 고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이것과 더불어 80년대란 해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릴러 장르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정지영 감독은 스스로에게도 작품 속에서 향수를 가장한 차가운 냉소를 보내고 있다. 환상에만 젖어서 살고 있었다고.. 적어도 전반부는 따뜻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결국 그것은 겉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행복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닌' 이 전반부는 결국 영화보기에 목숨을 걸다 결국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다시 피투성이가 되고, 그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1시간 55분이라는 상영시간 중 독고영재와 최민수, 신혜수가 등장하는 것은 거의 1시간이 넘어서다. 고로, 이 유명배우들이 등장하는 시간이 1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당대 주목받는 아역배우였던 홍경인과 김정현도 20분 정도이며 초반 30분은 거의 신인 아역배우들이 이끌어간다. 이것은 사실 연기했던 배우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일 수 있는데, 나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가장 크고 유일한 단점이 초반 30여분에서 신인 아역배우들이 보여주는 연기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한 것도 있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명길과 병석의 아역을 맡은 두 배우, 장문과 박봉석의 연기는 감상하면서 전혀 몰입이 안 될 정도다. <하얀 전쟁>이야 워낙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남부군>은 딱히 그런 것이 없었다만, <부러진 화살>이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초반부가 여러가지 의미로 몰입이 되지 않을 정도의 산만함을 가지고 있어서 감상할 때 꽤 버거웠다. 법정 공판에 들어가기 위해서, 혹은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우정을 쌓고 또 갈등을 쌓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배우들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만한 연기를 보여주면 그나마 나을까 싶기도 했는데 어찌됐건 이 부분만큼은 영화제목 암기법 등을 가르쳐주고, 헐리우드로 가겠다고 무단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재밌는 설정이 들어있는 원작소설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아마 그런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초반부를 나름대로 비중을 크게 둬서 지독스럽게 이끌고 간 것은 아마도 이 장면 하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대한 명길이 학창시절 이후로 소식이 끊긴 병석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한 술집으로 간다. 손님과의 실랑이 도중 눈알이 빠져 애꾸가 된 호스테스인 양순이 호탕하게 웃다가 그를 반기고, 병석의 얘기를 듣자 갑자기 진지해진다. 조금 있으면 올테니 기다리라고 얘기하고 그녀는 상다리 부러지게 안주거리를 거나하게 차려와서 들여놓는다. 그녀가 병석의 아내인 것이다. 작품은 명길이 병석의 방을 둘러보는 순간 초반부에서 활용했던 황갈색 톤의 영상을 다시 잠시동안 보여준다. 그리고 어디선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 사운드트랙에 등장했던 'Colonel Bogey's March'가 휘파람소리로 들려오자 명길은 문풍지 바깥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 집중한다. 사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곧이어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 시퀀스는 굉장히 강렬하다. 찰라의 빛과 초반부를 연상케하는 색감때문에 세상의 때가 진하게 묻은 어른이 잠시 유년시절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깥쪽 병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명길이 상상하는 효과는 이 순간 더욱 커진다. 나는 시간의 흐름과 세상에 의해 이렇게 변했지만 저 아이는 끝끝내 변하지 않았겠지. 어린 시절 그 때 그대로겠지. 바깥에 있는 병석의 이동방향에 따라 카메라가 우측으로 패닝할 때 화면에 보이는 건 병석이 중학생 시절부터 소장하고 있었던 영화 프로그램들이 벽면에 붙여진 모습이다. 그것이 향수어린 정서를 더욱 부각시키는데, 잠시 그것에 취해있는 순간 절묘하게 등장하는 병석의 충격적인 현재의 모습이 압권이다. 아마도 그 원인의 일부로 병석을 연기한 최민수가 록 스피릿을 되살리는 듯한 가발을 착용하고 나온 것도 있을텐데, (개봉 당시에도 이 가발 때문에 급작스레 웃는 관객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관객들의 눈에도 이게 상당히 웃겼나보다. 감독은 이 반응을 꽤나 곤혹스러워 했다. 