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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이 걸작이 출간된 해는 1954년이다. 이 작품이 수많은 좀비공포물의 모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고전의 무게감도 반세기라는 세월의 흐름에 조금은 퇴색된 느낌이다.
조금 더 경쾌하고 간결한 스타일의 매끈한 요즘 작품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좀 투박하고 구닥다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랜드 오브 데드'에 홀로 남은 사나이의 고독과 분노, 광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흡혈귀들과의 사투를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것은 물론이요, 네빌의 경험하는 공포와 외로움, 또 다른 공포와 또 다른 불안함까지 놓치지 않은 SF 걸작이다.
네빌이 우연히 마주친 잡종 강아지를 보고 기뻐하며 흥분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안쓰러움과 코끝이 찡해오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저 쏘고 부수는 단순무식한 액션활극이 아닌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영화화된다는 소문이 있어왔다.
이미 영화화되었던 두 편의 작품('지구 최후의 사나이', '오메가 맨')은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고 한다. 할리우드의 단순한 액션감독들이 감당하기에는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디 제임스 카메론이나 폴 버호벤같은, 스펙터클과 철학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감독에 의해서 영화화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전설이다'라는 중편이 매우 감동적이었던 반면에 이후의 절반 분량을 채우고 있는 단편들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은 수준들이라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그럴듯하게 시작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대충 끝나는 것 같았고, 스티븐 킹의 단편들과 비슷한 줄거리면서도 훨씬 싱겁고 밋밋한 이야기들뿐이다.
'던지기 놀이'같은 경우는 나처럼 눈치가 빠르지 못한 독자들은 그 결말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럽고 엉뚱하다.
'마녀의 전쟁', '루피 댄스'같은 작품들도 소재만 특이할 뿐 별로 재미도 없고, 유효기간이 지난 상상력만을 보여줄 뿐이다.
대부분의 야기가 기괴스러운 분위기와 별로 해피하지 않은 반전의 결말을 보여준다.
'죽음의 사냥꾼'은 그나마 기억에 남는데,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생생한 격투묘사가 일품이다.
그리고 'X 파일'은 크리스 카터라는 천재 프로듀서가 기존의 모든 SF, 스릴러물들을 참조해서 만들어낸 독특한 시리즈다.
이 책의 작가소개에서처럼 리처드 매드슨이 'X파일'의 원작이 된 '한밤의 스토커' 작가라는 과장된 찬사는 이미 확고한 명성을 갖고 있는 대작가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허풍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