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2

합리성과 등가성, 좋은 말이지만 사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많이 주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반대로, 오히려 부담스러워서 멀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제일 기가 막히는 건, 그걸 뻔히 알면서도 주는 걸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은 피곤하다. 평범한 게임 <에스트폴리스 전기 2>를 지금도 기억하는 건 사랑의 피곤함 때문이다.

이 게임은 운명의 계시를 받은 영웅들이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초월적 존재와 맞서 싸운다는 정말 흔하기 짝이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도 아닌 캐릭터 한 명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티아'는 주인공 '막심'이 사는 마을의 무기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다. 몬스터 퇴치로 먹고사는 막심을 남몰래 사랑하고 있으며, 그가 위험한 생활을 접고 자기와 함께 살아가기를 원하는 평범한 여자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과는 달리 막심은 운명의 계시를 받고 길을 떠나게 된다. 티아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어렴풋이 막심의 운명을 느낀 티아는 그가 갈 길로 먼저 갔다. 따라가겠다면 안된다고 할 게 뻔하니 먼저 그 앞에 가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사랑을 위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사랑이 합리적이라면 말이다.

'운명의 계시를 받은 전사' 막심이 가는 길을 평범한 티아가 쫓아가기는 너무 힘들다. 위험한 던전, 무시무시한 몬스터, 끝없이 이어지는 파괴와 죽음. 티아는 이를 악물고 장애물들을 하나하나 뛰어넘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생각지도 못했던 위험과 공포의 벽을 부숴 나간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 억지로 장애물을 넘어본 사람은 안다. 넘으면 넘을수록 점점 더 높아지고, 언제 끝이 날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지금 힘든 게 아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결국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날, 아니면 뛰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할 순간이 온다. '나는 여기서 멈춰야겠어.' 몰래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이 비참한 대사를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티아 앞에 한 나라의 군대를 이끄는 마법검사 '세레나'가 나타난다. 그녀는 티아가 죽을힘을 다해 넘는 장애물을 언제나 가볍게 뛰어넘는다. 자신과는 달리 막심의 힘이 되어 어떤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으리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녀 역시 그 빌어먹을 '운명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다.

'나, 울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더 흘릴 눈물이 없으니까.' 티아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무기점에서 손님을 상대하고, 세계를 구한 '운명의 연인'들, 막심과 세레나는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한다. 늘 모험을 하고, 늘 함께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진다. 막심과 세레나는 진정한 최후의 일전을 위해,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남겨두고 떠난다. 운명의 전사들이 세계를 위해 싸우는 동안, 평범한 티아는 고향 마을 무기점에서 어제와 꼭 같은 오늘, 오늘과 꼭 같은 내일을 보낸다. 막심과 세레나는 함께 죽음을 맞고, 티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함에 떨기 시작한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 그리고 세상은 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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