가발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최민수가 <레옹> 시절의 나탈리 포트먼과 한 번 붙어보고 싶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그냥 이건 내 생각이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누들스가 벽돌 건물 안에서 발레 연습을 하는 데보라를 훔쳐보는 초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히려 그 덕분에 이제는 초반부의 그 사건과 겹쳐져 병석이 자유로운 감성의 영화소년보다는 정신병자처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 이 시퀀스에서 병석은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 명길은 병석에게 다쳤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첫번째 아내에 해당되는 양순이 한쪽 눈을 가리고 살기 때문에 자신도 붙인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여기서 더이상 관객은 병수를 어린 시절의 이미지로 바라보지 못한다. 한결 같다면 나쁜 게 아닌데, 어째 여기서 그가 풍기는 이미지는 마치 어디 문제가 있어서 더 자라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병석에게는 누나가 한 명 있다. 초, 중반부에 등장하는 그의 누나는 미 8군에 스카웃 된 댄서인데, 그녀가 미군과 사귀며 미국에 갈 상황이 생기면서 병석도 미국 헐리우드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푼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그는 미국에 가지 못한다. 헐리우드에 간다는 일은 어떻게 됐냐는 명길의 물음에 병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 누나 초청장 기다리고 있잖냐." *
그리고 이후의 전개는 실로 고통의 연속이다. 병석은 양순과 헤어진 이후, 운명처럼 현숙을 다시 만나 결혼을 하고 자신의 자식이 아닌 아이를 아들 삼아 또 오랜 시간을 보낸다.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처지이고, 그래서 조감독이 된 명길을 찾아가 영화판에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한국영화계의 열약함만이 보일 뿐이고, 그것을 모른 척하고 살아가기에 그의 가슴은 너무 뜨겁다. 그렇다면 발언하면 되잖아! 하지만 그가 원하는 위치는 단순히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타개해낼 수 있게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자리다. 하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1994년이나 지금 2012년이나 충무로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데뷔한다고 해도 앞날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잘 하고 있다는 자존감을 가지지 않는다면 버티기도 힘든 직업이다. 그런데 병석은 여태까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아무것도.
그러다 제 성질 못 죽이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만다. 정확히는 한국영화계의 우스운 단면이기도 하다. 버스가 움직이는 장면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인데, 헐리우드처럼 스크린 프로세스를 활용하면 될 것을, 바깥쪽에 있는 스태프 두 사람에게 나뭇가지를 들어 이리저리 움직이게 해서 마치 버스가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다. 더이상 참지 못한 병석은 자신이 하던 일을 박차고 나가 버린다. 이 때 벼랑창에서 뛰어내린 이후 처음으로 다시금 '영화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화면의 질감이 약간 달라지고 초점이 흐릿해 지는 게 그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개봉 당시에 필름으로 보지 못했고, 이렇게 DVD로 봤기 때문에 정확히 이 부분이 감독의 의도인지, 아니면 필름의 손상으로 복원을 해도 이 정도가 한계였던 것인지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음성해설에서조차도 이 부분에서 이뤄진 화면 상태의 변화에 관해서 어떤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좀 과하게 자의적인 해석을 한 감이 있지만, 여하튼 내게는 이 장면이 벼랑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의 슬로우 모션 효과만큼 인상적으로 보인다.

이 장면 이후 작품의 이야기는 도입부의 경찰서 장면으로 전환되는데, 병석은 일부러 실어증에 걸린 양 연기를 하다 정신병원에 입원조치되며, 이후 자신이 써 왔던 시나리오를 명길에게 건네준다. 생각해보면 그는 어떤 결정적 한 방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이 자신을 먼저 알아봐줄 것이란 생각.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상대로 놀래켜 보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같은. 그러나 시간과 세상은 나 좀 봐 달라고 호소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 법이다. 설사 된다고 해도 그 기회는 흔치 않다. 작품 속에서 병석이 쓴 시나리오가 그 일 이후로 처음 쓴 것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과연 그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 본 것일까.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간 누나의 오지도 않을 청첩장만 기다리고 그저 영화만 보는 것 외에 말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이 잘 났다는 자존감만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일단 <가면고>라 이름지어진 병석의 시나리오는 탄탄하다는 극찬을 받고 명길의 감독작이 된다. 그러다 병석이 사라지는데, 그와 반대로 시나리오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촬영 기간 내내 화제작의 반열에 오르고 영화화 된 후 연말시상식에서 상도 타게 된다.
