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단 무겁고 진지한 소재를 가볍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
'GO'의 주인공인 재일한국인 스기하라도 다른 작품의 주인공들처럼 소수계층에 속하지만 결코 주눅 들거나 무조건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바보 같은 친구들, 백치미가 넘치는 여자 친구와 시트콤 같은 상황들을 수습해나간다.

작가 자신은 '연애 이야기'라고 우기고 있지만, 오히려 연애소설로서의 재미는 덜한 편이다. 주인공의 가장 친한 친구는 뜬금없이 죽어버리고, 여주인공 역시 별다른 계기 없이 주인공에게 먼저 접근했다가 정체(?!)를 알고는 멀어진 다음, 또 갑자기 돌아오기 때문이다.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은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신파로 흐르지 않고, 지나치게 비장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멋들어지게 발랄하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가네시로 가즈키의 팬들에게는 잠언집이라고 할 만큼 명대사들로 가득하다.
한마디 한마디가 팬들의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너무 많다.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다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p108

싸움에 익숙한 나 역시 처음으로 나이프가 나를 겨눴을 때는 순간적으로 온몸의 털구멍이 다 활짝 열리는 감각을 느꼈고 오줌을 쌀 뻔하기도 했다. 그 학생, 정일이는 나보다 용감했다. 들고 있는 가방으로 나이프를 떨어뜨리려고 조금도 겁내지 않고 '그'에게 바짝 다가갔다. 나는 정일이에게 진작 가르쳐주었어야만 했다. 처음으로 칼날이 나를 겨눴을 때 나는 칼 루이스보다 더 빨리 뛰어서 도망쳤다고. 그리고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인간들은 모두 겁쟁이고, 진정 용감한 자는 일찍 죽을 운명에 있다고. 그리고 너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니까 누군가 나이프를 겨누면 총알보다 빨리 뛰어서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p167

"가끔 내 피부가 녹색이나 뭐 그런 색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다가올 놈은 다가오고 다가오지 않을 놈은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 알기 쉽잖아요....."
-p214

표지 또한 '레벌루션 No.3'만큼이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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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8-01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은 심각한 주제를 뭉뜽그려서 알맹이를 놓치지 않고
전혀 심각하지 않게 유머스럽게 만드는 기막힌 재주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sayonara 2006-08-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동감, 매우공감...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