원작 소설을 그대로 따른 영화판 속 병석의 작품은 사실 자신이 예전에 봤던 헐리우드 작품들을 몽땅 표절해서 짜집기 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존 맥티어난 감독의 <다이 하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스파르타쿠스>,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 루이지 코지 감독의 <라스트 콘서트> 등등.. 그런 작품을 만들어 놓고서 그는 명길의 촬영현장에서 몰래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이건 굉장히 섬뜩하고 서글픈 시도이다. 남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화 하게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원작자 본인이 감독과 상의도 없이 매 순간순간마다 출연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과 자신이 일체화 되도록 하려는 집착이다. 동시에 더이상 자기 스스로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에서의 독고영재와 최민수는 적어도 절대 우리가 보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인상으로 연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고, 그 중 최민수의 연기가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이 대사를 이야기할 때 작품은 그냥 속절없이 무너져내려 버린다. "..네게 피해를 주려고 했던 건 아니야. 나도 이게 다 내 것인줄 알았어. 내가, 이 임병석이가..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은거다."

* 이전작인 <하얀 전쟁>에 출연해놓고 바로 여기서 깨알같이 카메오로 등장 *
김영삼 정부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을 자동차 수출과 연관지어 그 수익성의 가치를 설명했을 때, 갑자기 한국의 영화계는 천대시했던 장르에 헐리우드라는 '신성한 가치를 지닌 단어'를 조합시키며 발전에 열을 올렸다. 그렇게 열을 올리는 와중에도 순수하게 영화가 좋아서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것이라 생각하며 만드는 장면들이 결국 헐리우드의 영향권 내에서 파생됐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 안정적으로 안착하기까지는 또 얼마간의 진통을 겪어야 했다. 꿈을 찾으려는 열정이 어떻게 몰락으로 변해가는가를 이야기하던 원작은 정지영 감독에 의해 한국영화 역사의 자존감 여부와 더불어 영화인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씁쓸하게 말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충무로' 키드보다는 '헐리우드' 키드들이 너무나 많다고. 아니. 그 충무로도 정말 한국의 토양에서 자라난 것이 맞는가? 아니면 모방으로 시작했지만 창작의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차 버린 것인가? 이 물음이 다소 낯간지러울수도 있다. 그러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선 이 생각을 탐구할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특히 연출과 실제 촬영 영상을 뒤섞어 만든 대종상 영화제 시퀀스에서 배우인 신성일, 윤정희, 장선우 감독 등이 객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을 볼 때는 더욱 말이다. (이덕화와 김혜수의 경우에는 이 작품을 위해서 따로 찍었다.) 이 작품에 대한 당대의 생각은 아마도 대내외적인 평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은 도쿄와 뉴욕국제영화제, 산 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에 초청됐고 한국 대종상 영화제에서는 대상, 그리고 산 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에서는 국제영화평론가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자국 내 흥행에서는 크게 실패했다. 물론 흥행 실패한 영화가 무조건 잘났다, 흥행한 영화들은 뭐가 되느냐를 말하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어느 국가에서든 헐리우드의 아래에서 과연 나는 진짜의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은 공통의 문제라는 의미일 것일게다. 관객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이 작품을 헐리우드라는 영역의 아래에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헐리우드에 비하면 방화는 한참 모자라다고 생각했을까. 그러면 그나마 못났지만 우습게라도 '한국영화'라는 자의식은 가졌을텐데 말이다. 굳이 정지영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흥행에 실패하면서까지 시험해보고 싶은 의도는 없었겠지만, 유독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그런 점에서 관해서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인상깊은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처음 보고 나서 너무나 막막한 기분이 든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아. 병석은 그렇게도 자신이 원했던 스크린 속으로 뛰어든다. 그가 그렇게나 찾던 '한국에서의 자신만의 스크린'은 이미 많이 바뀌었지만, 거기밖에 없었다. 거기만큼은 헐리우드의 영화 식민지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명길아. 여긴 내가 가끔 산책 나오는덴데 말야.. 서치라이트, 멋지지 않니?"
"근데 병석아. 여긴 야간 통금지역 아니냐?"
"그래.. 간첩 잡겠다고 저걸 비추는 모양인데, 저기 불빛 나오는데가 영사실이고 난 저게 움직이는 스크린 같단 말야. 저 불빛이 이 절벽 밑을 스쳐 지나갈 때, 내가 간첩으로 오인받아 가지고 총을 맞아 쓰러지게 되면 나는 저 스크린 속으로 빠져 죽는 셈이 되는거야.. 어때. 근사하지 않니?"

현세에서 그런 '스크린'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p.s.1 - 사실 작품의 이런 시각에 관해서는 반론의 여지도 있습니다. 가령 발터 벤야민 님이 많은 영향을 끼치셨던 포스트모더니즘 식으로 따진다면, 결국 혼성모방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 그것도 결국은 창작이 아니냐는 것이겠죠. 아마 추창민 감독님의 <광해: 왕이 된 남자> 같은 작품이 <데이브>와 <카게무샤>의 자장 안에 있다는 것으로 논란이 됐었으니 이런 의문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 <데이브>를 보지 못했으니 여전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있느냐, 아니면 이것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가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가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후자의 것이면 심각한 것일수도 있겠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은 이미 어딘가에 잠식당했다는 것과 마찬가지 일테니까요.
p.s.2 -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모든 영화 장면들은 모두 VHS와 LD에서 활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후에 뉴욕영화제에 출품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됐었다는데요, 정지영 감독님의 말로는 해당 작품들의 판권을 소유한 영화사에 일일이 사용허락을 구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당시 미국 쪽에도 딱히 이런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모르겠다고 답변이 왔다더군요. 그래서 그냥 마음놓고 썼다고 합니다. 당연히 영화제 개봉 때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요.
p.s.3 - 위에서 영화제 관련 정보를 적어넣을 때 한 가지 못 적은 게 있었는데, 이 작품이 프랑스 영화제에서도 소개가 됐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감독님이 구체적으로 기억은 못하더군요. 그러니까 칸느 영화제에서 했는지, 아니면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한 것인지를 모르겠다는 것이지요. 아마 후자 쪽이겠지만요.
미국말고 프랑스에 작품이 초청되어서 보낼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 쪽에서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러나 다행히도 관객 반응은 좋았다는군요. 그리고 그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정지영 감독님에게 인상깊은 말을 하나 해줬다고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가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든 간에 다들 이런 추억은 하나씩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p.s.4 -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있는데, 미처 본 끄적임에는 넣지 못한 것입니다. 명길과 병석이 또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서 철길을 걸어가는 장면이에요. 여기서 배우인 최민수 님이 존 슐레진저 감독님의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언급하지요.

뭐랄까요. 요즘 한국배우들이 '나는 어떤 작품을 좋아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한 거 같아서요. 아. 요즘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겠군요. 심지어 영화잡지에서조차도 그런 언급을 잘 듣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시네마테크와 친구들' 리스트가 올라올 때 어떤 배우가 이 작품을 추천했다고 할 때는 놀랄 때가 많아요. 사실 놀랄 것도 없죠. 그냥 그 배우가 TV라든지, 책, 라디오라든지.. 그런 자주 노출될 수 있는 매체에서 그런 말들을 하지 않은 것 뿐인데 '이 배우가 이 작품을 좋아했었어?'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죠. TV나 책, 라디오 등에서 배우를 인터뷰할 때, 이 배우를 '영화배우'라 여기지 않고 그냥 '셀러브리티' 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배우들이 그냥 화장술로 자신들의 만들어진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서 로봇 마냥 했던 말만 계속 반복하는 것인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통해 이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꺼내야 하기 때문에 배우를 배우로 보지 않고 그냥 가십거리로만 생각하는 지금의 풍토 쪽에 문제의 무게가 더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말이죠.
어쨌든 그래서 최민수 님이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언급하는 게 조금 놀랍기도 했어요. (...단지 외국영화 제목 한 번 언급한 것인데.) 꺼낼 수 있는 말들이 많을 거에요. 박근형 님 같은 경우에도 '나 유현목 감독님의 <문>에 나온 사람이야' 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장미희 님 같은 경우에도 김기영, 배창호, 하길종 감독님과 작업한 경력이 있는 배우인데. 최불암 님도 '나 <영자의 전성시대>, <바람불어 좋은 날>, <사람의 아들>, <만종>, <최후의 증인>에 나온 사람이야! 양촌리 이장 아저씨만 한 게 아니라고!!' 라며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죠. 우리가 TV에서 흔히 아버지와 어머니상으로 기억하는 배우들, 아님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를 얻는 배우, 아니면 그냥 얄팍해 보이는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도 '나 이런 작품에도 나왔다' 라든가, 아니면 '나 이런 작품 좋아한다' 고 말하고 싶어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